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
1편에서는 디자인 시스템의 제작기와 실패한 이유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에이전시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단순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1차적으로 실패했지만, 이전의 경험을 발판 삼아 더 나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 시스템에 너무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목적을 생각한다면 사실 꼭 디자인 시스템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반복작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자동화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하고자 했던 이유를 잊고 결과물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목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시스템은 방안 중 하나일 뿐이다, 즉 목적인 효율적인 업무 체계에 집중하기 위해 목표를 디자인 시스템이 아닌 시스템으로 변경합니다.
목표를 변경하니 틀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야를 더 넓게 볼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에서 컴포넌트가 활용될 수 없다면 더 넓은 가이드를 제공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컴포넌트가 아닌 페이지에 집중합니다. 로그인을 구성하고 있던 Typography, Button, Input, Icon가 아닌 페이지 자체를 통째로 만드는 것이죠. 템플릿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 외 회원가입, 게시판, 문의와 같이 꼭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코어 비즈니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페이지의 시스템을 제작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반복되는 작업을 자동화 혹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표는 시스템을 제작하는 것이었고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반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페이지 시스템(템플릿)을 활용해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던 시간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에 시간을 사용하게 되니 시간=완성도의 효과도 보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기대하는 만큼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활용하지는 못했어요. 제작할 수 있는 페이지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역시 디자인을 변경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얻은 게 없는가? 그건 아닙니다. 경험의 측면에서 많은 성장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시스템을 제작하기 위해 기본기를 공부한 디자이너는 체계적이고 일관된 컴포넌트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개발자에게 정돈된 라이브러리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의 언어가 통일되면서 프로세스가 생기고, 시스템을 제작한 실무자들의 이해도가 동일했기 때문에 협업을 할 때도 빠르게 소통이 가능했어요.
몇 개월 후 사내에서 신규사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동안의 에이전시 경험과 차이점이 있다면 프로젝트의 종료가 없다는 것인데요. 팀원들과 구축부터 운영, 그리고 개선을 반복하는 것이 꽤 기대가 되더라고요.
프로젝트의 목적은 MVP를 제작하고 빠르게 시장에 내놓는 것이었지만,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방향성을 고려했을 때 확장될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경험과 팀 협업을 설계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팀원이 모두 같은 방향성을 바라볼 수 있도록 브랜딩을 통해 이해관계를 맞추고, 일관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디자인 시스템을 제작했습니다.
이전의 경험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팀원들의 이해도가 같았기 때문에 빠른 소통이 가능했고 제작기간도 단축되었어요. 규칙을 정하고 서비스의 방향성을 고려하여 컴포넌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디자인의 기본적인 전문 지식을 향상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든 사람은 디자이너, 프론트 개발자였지만 디자인 시스템을 통해 다른 직군의 실무자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용자에게도 일관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릴리즈 후 재정악화로 사업은 중단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이러한 도전을 통해 팀원들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더 중요한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시스템이 일관된 경험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에이전시에서 제작을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1편을 발행한 후에 같은 고민을 하는 디자이너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비록 완벽한 결말은 아니지만 절대 낙심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는 이러한 과정으로 성장도 하고, 글도 쓰고, 이직도 하게 되었으니까요. 어떤 경험이든 남게 되니까 꼭 도전하셔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1편 댓글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 주세요. :)
워낙 뛰어난 인재가 많은 IT업계에서 이제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이러한 도전을 쌓아가며 성장하고 기록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ᐡ₃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