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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Jul 18. 2021

2010년대 뮤지컬 영화 3편 감상
3. <캣츠>

[서강대학교 중앙영화동아리 서강영화공동체에서 2020 8 발간한 문집 <Feelm> 1 수록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글은 <  하이츠> 개봉하기  작성했습니다.]


[주의: 본문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적혀 있습니다. 각 영화를 감상하신 뒤에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평입니다. 감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캣츠> (Cats, 톰 후퍼 감독, 2019)


줄거리: 고양이 빅토리아가 영국 런던 길거리에 유기된다. 젤리클 고양이들이 나타나 빅토리아를 맞아 주고 무도회에 초대한다. 고양이들이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선보인다.

주요 고양이: 빅토리아(프란체스카 헤이워드), 멍커스트랩(로비 페어차일드), 미스토폴리스(로리 데이비슨), 그리자벨라(제니퍼 허드슨), 올드 듀터러노미(주디 덴치), 맥캐버티(이드리스 엘바), 럼텀터거(제이슨 드룰로), 제니애니닷(레벨 윌슨), 버스토퍼 존스(제임스 코든), 스킴블섕스(스티븐 매크레이), 거스(이언 맥켈런)
원작 뮤지컬: 1981년 초연. 앤드류 로이드 웨버 작곡

주요 넘버: Prologue: Jellicle Songs for Jellicle Cats, Memory

제작비/월드 박스오피스(IMDB): 9500만 달러/7380만 달러

대한민국 흥행 성적(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개봉관 1143곳, 관객 75만 명
2021년 7월 현재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입니다. Google Play 무비에서 대여하실 수 있습니다.


나빴던 점 1: 억지로 끼워 넣은 서사, 억지로 끼워 넣은 현실. 불쾌한 골짜기를 낳다

뮤지컬의 여러 서사 방식 중 ‘콘셉트 뮤지컬’이 있다. 이야기보다는 메시지나 분위기에 중점을 두고 플롯을 조각낸 작품인데, 유명 사례가 바로 <캣츠>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무도회'라는 배경 아래 고양이의 등장을 반복하다 마무리되는 작품이다. 콘셉트 뮤지컬을 영화로 각색할 때는 일반적으로 플롯을 변형하여 중심 서사를 갖춘다. 상업적 수익을 기대하는 작품에서 서사의 해체를 시도하는 것은 모험이기 때문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헤어(Hair, 1979)>를 예로 들 수 있다.


제작진도 이를 인지하고 원작의 콘셉트 뮤지컬 요소를 일부 손질했다. 고양이 중 하나였던 빅토리아를 메인 캐릭터로 변경하고 이야기를 붙었다. 그런데 세부 대처에서 미숙함이 드러났다. 빅토리아는 주인공(Protagonist)이 아니라 멍커스트랩의 손에 이끌려 퍼포먼스를 지켜보는 관찰자다. 그리자벨라에게 다가가고 올드 듀터러노미의 눈에 드는 과정은 일부러 캐릭터를 한 곳에 모은 억지 전개라고 느꼈다. 미스토폴리스와의 관계도 작품 초반부터 결말이 어떻게 될지 대놓고 암시한다. 결국 둘은 연인이 된다.


오프닝 시퀀스


물론 <캣츠>의 문제는 현실을 판타지에 맹목적으로 대응시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무리하게 입은 것에 있다. ‘불쾌한 골짜기’를 세세히 지적하지는 않겠다. 바퀴벌레와 쥐를 한 문단에 걸쳐 설명하는 것은 멋지지 않다. 단 오프닝 시퀀스에서 실제 크기 유리창 아래 인간의 외형을 한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적고 싶다. 영화를 서너 번 복기하면서 적응했지만 아직도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말해 봐요 감독님, 관객한테 왜 그랬어요? 박수와 환호마저 고양이 울음소리로 대체했어야 했어요?


나빴던 점 2: 관객을 두근거리게 하지 못하는 음악

“Overture”부터 “The Rum Tum Tugger”까지 첫 여섯 넘버에서 승패가 갈렸다. 인상에 남는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음악을 들고 다가가는 만큼 초반에 매력을 주는 넘버를 보여주며 관객을 좌석에 머무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인물 외형 문제는 넘어가더라도 음악이 즐거움이나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발레 위주의 안무는 움직임이 빠르고 잦은 데다, 앙상블이 동일한 안무를 추지 않아 시선이 혼란스러워진다.


분위기 완급 조절에도 실패했다. <캣츠>에도 좋은 넘버는 있었다. "Mungojerrie and Rumpelteazer", "Skimbleshanks: The Railway Cat", "Macavity: The Mystery Cat" 세 넘버는 만족했다. 멜로디는 활기찼고, 연출은 소수 캐릭터에게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었다. "Skimbleshanks"와 "Macavity”가 연이어 등장한 후반은 기대를 충족시켜 주면서 희망을 갖게 했다. 후퍼 감독은 다음 넘버 "Mr. Mistoffelees"를 정적인 연출에 중저음 목소리에 의존해 풀어 나가면서 그나마 살린 불씨를 꺼뜨렸다.


차라리 원작을 무시하고 순서를 새로 짜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원작 <캣츠>에는 이야기가 없다. 다른 장르로 재해석하는 만큼 원작을 따를 의무 또한 없다. 고양이의 등장 순서는 제작진과 원작자 웨버가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순서를 지키기 위해 작품의 재미를 희생한 느낌이다.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전개하는 송스루 뮤지컬 형식을 영화에서도 수용했다. 그러면서 각 넘버 간에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음 넘버를 시작했다. 이 좁은 넘버 간격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Jennyanydots”에서 “Rum Tum Tugger”로 넘어가는 부분을 살펴보자. 노래가 끝나자마자 럼텀터거가 프레임 안으로 점프해 들어오면서 진행된다. 각 넘버 분위기도 판이하게 다르다. 고요하다가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Rum Tum Tugger”


나빴던 점 3: 밋밋한 캐릭터

캐릭터도 끌리지 않는다. 메인 빌런 맥캐버티는 영화만의 오리지널 스토리 추가, 새 넘버 작곡, 영화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효과 같은 장치를 통해 화려한 악역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랐는데 대신 허술한 악당이 나왔다. 첫 넘버에서는 수배 포스터만으로 등장해서 어떤 캐릭터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버스토퍼 존스를 사로잡는 등 ‘악명’을 보이지만 공포를 주거나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부하 그로울타이거도 고양이들이 수적 우세로 밀어붙이자 쉽게 무너진다.


버스토퍼 존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즐기는 신사가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다. 그의 격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레벨 윌슨이 고양이 그루밍을 어색하게 따라 하던 순간 나는 그의 향후 커리어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또한 둘은 웃기지 않았고, <캣츠>를 옹호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렸다. 코든은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쇼를 진행하고 있고, 윌슨은 시상식에서 위트를 발휘할 수 있는 코미디언이다. 그런 둘이 자신의 몸집을 코미디 소재로 삼은 것은 각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이 어느 때인데 뚱뚱함을 거리낌 없이 희화화한단 말인가?


종종 연기에서 약점도 보인다. 빅토리아와 미스토폴리스, 멍커스트랩의 표정이 줄곧 변하지 않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 마지막 넘버 "The Ad-Dressing of Cats"에서는 주디 덴치까지 이 대열에 합류한다. 이미 작품이 망가진 뒤임에도 '우리는 개와 다르다'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맥락 없는 메시지에 똑같은 앵글을 수 초간 고정해 보여주는 연출이 더해지니 가히 최악이라 할 만하다. 캐릭터의 성격이 고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는 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나빴던 점 4: 프레임 양 옆의 공허함

개인적으로 주목한 약점은 쇼트에서의 공간 활용이었다. 톰 후퍼 감독은 "Prologue: Jellicle Songs for Jellicle Cats"와 "Bustopher Jones" 등에서 고양이들을 프레임에 담으며 하이 앵글 익스트림 롱 쇼트를 사용했다. 그런데 열 마리 전후 소수의 고양이만을 프레임 중앙에 배치했고 나머지는 공백으로 방치했다. 광장에서 뒷골목으로 옮겨 가도, 밤이 지나 낮이 되어도 프레임 양 끝은 비어 있다. 관객은 전 런던 고양이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벌이는 축제가 아닌 소수의 황량한 모임을 보게 된다.


좌: "The Ad-Dressing of Cats" 우: "Macavity: The Mystery Cat" ⓒ Universal Pictures


후퍼 감독은 롱 쇼트를 마구 쓰면서도 하나같이 프레임에 공백을 남겨 두는 실책을 범했다. 롱 쇼트 문제는 무도회가 열리는 닫힌 공간에 들어와서야 해결된다. 롱 쇼트 남발은, 넘버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비슷한 몸집을 지닌 다른 고양이들 사이에 묻히면서 잘 보이지 않게 된다는 문제도 만든다. 앵글의 다양성도 없었다. 특히 “Beautiful Ghost”에서 두 앵글만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지루함을 느꼈다. 색다른 프레임을 보여주지 못하니 피로가 몰려온다.


나빴던 점 5: 밋밋한 "Memory"

<캣츠>는 그리자벨라가 카타르시스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우리는 <캣츠>를 무엇으로 접했는가? “Memory” 아닌가. 절대 오디션에서 부르지 말라는 그 노래 아닌가. 초장에 망쳤다면 종장에는 그를 뒤집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뮤지컬 장르를 대표할 정도의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Memory”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했다. 그러나 <캣츠>는 <위대한 쇼맨>까지는 아니었나 보다. 노래를 못 부른 것이 아니다. 판이 잘못 짜인 것이었다.


"Memory"


“Memory”는 고양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그리자벨라가 역경을 떨치고 자신의 힘을 온 고양이들에 드러내는, 잔잔하면서도 폭발하는 넘버다. 영화의 그리자벨라는 어정쩡하다. 오랜 따돌림에 지쳐 친구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제대로 안도하지 못하는 피해자다. 오랫동안 지속된 따돌림이 노래 한 곡으로 180도 바뀌는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나는데, 정작 그리자벨라는 이를 진정으로 기뻐하지 못한다. 제니퍼 허드슨은 말끔하게 웃지 않고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리자벨라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기구에 실려 하늘로 사라지고 영화는 끝난다.




세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1) 캐릭터와 사건에 최소한의 개연성이라도 부여하라. 시대는 다르지만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인 더 하이츠>는 모두 현실 세계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관객은 현실에 맞는 행동을 기대한다.


2) 관객이 플롯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난립하면 관객은 당혹스럽다. 서사를 나누고 싶다면 확실히 나누고 동등하게 힘을 실어주어라.


3) 귀와 눈에 즐거움을 주는 일은 뮤지컬 영화의 의무이다. 귀와 눈 중에서는 눈을 조금 더 우선시하라. 관객은 특정 시야를 통해 작품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두 영화가 이것만은 지켜주기를 소망한다. 그렇다면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잇는 선은 당분간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리즈 끝>




[서강대학교 중앙영화동아리 서강영화공동체에서 2020년 8월 발간한 문집 <Feelm> 1호에 수록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글은 <인 더 하이츠>가 개봉하기 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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