성혜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20대 개인’을 상징하는가?
영화 <성혜의 나라> (2018)
감독 정형석
출연 송지인(성혜 역)
개봉 2020년 1월 30일
줄거리
스물아홉 성혜는 반지하 월세 살이 취준생이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인턴으로 입사했으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반강제 퇴사하고 지금은 신문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공시생 남자 친구 승환은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성혜는 면접마다 떨어지는데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로 인생의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데… 어느 날, 당신에게 5억이 생긴다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죠?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성혜의 나라>을 해석하면서 생각한 명제는 “성혜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20대 개인’을 상징하기 위해 창조한 캐릭터일까?”였다.
맞다면? <성혜의 나라>는 못 만든 영화다. 20대 개인의 삶을 고통과 등치시켜, 다양한 현실을 포괄하지 못했다. 즉 ‘고통 전시’ 영화에 불과하다. 성혜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작위적이고 대개 높은 고통을 유발한다. 집주인도, 남자친구도, 전 직장 동료도, 부모님이 미필적 고의로 던지는 상황 모두 성혜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고통을 선사한다. 관객이 고통에 매몰된다면 사건들을 유발하는 구조적 위계질서와 폭력을 보지 못하게 된다. 감독은 초반 면접 장면에서 구조적 폭력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지만, 의도적으로 기괴하게 묘사한 탓에 감정적 불쾌함이 사회구조 성찰보다 먼저 발생했다. 그 뒤로는 몰락의 연속이다. 영화 후반부 이미도 배우가 외친 욕설은 업계 메인스트림에서 청춘을 묘사하는 방식을 답습했다고 생각했다.
단편영화로 제작해도 되는 서사를 지나치게 길게 진행했다. (단 이는 옹호할 여지가 있다.) 시놉시스에서 강조된 5억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제시되며, 그 사유는 가혹하다. (현실에서 벌어질 법하지만.) 나는 판타지스럽게 5억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질 줄 알았다.
아니라면? 성혜가 나와 같은 존재가 아닌 어딘가에 살고 있는 한 개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성혜의 여름>은 상업 대중매체가 제시하는 ‘청춘’과는 다른 길로 나아갔다. 감독은 성혜에게 순수함이나 ‘성공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또한 삶은 모순적이며 성혜의 삶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감독이 영화를 잘 통제했다. 나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느리고 반복적인 내러티브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성혜의 삶을 간접적이지만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관객은 감독이 원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도심 극장에서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독립영화 장르가 가진 모순 같다. 상업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길로 나아가는 대신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내 생각은 '맞다'가 조금 더 우세했다. 나는 이 영화가 불쾌했다.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20대 개인이 공유하는 현실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무엇이며, 대중매체는 어떻게 그를 포착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대중매체는 어떤 방법으로 현실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하는가?"이다. 나는 이 영화에 다소 불쾌감을 느꼈지만 비판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갖고 있는,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 아니지만 우리 잘못으로 치부해야 하는 시대와 뿌리 깊은 사회 부조리 - 특히 젠더 폭력과 불평등 - 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