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과 방시혁
방시혁 님과 저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각자 추구하는 결은 달라요.
- Be(Attitude),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中
글 쓰는 시점에서 5일 전, 르세라핌이 "Antifragile" 활동을 마감하고 "Impurities"로 활동을 시작했다. 새로 나온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민희진 대표가 했던 저 이야기가 갑자기 머리를 꽝 때리며 글감이 생겨났다. 이걸 안 쓰면 A&R 지망생이 아니지. 여태까지 힙합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써서 좀 질렸던 감도 있고. 이번에는 케이팝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필자는 두 사람이 총괄 프로듀싱한 결과물을 보며 아이돌 즉, 우상을 해석하는 방향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해냈으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단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딱 남기는건 또 다르니까.
음악을 소비하는건 일상을 영화처럼 만들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진입하기 위해 음악을 소비한다고 생각한다.
축제나 콘서트는 음악의 스케일을 키워서 압도적인 크기의 무대, 광활한 공간, 비정상적인 밀도의 인구를 조성해서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비일상 경험을 제공한다. 매장 인테리어와 더불어 BGM이 중요한 이유는 마찬가지로 매장에서 물건을 소비하는 일상적 경험을 어떻게든 비일상적 체험으로 만들어 만족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면 왜 비일상적 경험을 만들려고 노력하는가? 일상은 재미가 없거든. 당연히 일상적 경험보다 비일상적 경험이 더 기억이 잘 난다. 매일같이 하던 업무나 공부 내용보다는 스터디 카페에서 갑자기 잠꼬대를 하며 "엄마!"라고 외친 사람이 기억에 더 잘 남는 것과 비슷하다.
케이팝은 아름다움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예술이다.
자 이제 케이팝으로 넘어가보자. 케이팝은 음악에 국한해서 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안무, 뮤직비디오의 서사, 미장센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었을 때 비로소 그 편린이 보이는 장르가 케이팝이다. 케이팝 팬덤이 멤버의 속성을 나눌 때, 비주얼 멤버, 춤 잘 추는 멤버, 메인보컬, 예능 멤버 등의 수식어를 사용하고, 신보를 평가할 때 이번 헤어, 메이크업, 코디가 정말 열일 했다. 어떤 안무할 때 표정이 좋다 등 시각요소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케이팝은 기업이 주도하는 음악이 될 수 밖에 없다. 아티스트 개인이 이걸 다 하기에는 너무 어렵거든. 잘생기고 예쁘고 잘 다져진 몸매를 가진 개인이 화장술을 익히고, 자신을 코디하고, 기막힌 춤을 창작하고, 고퀄리티의 보컬과 랩을 제공하는 동시에 프로듀싱까지 한다? 그 와중에 자기 앨범 홍보하는 동시에 셀프 브랜딩 해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소비자에게 헤리티지와 기막힌 경험을 전달한다?
만약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가 수 년의 노력을 거쳐 재능을 갈고닦은 것이다. 아니, 전문화가 고도화 된 현대사회에서는 만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도 못할 것이다. 진짜 레오나르도 다빈치 할아버지가 와도 못한다. 즉, 한 앨범이 나오는 과정을 단계별로 분업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최고의 결과물을 낸 것이 케이팝이다.
케이팝은 아티스트의 얼굴, 몸매, 의상, 헤어, 메이크업같은 인물부터 뮤직비디오 전체의 영상적 요소, 상징 및 서사까지 음악을 중심으로 묶어내는 종합 예술이다. 영화랑 게임만 종합예술이 아니라고. 그 와중에 아티스트 브랜드 가지고 다른 산업에 부가가치 창출도 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는 항상 사람이다.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은 우리가 우상화하는 인물이 명품 브랜드를 착용했을 때 비로소 거리감을 느끼고 명품의 가치를 인식한다. 물론 발렌시아가에서 심슨의 한 화를 통째로 구매해서 프로모션을 진행했으나 이는 심슨이 갖는 상징성에 입각한 전략인 동시에 일회성 프로모션이다. 결국 중요한 일은 사람이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마리오가 아무리 잘나가도 뷰티시장에 진입할 수는 없고, 피카츄가 아무리 귀여워도 UN 연설에 나갈 수는 없다. 그러니 엠마 왓슨이나 방탄소년단이 갖는 소프트파워가 막대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케이팝 시장규모가지고 케이팝이 벌어오는 돈, 케이팝 시장 규모를 지적하며 그거 얼마나 된다고 케이팝거리냐고 얘기하는데 그건 케이팝이 다른 산업군과 국가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음악과 아티스트가 갖는 소프트 파워는 우리 상상 이상이다.
그러니 결국 총괄 프로듀서를 봐야한다.
말이 조금 샜다. 결론적으로 케이팝 아티스트 분석에는 총괄 프로듀서 분석만한게 없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이 거기 다 묻어나기 때문이다. 인선을 누구를 쓸지, 어떤 이미지의 그룹이 필요한지 등 아티스트가 가는 거대한 방향을 이 사람들이 설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방시혁 의장이 총괄 프로듀싱한 르세라핌과 민희진 대표의 뉴진스는 맨 처음 인용했던 민희진 대표의 말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음 표를 보자. 발견할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해에 데뷔했으나 르세라핌의 평균연령이 4살 높다.
둘째, 일본인 유무
셋째, 그 외에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특히 첫번째 결과가 재미있는데, 이게 재미있는 결과인 이유는 두 그룹의 컨셉에서 두 프로듀서의 "결" 이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 식대로 이야기하면 "우상의 벽"의 위치가 다르다.
그게 뭔데 이 씹덕아
아이돌의 공통점은 소비자의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비주얼을 갖고있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붙어 기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서 "쟤 처럼 되고싶다." 혹은 "쟤같은 애인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라는 환상을 심는다. 동시에 "근데 주변에 저런 사람이 어딨음 ㅋㅋ" 이라는 현실을 마주한다. 즉, 우상(Idole)이다. 그러니까 우상의 벽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며, 소비자가 아이돌을 바라볼 때 해당 벽을 거쳐 필터링한 정보를 보게 된다. 즉, 제작자(엔터테인먼트 기업)가 정보를 선별하는 벽이다.
벽을 통해 나오는 정보는 콘텐츠를 통해 드러나는 세계관 등이 될 수도 있고 광고나 예능 활동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벽을 뚫고 튀어나오는 엄한 정보들, 가령 열애설이 등이 소비자에게 도달할 때 우상성이 깨지면서 소비자가 이탈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필터링할 정보의 큰 틀은 결국 총괄 프로듀서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까 여태 서술한 것은 이 우상의 벽을 설명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결론까지 과정이 지나치게 길었다. 필자의 견해를 이야기하자면 민희진과 방시혁은 둘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아이돌을 집어넣는데 탁월하다. 그러나 민희진은 묘사가 현실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반해 방시혁은 비현실을 일상에 침투시킨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그룹 이름에서부터 이런 요소가 두드러진다.
뉴진스는 "새 청바지"라는 뜻의 지극히 일상적인 단어를 채택했다.
반면 르 세라핌은 이름 자체만 놓고 보자면 프랑스어 정관사 "LE(르)"와 천사의 이름인 히브리어 "세라핌"을 합친 단어이다. 이름부터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하다. 설명부터가 이미 뉴진스에 비해 2배 이상 길다. 만든 방법은 I'm Fearless라는 문장을 애너그램한 것, 즉 비현실이 현실에 있을 법한 무언가를 뚫고 들어온다.
이제 두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살펴보자.
뉴진스: 일상 속의 우상
뉴진스는 복잡한 상징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사용하는 방법이 아주 치밀하고 섬세하다. 따라서 누구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 감상을 딥하게 하는 사람들은 곳곳에 숨겨진 디테일을 보며 열광하게 된다.
또한 뉴진스 MV의 주제의식은 10대가 공감할만한 요소가 많다. 즉, 평균 연령을 10대로 맞추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서사전개다. 최연장자가 18세, 최연소자가 14세로 범위가 넓지 않고, 평균 연령도 16세 정도로 매우 낮다. 아이돌 가수의 속성을 고려하면 10대가 와 쟤네랑 같이 친구하고싶다. 아니면 쟤네 처럼 되고싶다. 라고 할 수 있을 법 한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Attention
공연장은 현실 속 비일상이다. 공연 장치인 불꽃소리와 섬광에 놀라서 고개를 들었더니 보이는 어떤 남성. 눈이 마주친 순간 놀라서 가슴이 뛴건지, 남성을 보고 설렌건지 알 수 없는 저 복잡미묘한 표정. 공연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무대를 보며 환호하지만 민지는 비일상 속에서 또 한번 비일상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극히 현실 안에 있다.
텅 빈 경기장에서 핸드폰을 보고있는 모습. 비일상적 장소 안에서 또 비일상을 연출한다. 이걸 해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기가 없는 시기에 스타디움 견학을 가는 것이다. 혹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여는 축구강의에 참석하거나.
이 외에도 Attention의 배경은 전부 현실 안에 있으며 비현실이라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 있으나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비 현실이 아니라 비 일상일 뿐이다.
Hype boy
Hype boy 도 기본적으로 현실 속 요소를 채택한다. 대신 "이 부분은 현실에 없는 요소인데요?"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바로 군무씬 배경이다. 그런데 하입보이 전체 흐름을 살피면 해당 장면 역시 현실 속에 있는 장면임을 알 수 있다.
Hype boy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요소는 인터넷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즉, 현실세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가상공간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요소를 삽입했다. 그러나 그 배경은 지극히 현실 안에 있다. 특히 해인 버전 스크린샷을 살펴보면 "누구?" 라는 말풍선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해인버전 서사의 조연인 남자가 보내는 메시지 내용이다. 즉, 해당 공간이 인터넷 공간임을 암시한다.
Hurt/Cookie
Hurt는 멤버들의 얼굴을 당겨찍는 컷이 많고 Cookie는 미니멀한 배경에 적은 오브제를 놓아 멤버의 퍼포먼스에 집중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즉, Hurt와 Cookie는 뮤직비디오에 서사를 장치로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주제에서 벗어난다.
뉴진스만 그런거 아님?
아닌데요
반론을 피하기 위해 뉴진스 이전 작을 살짝 털어보겠다. SM엔터테인먼트가 세계관요소를 도입하기 이전,그러니까 엑소 이전 작품들을 보자.
여기까지 알아보자. 요컨대 현실에 있는 요소를 낯설게 사용한다. 르세라핌처럼 운석을 맞고 살아있는 사람을 연출하지는 않는다.
르세라핌: 비현실의 일상 침투
방시혁 의장도 민희진 대표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나 스타일에 차이가 있다. 민희진 말마따나 "결"이 좀 다르다. 방시혁은 비현실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살짝 맛보기로 보자면
운석 떨어진대서 죄다 도망가는데 환히 웃는다든지
하늘까지 뻗은 사다리가 나온다든지
명품샵이 입점한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든지
이제 뮤비별로 좀 더 자세히 털어보겠다.
FEARLESS
필자는 개인적으로 르 세라핌에 붙을 수식어가 섹시보다는 스포티에 가깝다고 본다. 스포티한 느낌의 운동 열심히 하는 언니 느낌을 내려면 평균연령이 낮은게 오히려 방해가 된다. 당당하고 강한 이미지인데 나랑 나이는 비슷하다? 그러면 오히려 경쟁자 포지션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평균 연령을 낮출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두 그룹이 재미있는 것이다.
일단 헬스장
헬스장 씬이 넘어가면 바로 단색 철제 계단이 나오고
잠깐 헬스장이 나왔다가 외관상 부티크샵으로 추정되는 깔끔한 드레스 매장. 권투글러브를 끼고 있다가
불이 꺼지면 그래피티.
하늘까지 이어진 계단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임을 암시하는 곳에서 비현실적 요소가 잘 드러나며, 현실 소재를 뒤집어 사용하며 비현실(이 경우, 르세라핌 멤버)이 현실의 비일상으로 침투하는걸 볼 수 있다.
ANTIFRAGILE
FEARLESS에서 본 비현실적 요소가 더욱 강화된다.
운석충돌로 시작하는데 있음직한 일 아닌가?
라고 생각했으나 운석을 보고도 태연한 은채, 심지어 뒤에 살짝 웃는다.
몸에 불이 붙었는데 태연히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운석이 결국 떨어지긴 하는데
태연히 스트레칭 중인 카즈하라든지
이 뮤비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씬
태연하게 먼지를 툭툭 털어낸다. 심지어 주변도 멀쩡하다.
멤버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결전병기라서 그렇다 치고 최소 주변 10km반경은 완파되어야 정상이 아닐까 싶긴 하다.
결국 이런 이미지들이 모여서 Anti-fragile이라는 주제의식을 극대화시킨다. 이질적인 둘을 한데 섞어넣음으로서 생겨나는 그로테스크한 충격과 매력을 대중문화 식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 다운 선택이다.
Impurities
시작은 가볍게
편집상 원래 누워있던 곳이 이곳이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저런 곳에 누워있는데 일단 옷은 다 하얗다.
주변이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있어 인더스트리얼한 무드를 연출하는데
한가운데 붉은 양탄자를 깔고있는 것도 상당히 이질적이다.
같은 장소에 똑같은 기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같은 장소, 그런데 CG처리해서 아치를 지워버렸다.
이 또한 비현실적 요소를 강화한다.
뮤직비디오와는 별개로 impurities면 불순물이라는 뜻인데 음악은 굉장히 부드럽고 몽환적인 무드로 진행되며 의상이 계속 흰색을 유지하는 것 역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한 요소이다.
여담이지만 뮤직비디오가 전부 한 장소에서 촬영 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명 바꾸고 미술팀은 오브제 다시 설치하고 편집 할 때 CG 넣고....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마치며:세줄 요약 포함
결국 방시혁이나 민희진이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케이팝에 잘 살려서 넣는다는 점은 같다.
다만 방시혁은 비현실적인 부분에서 비일상을 타고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오고
민희진은 현실 안에서 모두 이루어진다는 점이 다른 지점이다.
어느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냥 한 번 쯤 분석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해보았다.
한 명은 디자이너 출신, 한명은 미학과 출신이라
둘 다 미술에 조예가 있기도 하고
모 유튜브 채널에서 약간 라이벌구도 같은게 섰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솔직히 신보나 또 뽑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