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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Jul 12. 2022

나는 12년 차 을입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

 나는 교육공무원으로서 공무원이 지켜야 할 여러 의무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학교는 전형적인 관료제 조직이다. 일정한 절차와 규정이 정해져 있고 우리 구성원들은 정해진 절차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학급의 담임으로서, 또는 교과지도교사로서 저마다의 교육관을 가지고 지도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틀은 학교장, 각 교육지원청 및 교육부 등 상위 기관의 지침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나의 가치교육관과 전체 규정이 상충하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힘든 것 중 하나는 야간 자율학습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적극적인 유도와 장려에서 좀 더 넘어선 범위까지. 예・체능으로 진로를 확실히 정해서 실기 학원을 꼭 다녀야 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학급의 전체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었다.(학교장의 방침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또는 학년실 회의에서 웬만하면(이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모든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담임선생님들께 지도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듣곤 했다.


 독서실을 다니겠다, 대학교를 진학하지 않겠다 등의 이유로 야간 자율학습 신청서에 불참 표시를 하여 제출한 학생들은 모든 담임교사들이 다시 불러내어 설득하고, 잘 안되면 학부모님께 전화하여 설득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무사히 전체 구성원 중 90% 넘게 자율학습 참여에 동그라미를 치고 동의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학기 중반쯤이 되면 자율학습 시간 내내 자는 학생들이 반이었고, 떠드는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에는 각종 이유들을 대며 조퇴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수두룩했다.


 어떤 학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이렇게라도 공부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다고 생각하시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하루 종일 학교에 묶여 있으면서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전반적으로 학교 생활에 불만족하는 아이들은 교사나 친구들과의 충돌도 잦아지는 것 같았다. 또한 정말 조용한 분위기에서 학습을 하고 싶어서 자율학습을 신청한 학생들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또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좀 더 성공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는 길은 한 방향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아이들과 상담할 때에도 이러한 나의 생각은 조금씩은 숨겨둔 채, 나는 좀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지금 택할 수 있는 다른 많은 길보다 최선인 듯이 말하며 아이들이 자율학습 신청에 동그라미를 치도록 유도했다.


 또한 학생들의 용의 복장 규정도 학교마다 규정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교복 치마의 길이가 무릎은 덮어야 한다거나, 펌이나 염색은 금지라는 등의 규정들. 이러한 학교의 용의 복장 규정도 청소년 토론이나 인권 관련 토론에서 자주 주제로 올려지고 각종 찬반 의견들이 나름대로의 근거에 따라 활발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찬반 의견이 아니다. 내가 속해있는 학교의 규정이 어떤가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제법 스트레스가 많았다. 더워서 교복 셔츠 대신 통풍이 잘되는 면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 입술에 발갛게 틴트를 바른 여학생들.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하거나 생각하는 과정은 차후에 문제이고 우선 학교 규정에 맞게 벌점을 주기도 하고 매일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나름의 교육관을 가진 교사로서의 나와 조직의 규정을 따라야 하는  구성원으로서의 나는 이렇게 때로 충돌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살다 보면,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지.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단다. 그것을 배우는 곳이 학교이고.


사실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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