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윤석 Jul 18. 2021

2010년대 뮤지컬 영화 3편 감상
2. <숲속으로>

[서강대학교 중앙영화동아리 서강영화공동체에서 2020년 8월 발간한 문집 <Feelm> 1호에 수록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글은 <인 더 하이츠>가 개봉하기 전 작성했습니다.]


[주의: 본문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적혀 있습니다. 각 영화를 감상하신 뒤에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평입니다. 감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1999년 뮤지컬 영화 <애니>를 연출하고, 2002년에는 <시카고>를 연출해 2003년 아카데미상 6관왕을 이룩한 롭 마셜은 2014년, 뮤지컬 원작 영화 <숲속으로>를 감독했다. 디즈니가 제작을 맡고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이 원작이었다. 마셜은 뮤지컬 영화에 새 활기를 불어넣은 인물이었으니 기대가 넘치는 조합이었다. 예상대로 손익분기점은 여유 있게 넘겼으나 돌아온 것은 혹평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나?


<숲속으로> (Into the Woods, 롭 마셜 감독, 2014)


줄거리: 어느 먼 옛날. 신데렐라, 빨간 모자, 잭, 라푼젤이 함께 사는 세상. 빵을 팔며 살던 베이커 부부 앞에 느닷없이 마녀가 나타난다. 마녀는 부부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여러 물건을 요구한다. 부부는 숲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사건이 벌어진다.

주요 캐릭터: 마녀(메릴 스트립), 베이커 부부(에밀리 블런트 & 제임스 코든), 신데렐라(애나 켄드릭), 신데렐라의 왕자(크리스 파인), 라푼젤(매켄지 모지), 빨간 모자(릴라 크로포드), 잭(대니얼 허틀스톤).
원작 뮤지컬: 1986년 초연.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작곡. 제임스 라파인 각본

주요 넘버: Prologue: Into the Woods, Your Fault, Finale: Children Will Listen

제작비/월드 박스오피스(IMDB): 5000만 달러/2억 1310만 달러

대한민국 흥행 성적(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개봉관 356곳, 관객 34만 명
2021년 7월 현재 네이버 시리즈온, 티빙에서 대여하실 수 있습니다.


나빴던 점 1: 제작진 역량 이상으로 많은 캐릭터

<숲속으로>는 일을 너무 많이 벌려 놓았다. 할리우드에서 단독 영화로 제작된 인물이 네 명(신데렐라/빨간 모자/라푼젤/잭). 네 이야기를 묶고 내레이터 역할도 하는 베이커 부부. 이야기의 시작에 있는 마녀. 여기까지 일곱 명이다. 보조 인물까지 포함하면 이미 열 명이 넘는다. 관객이 파악해야 하는 인물 동향이 너무 많다. 이야기 흐름도 난잡해진다. 롭 마셜 감독은 전작 <나인(Nine, 2009)>에서 주요 인물을 5명 이상, 그것도 모두 무게감 있는 연기자로 활용했다가 완급조절에 실패한 적이 있다. 주요 인물 세 명, 보조 인물까지 넓게 잡으면 여섯 명 정도에 집중했던 <시카고>와는 다른 결과다.


결국 이야기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빨간 모자와 라푼젤이 희생되었다. 빨간 모자의 본 서사는 불과 25분 만에 마무리된다(늑대로 분한 조니 뎁을 포스터 메인 롤에 올려 관객을 낚은 것은 덤이다). 그 뒤 그의 역할은 사건을 유발하거나 남 탓을 거드는 보조 캐릭터다. 라푼젤은 작품에서 배제해도 이야기가 무사히 흘러갈 수 있다. 베이커 부부가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을 얻기 위해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가져왔는데, 정작 마녀가 힘을 되찾을 때는 '마녀가 만진 물건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 때문에 그냥 옥수수수염을 사용한다. 답답해서 기가 막히는 복선 회수다.


"On the Steps of the Palace"

"On the Step of the Palace". 신데렐라가 궁전에서 도망치면서 부르는 넘버다.


그 결과 캐릭터 설명도 부족하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보인 행동과 감정을 전부 생략한 채 도망치는 부분만 영화에 남겼다. 세 번이나 반복한다. 잭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다는 내용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다가 마지막에서야 베이커의 입을 통해 공개된다. 원작에서 의도한 것을 적용한 부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숲속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정식 라이선스 공연으로 소개된 적이 없어 사전 지식을 얻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없게 연출하는 바람에 간파하기도 힘들다.


나빴던 점 2: 어정쩡한 경계

원작 뮤지컬의 매력 포인트는 고전 설화들이 가진 클리셰를 현실과 섞어 비트는 것이었다. 완전무결하게 선한 사람, 약점 없는 사람은 없다. 착한 사람이 보답을 항상 얻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지도 못한다. 위기 앞에서 영웅은 없고 사람들은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거쳐 희석된 ‘잔혹 동화’가 부활한다. 영화는 위 주제들을 반영했지만 어느 하나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영화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현실의 비정함을 캐릭터의 죽음에 투영했다. 다툼과 혼란 속에 베이커 부인과 잭의 어머니는 사고로 사망한다. 그런데 동화적인 전개로 ‘짠! 무언가의 절대적인 힘으로 이렇게 극복했어요.' 식으로 그냥 덮고 넘어가는 부분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어 의아함을 자아낸다. 마녀의 공격으로 눈이 먼 왕자(빌리 매그누센)는 라푼젤과의 사랑으로 시력을 회복한다. 잭이 기르던 소는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지만 마녀의 마법으로 다시 살아난다. 세상이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둘을 그냥 놔두었으면 안 됐을까?


<숲속으로>는 급하게 마무리된다. 캐릭터들이 한바탕 싸우고 난 뒤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일단 위협적인 (피해자) 거인을 쓰러뜨린다. 베이커가 영화 내내 강조했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캐릭터들이 뭉쳐 유사 가족을 만든다(구성은 이른바 ‘정상 가족’이다). 혼란스럽게 뒤섞인 주제 의식을 끝까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아서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쉽사리 알 수가 없다. 가족은 중요하다? 인생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마녀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하라? 사라진 빨간 모자의 할머니 같은 설정 공백도 남기고 영화는 무책임하게 사라진다.


나빴던 점 2.5: 전체 관람가라는 함정

"Careful My Toe"


크리스틴 버랜스키가 연기한 양어머니와 이복자매들은 코미디에 충실했지만 '잔혹 동화' 요소 때문에 애매한 위치가 되었다.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 저본대로 왕자가 가져온 구두에 맞는 발을 만들기 위해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거리낌 없이 절단한다. 웃음을 만들어내기는 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수십 년 간 성인 콘텐츠를 전체 관람가로 둔갑시켜 온 디즈니였다. 19세 이상 관람가에 인색한 디즈니가 <숲속으로>를 제작한 것은 모순이었다. 제작진에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전체 관람가로 개봉하면서 마케팅과 내용에서 불일치가 발생했다.


좋았던 점: “Your Fault”

작품이 혼란스러워지는 바람에 피해를 본 넘버가 있으니 2부 말미의 “Your Fault”다. 베이커, 잭, 신데렐라, 빨간 모자, 마녀 다섯 명이 빠른 호흡으로 서로의 잘못을 쏘아붙이는 넘버다. 원체 플롯이 혼란스러운 데다 쉴 틈 없이 가사가 귀에 몰아치니, 처음 관람했을 때는 상당히 혼란스럽게 느껴져 영화를 더욱 낮게 평가하는 요소가 되었다. 단 “Your Fault”는 뮤지컬 영화의 근본 요소인 '무대와 카메라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넘버라는 점에서 재평가할 수 있다. 요컨대, 무대는 열렸지만 카메라는 닫혀 있다.


“Your Fault”


무대 위, 또 카메라 렌즈 앞에는 동일한 공간과 사건이 있다. 뮤지컬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은 공간 옆에 앉아서 개방된 시선으로 연기자들의 움직임을 조망할 수 있다. 카메라는 먼 거리에서 촬영하지 않는 이상 연출 의도에 따라 관객의 시선을 강제한다. 관객은 여러 프레임을 조합해서 사건을 파악해야 한다. “Your Fault”를 무대에서 볼 때는 캐릭터 구도와 연기자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영화의 앵글은 2분 전후 동안 30회 가까이 변한다.


<숲속으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1989)

무대 연출과 영화 연출은 어떻게 다를까?


작품의 혼란스러움과는 별개로 배우 간의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다. 메릴 스트립, 애나 켄드릭, 제임스 코든 모두 뮤지컬에 조예가 깊은 연기자이며(<맘마미아>, <피치 퍼펙트> 시리즈, <레이트 레이트 쇼>) 세 연기자보다 나이가 어린 두 연기자(잭의 대니얼 허틀스톤, 빨간 모자의 릴라 크로포드)도 뮤지컬 주조연 경력을 가지고 있다. 빈 틈을 깔끔하게 메우고 종횡무진 활약하며 노래 소화도 잘 해냈다. 하지만 혼란을 넘어서지 못하고 같이 가라앉았다.


<숲속으로>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드디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제공한 <캣츠>를 만나보자.


3편 <캣츠>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0년대 뮤지컬 영화 3편 감상 1. <애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