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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Jul 18. 2021

2010년대 뮤지컬 영화 3편 감상
1. <애니>

[서강대학교 중앙영화동아리 서강영화공동체에서 2020년 8월 발간한 문집 <Feelm> 1호에 수록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글은 <인 더 하이츠>가 개봉하기 전 작성했습니다.]


2019년 겨울, 뮤지컬 영화는 암담한 시간을 보냈다. 큰 기대 속에 개봉한 <캣츠>는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파멸을 맛보고 퇴장했다.  <캣츠>의 실패를 보고 ‘앞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주기적으로 제작될 수 있을까?’라는 심각한 의구심이 들었다.


2012년 <레미제라블>이 개봉한 이후, 제작에 4천만 달러 이상이 든 뮤지컬 원작 할리우드 영화는 6편이 있었다. 그중 4편이 월드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 2배 이상을 넘기지 못했다. 여섯 편 모두 감독(ex. <저지 보이즈> 클린트 이스트우드)과 출연 배우(ex. <락 오브 에이지> 톰 크루즈)의 면면은 출중했으나 하나같이 평단과 관객들에게서 혹평을 받았다. 흥행한 <맘마미아 2>와 <숲속으로>도 작품성만으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맘마미아 2>는 ABBA의 음악, <숲속으로>는 디즈니 제작/배급이라는 보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이 두각을 드러냈다. 디즈니도 <겨울왕국> 시리즈와 <알라딘>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도 그럭저럭 성공했다. 그럼 <캣츠>는 미래를 아주 바꿔버린 것일까?


일단은 아니다. 존 추 감독의 <인 더 하이츠>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인 더 하이츠>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봉을 1년 연기했다). 전자는 현 브로드웨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해밀턴>을 창작한 린마누엘 미란다가 2008년 내놓은 데뷔 작품이다. 후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하고 스티븐 손드하임이 가사를 쓴 거대한 작품인 데다가, 이미 1961년에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 고전이다. 모두 무거운 기대를 받고 있다.


두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흥행 성적을 남기느냐에 따라 2020년대 뮤지컬 영화 업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틀이 잡힐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보았던 작품을 스크린에서도 경험하는 일이 지속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욱 줄어들까? 뮤지컬에 많은 애정을 쏟는 사람으로서 나는 두 작품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2010년대 비평 면에서 실패한 뮤지컬 영화 세 작품 <애니>, <숲속으로>, <캣츠>의 구성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존 추 감독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 그리고 모든 제작진 여러분. 제발 이것만은!




[주의: 본문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적혀 있습니다. 각 영화를 감상하신 뒤에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평입니다. 감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애니> (Annie, 윌 글럭 감독, 2014)


줄거리: 주인공 애니는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고 위탁 가정에서 박대를 받으며 자랐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녀이다. 어느 날 우연히 시장 선거에 출마한 통신 재벌 윌 스택스를 만난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 보좌진들은 애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데.

주요 캐릭터: 애니(쿼번저네이 월리스, 주인공), 스택스(제이미 폭스), 그레이스(로즈 번, 스택스의 비서), 가이(바비 카나발레, 선거 전략가), 해니건(캐머런 디아즈, 위탁가정 운영자), 코바체비치(애니의 담당 공무원)
원작 뮤지컬: 1976년 초연. 찰스 스트라우스 작곡. 마틴 샤닌 작사. 토머스 미헌 각본. 1982년/1999년 영화화. 

주요 넘버: It's the Hard-Knock Life, Tomorrow

제작비/월드 박스오피스(IMDB): 6500만 달러/1억 3380만 달러

대한민국 흥행 성적(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미개봉
2021년 7월 현재 왓챠에서 스트리밍 중입니다. 네이버 시리즈온, 티빙에서 대여하실 수 있습니다.


나빴던 점 1: 쇼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무시한 황당함

<캣츠>가 고양이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숲속으로>가 중세 시대 배경 판타지 뮤지컬이라면, <애니>는 현재(2014년) 미국 뉴욕이 배경이다. 슈퍼히어로 시리즈처럼 비현실적 요소를 전면에 내건 영화는 아니다. 따라서 관객은 현실과 동떨어진 신데렐라 이야기여도 캐릭터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기대한다. <애니>는 현실과 쇼의 경계가 없었다. 쇼의 영역이 현실을 과도하게 침범하면서 황당함이 느껴졌다.


사례 1: "I Don’t Need Anything But You"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뒤 마침내 함께 지낼 수 있게 된 애니와 스택스가 함께 춤을 추는 넘버다. 춤에서만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놀랍게도 둘이 춤추고 있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뉴스에 나온다는 소식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카메오로 출연한 코미디언 바비 모이니헌의 대사가 압권이다. “저러니까 시장이 못 되는 거예요.” 굳이 코미디스러운 상황을 삽입하지 않았더라도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으나, 사족이 코미디를 헛웃음으로 바꿔버렸다.


사례 2: "Opportunity"


넘버를 삽입하기 위해 과도하게 개연성을 생략했다. 자선 행사에 참석한 애니를 스택스가 무대로 불러내 몇 마디 말할 기회를 준다. 애니는 스택스의 도움을 받아 기쁘다는 내용의 노래,  "Opportunity"를 부른다. 노래 부르기를 따로 준비하는 장면은 묘사되지 않았지만 애니는 노래를 잘 소화하고, 오케스트라도 곧잘 박자를 맞춰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어 낸다. '현재 상황은 현실 세계와 다른 애니의 상상이다'라는 연출은 없었다. 즉 이것은 작품 내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가깝다.


윌 글럭 감독은 노래 이전 정황을 생략하면서 결과적으로 개연성도 같이 생략하고 말았다. “Opportunity”는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넘버이고, 자선 행사 장면은 이를 삽입하기 위한 제작진의 서사 변형으로 보인다.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에서 쇼와 현실의 구분이 없다면 넘버와 가사는 곧 배우의 대사와 행동이 된다. 뮤지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면, 애니는 행사에서 다짜고짜 노래를 부른 아이로 비칠 수도 있다. 제작진이 조금 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빴던 점 2: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

<애니>는 뮤지컬과 영화 버전의 배경이 다르다. 1930년대 초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극복을 위해 뉴딜 정책을 시행한 때에서, 2014년 뉴욕으로 시간을 옮겼다(그렇게 바꾸면서 애니와 주변 캐릭터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희석된다). 애니의 인종이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뀌는 등 시대에 맞추어 캐릭터도 변경했다. 단 행동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니가 매주 금요일 저녁 부모와 헤어졌던 식당 앞에 앉아 몇 시간을 기다린다는 점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2014년은 인터넷이 존재하고, 바로 옆에서 스택스가 무료로 스마트폰을 나눠주는 세계다. 부모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최소한 1930년대보다는 많다. 그럼에도 애니는 우직하게 부모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으며 식당 앞에 앉는다. 이것은 ‘애니가 사실은 문맹이었다’라는 다른 설정에서 기인한다. 글을 읽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접할 수 없고 DNA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문해율이 국가 위상에 비해 낮은 수치라고는 하나, 나는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고 영화를 관람했기 때문에 이 설정이 반전이 아니라 기존까지 끌고 왔던 연출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근거는 오프닝 시퀀스에 있다.


오프닝 시퀀스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며 가장 먼저 인지하는 세계다. <애니>의 오프닝 시퀀스가 보여주는 공간은 학교다. 학교에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은 상식이다. 그래서 관객은 애니가 문맹일 가능성을 배제한다. 애니가 참고자료의 도움 없이 머릿속에 든 지식을 술술 꺼내는 묘사는 이를 뒷받침한다. 나는 이 행동을 '애니는 발표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발표도 잘 해내는 똑똑한 아이다'로 판단했지, '애니는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외워 사람들의 눈을 속인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게 문맹 설정은 다소 불쾌하다.


나빴던 점 3: 우연과 억지

작품 전반에 깔린 우연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넘버 “Tomorrow”를 마친 애니는 개 샌디를 처음으로 만나고, 그 과정에서 스택스와 조우한다. 두 사건을 연결하는 과정이 불친절하며 우연성이 짙다.


“Tomorrow”의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샌디가 애니의 앞을 지나가고 그 뒤를 불량배가 쫓는다. 애니는 화를 내며 그들을 뒤따라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애니는 차와 부딪힐 뻔하는데 지나가던 스택스가 이를 발견하고 애니를 인도로 무사히 데려온다. 주변 정황은 ‘애니가 개를 괴롭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로 보인다. 관객은 그 이전에 '애니가 개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애니는 약자에 대한 폭력을 참을 수 없어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나 단서를 듣지 못했다. 애니와 스택스의 작위적인 만남은 설명할 것도 없다.


극 후반에서는 캐릭터 서사가 급격하게 무너진다. 해니건은 여러 사건을 통해 캐릭터가 변화하는데 소소하게 생략된 부분이 많아 변화하게 된 동기가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 동기들은 다소 매력이 떨어진다. 이웃 슈퍼마켓 남자와는 밀고 당기기보다는 해니건이 거절하기를 반복하다, 단 한 번의 대화를 통해 전부 건너뛰고 커플이 된다. 애니를 대하는 태도 또한 가짜 부모 사건 한 번만으로 호의적으로 변하고, 덤으로 아이들에게도 친절한 ‘언니’가 된다. 급하게 전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좋았던 점: 세련된 음악, 그럼에도 “Tomorrow”는 아쉽다

자. 플롯과 캐릭터에서 결점을 드러내면서 매력을 하락시킬 것이라면, 대신 뮤지컬 요소를 살려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니>는 다행히 음악에서는 어느 정도 선방했다. 뮤지션 시아(Sia)와 프로듀서 그렉 커스틴이 힙합 음악을 덧붙여 편곡한 사운드트랙은 듣기 좋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보면 볼품없지만 넘버 연출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훌륭하다. “It’s A Hard-Knock Life”는 원작을 잘 표현했고, "Little Girls"와 "Easy Street"에서는 번뜩이는 센스를 엿볼 수 있다.


It’s A Hard-Knock Life


"Little Girls"


안타까운 것은, 무조건 이겨야 했던 경기에서 비겼다. "Tomorrow"를 두고 하는 말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좀 봤다 하는 팬들에게 익숙한, 브로드웨이 역사에 손꼽히는 히트 넘버다. "Tomorrow" 연출은 1999년 TV 영화(<시카고>의 롭 마셜이 감독했다)에 비해 밋밋했다. 쇼트 활용, 연기자의 움직임, 마무리 부분에서의 세심함이 부족했다. 요컨대, "Tomorrow" 연출은 1999년이 주제의식과 '영화 예술'에 다가간 움직임이라면 2014년은 음악을 담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다.


1999년 영화 "Tomorrow"


2014년 영화 "Tomorrow"


1999년 영화는 앉아 있는 모습과 일어나 걸어가는 모습에 동등하게 1분을 사용한 반면 2014년 영화는 애니가 걸어가는 모습에 2분 가까이를 사용하면서 다소 지루해졌다. 또 1999년 영화는 애니가 일어나는 동작도 로우 앵글에 무대 중앙에 배치하면서 명확히 보여준다. 작품이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은 애니'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Tomorrow"는 그 핵심이다. 그래서 애니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14년에는 이 부분이 생략된 듯하다.


윌 글럭 감독은 애니를 카메라에 담을 때 줄곧 거리를 두었지만, 롭 마셜 감독은 클로즈업으로 시작해 점차 후퇴하고 마지막 프레임에서 로우 앵글로 애니가 꿈꾸는 ‘내일에 희망이 걸려 있는' 뉴욕을 조망했다(애니는 관객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글럭도 똑같이 뉴욕의 풍경을 담았지만 하이 앵글을 선택했다. 하늘과 스카이라인 대신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를 골랐다(애니는 세상에서 등을 돌리고 관객을 보고 있다). 이 연출은 스택스와 조우하게 되는 과정을 다분히 고려한 것으로 해석했다.




공교롭게도 롭 마셜은 같은 2014년,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원작 영화 <숲속으로>를 감독했다. 디즈니의 힘과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원작이 만났고, 마셜은 뮤지컬 영화에 새 활기를 불어넣은 인물이었으니 기대가 넘치는 조합이었다. 예상대로 손익분기점은 여유 있게 넘겼으나 돌아온 것은 <애니>와 같은 혹평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나?


2편 <숲속으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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