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치료전공 직장인 대학원생이 과제를 모아서 한 권의 책 쓰기(02)
<상담이론과 실제> 수업 과제를 구실로 연재하는 두 번째 글이다.
이 주제로 학기를 마칠 때까지 총 10편의 글을 써서 공개할 계획이다.
#2. 정신분석 상담 '유년기 경험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7세 이전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경험이나 사건 등이 무엇이며, 그것이 지금의 나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기술하시오.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는 시점이 저마다 다른데, 저의 첫 기억은 4세에서 5세 무렵입니다. 동네 형, 누나들과 함께 나뭇잎을 따고 빻으며 소꿉놀이하는 장면이고 상기할 때마다 걱정거리 없이 평온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몽글몽글 전해집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낯선 어린이집에 맡겨졌다가 오줌을 싸서 다른 일정이 있던 어머니를 소환한 기억도 납니다. 어머니는 내향적인 분이라서 그런 상황이 겸연쩍은 듯 대처하셨습니다. 이후 6세부터의 경험은 대부분 또렷합니다.
우량아로 태어나는 바람에 집단에서 쉬이 눈에 띄었지만, 기질적으로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대체로 온순했던 저에게 도전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아가서 몇 살 많은 형들과 갈등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그러다가 생채기가 나고 울음이 터지면 어머니는 역시 난처하게 웃으며 달래주곤 했습니다. 6살에 다니던 유치원에서 몇 차례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처음엔 친구를 나무라던 선생님이 저에게도 화를 냈고 이 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와서 이후 대인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선생님 품에 억지로 안긴 뾰로통한 모습이 졸업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제가 자주 경험하는 감정은 ‘억울함’입니다. 분노나 좌절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억울함과 분노가 스멀스멀 차오릅니다. 그리곤 도망치죠(회피). 지난 과제에서 대학 생활에 부적응하였다고 언급하였는데, 그것 또한 6세 때의 경험과 유사한 패턴입니다. 프로이트는 반복강박이라고 보았겠지요. 저는 유년기에 부당한 일을 당하여도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어른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어린 시절 사건을 반추하면서 더글로리의 문동은처럼 원한을 되새기곤 했지요. 그래서 저는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선생님의 성함과 일화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합니다.
꼭 그렇게 기억하는 꿈도 한 편 있습니다. 6세경 살던 익숙한 동네 공터가 배경인데, 피에로를 비롯한 낯선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커스 쇼를 훈련하고 있습니다. 불고리 넘기에 대비하여 훌라후프를 차례로 넘는데, 훈련 대상이 사자나 곰이 아니라 동네 친구들과 나입니다. 피에로는 어린아이들을 유괴해서 단원으로 기르는 듯합니다. 나는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채찍질을 당하진 않을까?’ 겁에 질려서 지시대로 불고리를 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꿈을 꾸는 전지적 시점의 나를 원망하듯 바라봅니다. 프로이트는 꿈이 소원성취 욕구를 반영한다고 보았는데, 괴로운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를 구조하길 바라는 마음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최근 일화에서도 동일한 대인관계 패턴이 읽힙니다. 저는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일이 성인이 지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지역 청년정책 참여기구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 법적 나이가 지나버렸습니다. 그래서 행정동 단위 참여기구인 ○○동 주민자치회에 지원하여 최연소 위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촉장 수여식은 평일 오후 4시에, 회의는 오후 6시라고 합니다. 직장인은 참여할 수가 없는데, 적지 않은 회비를 납부하랍니다. 유치원에서 친구에게 맞은 상황과 같은 갈등에 처한 셈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내심 기다렸습니다. 주민자치회에서 발생하는 세대 문제를 연구하면서 여러 청년을 만나고 인터뷰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주도권을 갖도록 유도하고선 못마땅하면 소심하게 불편한 내색을 비춥니다. 상대방이 이를 수용하면 관계를 지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단절합니다. 굉장히 공손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위장하여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안기는 교묘한 술수입니다. 저를 저보다 잘 아는 배우자는 이렇게 구시렁댈 때마다, “솔직하게 직접 말하라.”라고 직언하지만 쉽게 고치기 어렵습니다.
모두에서 다룬 유년기 경험은 불안정 회피 애착 유형을 시사합니다. 반복강박적인 여러 대인관계 일화는 이런 유형을 지지하듯 매우 전형적입니다. 최근 실시한 MMPI-2 검사 결과에서도 Si2(사회적 회피) 척도가 72점, SOD1(내향성) 척도가 66점으로 유의할 수준이었고 Pd2(권위 불화) 척도 역시 60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지지하는 수치네요. 다행히 보호요인으로 작용할 다양한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나, 이렇게 상담자로서 자신의 이슈를 깊게 이해하는 노력은 결국 내담자의 유익으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참고문헌
1) 최영민. (2010). 대상관계이론을 중심으로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학지사.
2) 김서영. (2014).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무의식에 비친 나를 찾아서.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