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준 [번역 중 손실]
관계와 소통
"사람이라는 짐승의 사이"라는 뜻을 가진 "인간"이라는 단어가 한 종의 보통명사임을 생각하면 참 묘하다.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두 사실을 엮어 풀어보면 결국 인간은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명제가 드러난다. 기대어 살기위해 의사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관계를 위해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우리는 물이라는 단어를 보고 물의 이미지, 촉감, 맛, 그 와 관련된 경험을 연쇄적으로 떠올린다. 그러니까 한 존재에 담길 수 있는 정보의 총체가 "물" 이라는 한 단어에 함축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경험을 쌓으므로 물을 보고 모든 사람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수천조 수경가지로 갈린다. 각자 다른걸 떠올리면 안되니까 우리는 "일반론"이라는 이름으로 합의하여 언어에 함축된 정보의 극히 일부분만 사용한다. 수천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소통에는 이런 일반론이 아주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개인 대 개인의 소통에서 언어는 일반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함축한다. 위에 예시로 들었던 "물"에 들어간 정보를 살펴보자. 작년에 여자친구랑 워터파크에 갔다면, "물"이라는 단어는 여자친구와 데이트했던 워터파크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며 같이 먹었던 츄러스, 그 때 느낀 짜릿한 감정 등을 연쇄적으로 떠올린다. 이 정보의 총체가 결국 "물"의 한 요소로 여자친구와의 추억을 포함한다.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소통에 이 정보가 사용되며 짧은 단어로 더 많은 소통을 가능케 한다.
필자 개인의 생각에, 이현준의 [번역 중 손실]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어떤 개인이 타자를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개인 대 개인의 소통은 결국 한 단어에 평소보다 더 많은 정보를 함축한 채로 오간다.
따라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상대의 언어를 치밀하게 "번역"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생존"과 직결된다.
우리는 무리를 이루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므로.
앨범 커버: 인간과 기계가 이루는 그로테스크
음성 번역기가 있다면 그것은 마이크로 음성을 수음한 후 내부 프로그램에서 언어적 의미를 해석하고 번역한 다음 그 결과를 음성 신호화하여 스피커로 내보내는 구조일 것이다.
- 텀블벅, 이현준 정규 2집 [번역 중 손실] 아트웍 디자인 설명, GOND
아트웍은 앨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GOND가 디자인했다. 음성 번역기가 된 인간의 신체를 표현했는데, 듣고 발화하는 기관만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월에 선 발매한 [번역 중독]의 커버와 완전히 대비되는 디자인이다.
알다시피 번역기의 성능은 불완전하다. 많이 쫓아왔으나 글의 맥락에서 생기는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해서 "대충 맞을 수도 있는데 맛깔나지는 못한 번역" 을 하거나 아예 틀린 번역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저 미묘한 뉘앙스까지 수신자에게 도달할 수 있어야 온전히 번역되는건데 그러지 못하니 "번역 중 손실"이다.
뭐 디자인적 요소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인간과 기계라는 상반된 요소를 융합하여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처럼 지식 자랑에 가까운 현학적 설명은 집어치우도록 하겠다. 그 방면에서 전문가가 아닐 뿐더러 그런 설명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사운드: 하이퍼 일렉트로닉 사이버 인더스트리얼 엑스페리멘탈 댄스 힙합 뮤직
소제목이 좀 웃기다.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이거 장르가 뭐에요?" 같은 질문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 앨범은 다종의 장르적 특징을 한데 섞어 실험적인 사운드로 음악을 구축했기 때문에 장르를 따지는게 별 의미가 없다.
굳이 조금씩 얘기해보자면 하이퍼 팝에서 과잉 왜곡된 사운드를 가져왔고, 인더스트리얼 뮤직의 거친 질감, 힙합에서 랩, 사이버 펑크에서 소재를 가져왔으며 전자 음악이라는 점에서 EDM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실험적으로 엮었으니 엑스페리멘탈 뮤직이다.
2010년대부터 장르의 벽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장르의 라벨을 붙여서 "넌 이거야!" 라고 정해버리는걸 별로 안 좋아한다. 오히려 사운드를 가지고 앨범에서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음악은 결국 예술작품이고, 이걸 가지고 어떤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는지가 중요하니까. 물론 장르 구분이라는게 아주 필요 없는건 아니지만 아티스트나 업계 사람, 평론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그걸 빠삭하게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말이 조금 샜다. 필자는 [번역 중 손실]의 사운드가 "의사소통 과정에서 일어나는 전달과 손실"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앨범 전체적으로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트랙은 12번 트랙 "직역"이다. 직역을 하게 되면 우리는 말의 최소한의 의미만 알아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fasten your seatbelt"와 "Could you fasten your seatbelt please?"는 둘 다 "안전벨트 매 주세요"라는 소리다. 그런데 전자는 명령문, 후자는 의문문(의 형태를 한 청유문)으로 각각 담고있는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이걸까지 모두 알아내서 해석하는게 번역의 영역이고, 그걸 고려하지 않으면 그냥 직역이다. 즉, 직역은 의미가 많이 손실된다.
그리고 12번 트랙 "직역"에서는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아카펠라가 극도로 왜곡되어있고, 가사지를 보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서사: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사이버 펑크 배경의 피폐 로맨스물
앨범 전반에 비유와 상징이 알차게 깔려있다. 먼저 배경지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먼저 게슈탈트는 독일어로 "생김새"라는 뜻이다. 영상학에서는 특정한 점이나 가상의 선을 이용해 특정 이미지를 상상한다. 이렇게 상상한 이미지는 심리적 클로저라고 한다. 예를 들어 ∴ 와 같은 모양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모를 떠올린다.
세모=게슈탈트
세모를 연상하게 만드는 우리가 상상한 가상의 선=심리적 클로저
소마(SOMA)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가상의 마약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책에서 나오는데, 부작용 없는 마약이라고 한다.
Windows 95 Launch Dance는 밈이다.
화이트 라이터는 도시전설이다. 27클럽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Bic사의 흰색 라이터를 사용하던 걸출한 아티스트가 단명한걸 보고 White Lighter Myth라는게 퍼진 것이다.
이 정도 알면 윤곽이 보일 것이다.
가사 80%+필자 상상 20%
나는 술집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취했을 때 비로소 진심을 꺼내는 타입이다.
그러니까 술을 마신 지금 꺼내는 말은 진심이다.
요즘 생각이 안멈춰서 예전보다 술을 찾게 되는데,
멍청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느낀다.
뭐가 더 위고 아래고는 따질 필요가 없다.
근데 다들 내가 위에 있는 줄 안다.
서로가 깊어지면 가까워지는거라 속인다.
인간관계에 대해 주절거리다보니 상대가 심심했을거라 생각된다.
근데 뭐 어때, 어차피 오늘 보고 안 볼 사이인데.
그냥 웃고 재미있으면 우리 사이가 좀 더 편해질거고,
저기 여자랑 어떻게든 자보려고 자기 가정사 늘어놓는 사람보다야 이게 낫지 않겠어?
무슨 얘기를 더 해 볼까. 좀 뻔하게 돈?
넌 돈에 초연한 편인가?
아니면 돈이 최고라 느끼는 타입인가?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인데, 의미를 어디에서 찾든
의미를 찾는 나만 남겨지는거면 그게 무슨 소용이람.
어차피 해결은 안될거고,
해소되는 쪽으로 푸는거지.
모르는 사람한테 너무 속에있는걸 꺼내놨구만.
혹시 다음에 보면 서로 모른척 하기로 하자고.
어차피 우리는 서로가 될 수 없으니까 다시 낯설어질게 뻔해.
난 술을 먹어야 진심을 보이는 타입이니까.
잘가
“나”의 생각이 시작된다.
난 왜 여기에 있지.
태어나고 보니까 나였는데
그럼 나는 뭐지? 같은 존재론적 호기심.
그런거에 답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모른다고 해버리는거지.
왜 그런지 좀 들어봐줘.
돈을 벌기 위해 사는데 돈 때문에 사는건 아니지.
그럼 뭐지? 라는 말을 할수록 익숙해지는게
참.. 익숙하지 않은 단어로 다가오는군.
외로운 것도 돈과 가까운 모양인데,
이걸 해소하는데에도 내 돈이 들어가잖아.
너랑 만나면서 어차피 돈을 써야 하니까.
너를 중심으로 산다… 그럼 결국 말이 좀 바뀌는군.
네가 없으면 못 산다는건가?
친구는 가난을 핑계삼아 사랑도 피해서 사는거 같던데…
그럼 결국 돌고 돌아 돈인가?
삶의 형태(게슈탈트)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삶의 형태가 붕괴(게슈탈트 붕괴)하는 것 같다.
모든 의미를 곱씹을수록 모든 의미가 바래지니까.
고민을 털어놔서 해결책을 제시해줘도
듣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까지 계속 털어놓을거고
어차피 “네 말이 맞다”라는 그 한마디가 필요한거 아냐?
그래서 그냥 모르겠다고 대답할거야.
내 존재까지 붕괴하는 것 같아서.
웃어 넘기는 게 잘 안된다.
유머코드가 좀 다른다.
내 농담은 나만 얼빠지게 웃고
오해를 받아도 굳이 풀려고 안해.
굳어가는 관계도 바꿀 생각이 없으니까.
근데 사람들도 왜 웃는지 몰라.
나 혼자 너무 진지해서 농담을 거짓말로 느낀다고.
근데 사람들이 따라 웃으라니까 기계처럼 웃어.
삶이 거짓말같아서 농담으로 바꿔야하나 싶어.
뭐가 유머인지 가끔 궁금하니까?
가끔 관계도 안내서가 있었으면 좋겠어.
니가 울 때 다들 어떤 농담을 꺼냈어?
웃어보이자는건 좀 아닌거같아.
그건 그냥 보기 싫은걸 가린거니까.
성형수술하고나서 마음을 봐달라는거랑 같은 것 같은데.
농담에 대한 이야기가 지난 후 마약인 SOMA를 처방받는 “나”
많이 복용하면 스스로 목숨 끊는 것 까지도 무뎌질 수 있는 강력한 마약이다.
이어지는 SOMA의 광고
단 몇 그램으로 부정적 감정을 소거하는
행복을 만드는 약
인터뷰를 보면 다 괜찮다고 말한다.
는 것도 아무렇지 않을 때 이런 말이 많이 나오던데
끝을 봐야하는 내 성격엔 이걸 생각하면 좀 무덤덤하다.
내가 죽어서 뉴스에 나온걸 엄마가 본대도 상관 없다.
내가 위험하다는 말은 위험하지 않다.
왜 다들 괜찮아질거라고 말하는지 알겠다.
이거 완전 마약이다.
어쩌면 다들 나보다 먼저 이 약에 절어있었던거다.
우린 다 이거에 미쳐있다.
근데 이 약의 효능이 끝나면 공허함이 또 배로 커질까?
위험한 생각이 나려고 해
괜찮다는 말을 우리 사이에 놓는다.
이거에 내가 속는건가?
내가 나를 속이는건가?
비가 오고 달리는 차에선 내 생각이 왜 안좋게 바뀌는가 했다.
운전이 난폭해지면 그 때 아빠의 표정은 겁이 날 정도였다.
근데 어느새 운전대에는 기계가 막히는 대로를 피해서 데려간다.
왜 나는 길을 돌아가려고 했지?
해보지도 않은 운전을 겁냈던건 왜일까.
생각들은 생각보다 집요하다.
알약 통은 어디있지, 하며 의자 뒤로 따라 눕는다.
퓨즈가 나간 표정, 이 기분이 오래 됐으면 해서
길을 돌아가잔 말이 나올 뻔 했다.
실수도 없고 망설임도 없는 자율주행 기계인 너는
아마 집에 가기 싫단 말을 이해 못하겠지.
생각해보면 이 차에서 우린 안 좋았다.
음악 취향가지고 싸우고, 면허 좀 따라고 싸우고…
뒤에 있었던 강아지는 싸움 직관하게 하려고 데려왔나.
양손으로 운전대 잡는 우린 항상 긴장됐었지.
참 웃기지 사소한 문제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왜 사과하나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이해 안된 채로 지내는걸 익혔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기계가 하니까.
기계가 하는 운전처럼 딱 이 정도 거리가 필요했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을 없애는 바람에 항상 사고가 났다.
네가 차를 몰던 운전석엔 이제 아무도 없다.
무기력한건 이제 고칠 수도 없고, 공허한건… 운전석이 비어서라고 치자.
좀 더 차에 있고싶은데 기계한테 말하려니까 좀 어렵네.
쟤는 어차피 이해 못 할 텐데.
너무 자세히 해석하다가 이제 의미를 잃었다.
생각해보면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다 번역 오류였다.
깊게 미워할수록 닮아간다. 글씨를 세게 쓰면 공책 뒤에 흔적이 남는 것 처럼.
그게 데이터가 되고 그 기억들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게 되어있다.
그 중 오류같은 사랑이 있고 그게 제일 괴롭다던데.
확실한건 사랑했다는게 데이터가 된다는거다.
근데 사랑한건 맞을까? 기억을 뺏긴 것 같다.
처음에는 사랑해달라고 했는데 어느새 충실하라고 하잖아.
너를 죽이라는건 맞나?
위험한건 삶의 오류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삶 자체가 오류인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해석을 해?
난 멍청함에 면역이 없다.
진지한데 멍청이가 되는 회로에 전원이 없다.
허구한날 술마시며 놀러다니면서
미래가 없다며 우는 녀석이 진지해지자고?
어디 구글링한거가지고 떠드는데
소수 얘기 하면서 하는 그런 식의 섹스어필 진짜 싫어.
니가 가짜든 진짜든 알바야?
뭐가 진짠지도 모르겠는데.
어차피 다 거짓말 하는데 뭔 상관이야 그냥 즐기자고
너희들은 우리 오빠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벽에 브로마이드를 붙여놓고 있는데
그런 감정이입은 좀 역겹더라고.
사냥개랑 사냥감을 흩트리잖아.
나는 물고싶은데 이놈은 울고있다고.
멍청해지고싶어서 의사랑 얘기했는데 쉽게 생각하래.
그냥 쉽게 쳇바퀴처럼 돌아가래.
생각해보니 멍청한것도 괜찮은거같네
머리 좀 아픈거 빼곤 다 괜찮아.
뭔가 하나 빠지긴 했는데 감각이 없는 로봇같아.
전에는 음악이 전부인 것 처럼 무게를 뒀는데 한가지는 알았어.
이걸 위해 태어날수는 없고
아픈건 싫은데 사라지는건 괜찮아.
잘 때 누가 데려간다고? 땡큐지.
이제 내 마음 감추고 덮는거 잘 해.
마음에도 없는 말로 잔뜩 낮추고, 엎드리고…
어쩌면 내가 편하려고 솔직한가봐.
너에 대하 진심은 전부 다 오지랖같아.
얼마 안 남은거같은데 왜 설교를 고민할까
무관심은 아름다워질 수 없을까?
신체 스캔을 받는 나
뇌파 상태가 불안하고, 우울과 불안을 겪고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소마 몇 그램을 처방받고 상태는 해결된다
숲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 자신이 어딨는지 모른다.
인간 입장에서야 나쁘겠지만
가끔
산불은
모든걸 처음부터 재생할 수 있다.
난 아빠의 불씨로 태어나 엄마의 불로 태워졌다.
불 붙는 순간에 끝이 무서웠다.
어찌 보면 사랑은 담배와 닮았다.
내 사랑도 돛대같지만 중독에 대해서는 다들 해 보기 전에 말한다.
사랑을 피우는 순간 증오도 시작한다.
담배처럼.
근데 네가 태운 담배는 죄다 말랐는데
다시 태워지고 싶다고 하네.
나한텐 흰색 라이터가 필요한거같다. (=죽고싶다)
한 번도 안 닦은 뿌연 안경을 쓴다. (=정보량 손실을 고의로 놓아둔다)
지문이 많은 안경으로 그냥 놔뒀다.
눈이 안 좋아져서 눈을 안 감고 잡았다며 벌레를 들고 네가 웃던게 생각이 나는가보다
넌 말할 때 눈을 계속 감았다.
마음 같은 걸 믿는 사람 같았다.
눈을 잘 못마주치고 말을 다 못 끝마치는 너한테
안경은 어떤 의미였을까 싶다.
대화는 어떤 의미였을까 싶다.
대화는 내 얼굴을 살펴야하는데.
너한테 (대화는)어떤 의미일까.
그건 문자로 할 얘기가 아니란 말(은 어떤 의미일까).
내 눈을 보며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놓지 않는 너는
눈에 든게 많아 다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니가 우는게 보일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이라는 말이 제일 어렵다.
넌 이제 눈에 보이는게 다인 듯, 나를 비웃는다.
보이는게 다인 사람,
우린 멀리서 봤다면 벌레같이 보이지 않았을까.
난 이 어색한게 아무렇지 않지만 넌 불편함을 참는거지?
넌 호들갑 없는 나한테 말이 없다며 뭐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네.
잘 사는거로 그냥 마음이 가 있는 일을 끝내면 잊는거지.
사랑, 돈, 술, 섹스까지. 답이 필요 없는 대화들.
처음 봤던 사람한테는 친절을 섞은 내가
너한테 왜 또 피곤 섞인 대답이 나올까 했지
난 그냥 내 생각을 마취하고
농담이라며 웃는 너를 따라 웃었어.
근데 오래 웃는 니가 좀 무섭더라.
왜 이런게 부담이 될까.
난 다른 생각하고있지만 듣는 척은 해야하고…
제발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겠네
내가 망가지면 너도 망가지게 번역되니까
가까이 하지 말자.
멀어진게 편해졌나봐.
다행이야. 멀어질 수 있다는게.
집에 와서 내 플러그인을 제거했으면 좋겠다가도
항상 연결되고싶어서 핸드폰을 놓지 못해.
핸드폰의 제자리는 어딜까?
내가 돌아올 수 없다는걸 알면 이걸 버릴까?
뭔가 검색해야 할 것 같아.
근데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검색할 게 검색 되어있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팔 받침대에 올린 손
내가 의자에서 뒤돌고 있으면
그 땐 죽은건지 모르겠지
물러서
아침에 봤던 뉴스가 여기저기 많이 들린다.
다들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 뉴스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 뉴스는 너도 보고 있군
넌 손잡이도 잡지 않고 뉴스만 쳐다보고 있다.
그게 중요한가.
난 여기 서있는데.
근데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이
넌 여전히 뉴스를 보고있네.
넌 멀리 있니
난 문 앞에 와있어
무심히 문 앞에 쌓여도
어려운 날 해석하기 싫은거 알아
그냥 대충 쌓아둬
신문처럼
??? 이게 뭔소린데요
당연한 반응이다. 가사를 중심으로 서사를 나열한 뒤, 맥락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상상을 조금 끼워넣었을 뿐이니까.
필자의 해석을 간단히 요약하면
화자는 머리에 생각이 가득한 사람이다.
화자의 인간관: 인간은 지나치게 가까울수록 서로 이해를 못한다. 적당히 거리가 있는게 낫다(자율주행에서 드러남)
연애를 했다.(앨범 메인 서사)
서로 소통이 안된다. 니가 한 말을 나는 이해를 못하고 내가 한 말을 니가 이해를 못한다.(앨범 메인서사)
그냥 멍청하게 사는게 나은 것 같아(SOMA, Windows 95 Launch dance)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겪은 사랑(가족관계에서 느끼는 사랑, WhiteLighter참고)은 이런 것 뿐이었네
그냥 떠나는게 낫겠다.(Good Bye Closer, 클로저는 게슈탈트를 위해 인간이 상상으로 긋는 선의 형태)
화자 사망 후의 에필로그(Newspaper)
위와 같다. 그러니까 화자의 캐릭터인 "생각이 많다"에서 파생된 문제로, 사랑과 삶의 게슈탈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게 지나쳐서 게슈탈트가 붕괴 즉, 클로저와 작별을 고한다. 클로저가 상징하는건 게슈탈트를 이어주는, 떨어진 것을 연결하는 관계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 소통 과정때문에 일어났다. 즉, 번역 중 손실 때문에 일어났다.
솔직히 가사를 누군가에게 해석해 주는걸 별로 안 좋아한다. 상대방의 해석하는 재미를 빼았는다는 생각도 들고, 이현준 말마따나 필자는 아티스트의 생각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거창하게 "해석"이라는 말을 붙여서 사람들한테 전달한단 말인가. 필히 필자의 해석은 "번역 중 손실"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얘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 들여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정보 과잉과 왜곡의 시대: 우리는 파편화 되고 있습니다.
Boy I can't come close to yo
We're livin' in hate generation
Girl I can't come close to you
We're livin' in hate generation
-재키와이 - HATE Generation 中
우리는 개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멜론, 지니, 벅스 등 국내 음원 플랫폼은 스포티파이가 국내 시장에 진입하기 직전 큐레이션 서비스를 앞다투어 출시했고, 구글과 메타는 맞춤 광고를 하고, 넷플릭스는 모든 사람의 메인 페이지가 다르다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다.
이런 식으로 필터버블이 극화시키는 대립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고 극단적으로 가면, 우리는 상대의 말을 "번역" 해서 이해해야 하는 시대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 인간이 "번역 중 손실"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사회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잘게 쪼개져 서로 반목하는 장에서, 인간은 이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혹시 생존조차 불투명한 것은 아닐까?
비극적 사이버 펑크 서사: 우리는 어디로 갈까?
이현준의 [번역 중 손실]에서는 사이버 펑크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는 사회가 묘사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 되어있고, SOMA라는 마약이 광고가 될 수 있을 만큼 일상적이다. 극도로 발전된 기술 아래서 인간이 서로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해야하는 사회가 우리 미래일 수 있다는 소리다.
이현준이 의도했는지는 모른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필자는 이현준의 생각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는 앨범을 감상한 온전한 필자만의 생각이다.
앨범을 감상한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다. "번역 중 손실"을 막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