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이 계속 깨진다는 사실이 가끔 무섭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내가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일부에 불과했고, 올바른 행동이라고 여겼던 것이 알고보니 어리석은 가치관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지속적으로 달라졌고, 사람들 또한 그들의 시각을 때마다 변모하며 살아간다. 이는 일종의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몸부림이라 생각된다. 세상은 항상 나보다 앞서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내 방 한 켠에는 2021년부터 2031년까지의 연간 캘린더 출력물이 붙어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종종 아무 생각하지 않으며 달력을 쳐다보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1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었고 내가 살고 있던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였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 생각들이 다 마쳐질 때쯤 나는 현재로 돌아온다. 2021년 현재에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10년 뒤, 2031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어떤 것에 주목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고민한다.
(내가 정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 이런 건지는 모를 일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양면성을 지닌다. 이는 과학에서 말하는 '작용, 반작용'과 비슷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고, 앞면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뒷면도 있는 법이다. 이는 정치체계의 작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약간의 너그러움을 가지고 정치 지도자들을 지켜봐야 한다. 다만, 나는 그 양면성의 파급력 정도에 대해 주목해본다. 정치체제 내에서 일어나는 양면성의 영향은 다른 일반인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사람들에게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치학은 목적성을 가진 학문이다. 기본적으로 정치학은 사람과 사람들의 행동, 민주성, 자유의지에 관심이 많으며 사회 전반의 조화를 고민하고 때론 현실의 정치 및 문화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사회의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는 방법, 이유, 방향성 그리고 그 목적을 정립한다. 방향키로서의 학문은 그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문제의 해결책과 같은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법은 강력한 도구 그 자체이자 가치를 논하는 학문이다. 어떤 측의 주장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더 부합한지를 논한다.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늘 옳은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법은 그런 의미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게 내가 법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는 이유이다. 법이 살아가면서 나의 삶에 그리고 타인에 삶에 아주 작은 하나라도 가치를 심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감에 있어 답은 한 가지가 아닐 때가 많다. 인생은 수학이 아니기 때문에, 늘 새로운 관점과 방향성을 통해 생각지 못한 정답이 나오곤 한다. 정치학이 우리 세대 뿐만 아니라 다수가 다같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은 늘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나는 과거‧현재‧미래를 끊임없이 연결시키면서 더 나은 길을 추구하는 학문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