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깨고 나오기
처음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UX 라이터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저에게 배정된 것이 아니었는데요. 담당하던 프로젝트들이 연달아 마무리되면서 공백이 생겼고, 할 일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해당 프로젝트의 딜레이로 인해 팀원들이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상황을 물어보니 서비스의 방향성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으로 파악되었어요.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하잖아요. 프로젝트도 똑같아요. 방향성만 잡으면 이 기회에 UX 라이팅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팀원들과 상의 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1. Branding
가장 먼저 한 일은 질문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서로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러프하게 브랜딩/기획/타깃 등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며 생각의 간극을 좁히고, 그 이후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브랜딩을 정리했습니다.
라이팅을 하기 전 브랜딩을 정리한 이유는 해당 기업의 타깃과 방향성을 파악해야 보이스 앤 톤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은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음보다 다름, 배민다움
2. Voice and Tone
UX 라이팅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정확성입니다. 보통 UX 라이팅이라고 하면 위트 있는 문구나 화려한 이모지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비즈니스 목적을 분명하게 가져가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요.
UX Writing Guideline의 초안을 정리하긴 했지만 이미 디자인까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는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UX 라이팅에 대한 근거를 모으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작업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팀원들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소통보다 근거를 찾기에 급급했던 것이죠.
3. Develop
UX 라이팅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기획/디자인의 변경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회사에서 기획/디자인의 포지션에 있다 보니 열심히 고민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더 변경사항을 말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또 UX 라이터가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기도 했고요.
이 과정에서도 아티클, *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며 모든 결론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였습니다. 당연한 것을 이제야 기억한 거죠. 바로 내부미팅을 잡고 팀원들과 진행상황을 공유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결국 더 나은 기획과 라이팅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쓰면 아무도 안 읽습니다.
과정 중 하나를 소개해드리자면, 서비스의 기능 중 선물이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사용자가 선물을 보내고 싶은 사람의 번호를 입력하면 문자가 발송됩니다. 해당 문자에는 선물에 대한 정보와 사용방법이 적혀있고요. 그런데 사용자 입장에서 선물을 보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타인의 번호를 요구받는 것이 당황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번호를 입력하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었거든요.
관련해서 디자이너님께 발송되는 문자 예시를 제안드렸습니다. 만들어야 할 컴포넌트와 이유, 기대되는 효과를 말씀드렸더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고,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 좋은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걸 보면서 역시 혼자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4.UX Writing Guideline
1차로 작성한 UX Writing에 피드백을 녹이고 UI Text Guideline도 작성하여 팀원들도 언제든 UX 라이팅을 만들 수 있게끔 정리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이드라인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일단 뭐라도 기록하자는 마음으로 적다 보니 점점 형태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목적은 누구든 프로젝트에 투입되더라도 UX 라이팅을 작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디자이너님이 해당 가이드라인을 보고 라이팅을 작성하셨는데 보이스앤톤이 잘 맞아떨어져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ㅎㅎ
5. What I learned
UX 라이팅이 글만 쓰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디자인/개발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기획/디자인 둘 다 하기 때문에 중간에 투입되었어도 빠르게 플로우를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먼저 나서서 정리한 부분도 많았고요. 관련 지식이 없었다면 서비스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UX 라이팅을 진행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학처럼 답이 딱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답이 아닌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견해가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레퍼런스에 대한 과한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항상 체크해야 했습니다. UX 라이팅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주의한 건 대기업의 라이팅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령 모든 기업들이 Yes라고 말해도 우리와 서비스 방향성이나 보이스앤톤이 다르다면 No를 외쳐야 하니까요.
UX 라이팅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거나 누락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팀원들이 자연스럽게 UX 라이팅을 이해하고 인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요. 체화를 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최근 내부브랜딩(Internal branding)을 구축하면서 읽었던 *책이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우리가 만든 작업물이 됩니다. 체화는 이렇게 라이터의 글이 아닌 우리의 글로 인지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디즈니 고객 경험의 마법, 배민다움
처음으로 UX 라이터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실수도 하고 부족한 모습도 보였을 텐데 믿고 따라와 준 팀원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신뢰를 받는 만큼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했지만 하루하루가 설레고 신나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본인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생각정리에 도움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