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카카오톡 메신저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지인들은 가족을 제외하고 10여 명, 아주 후하게 잡아도 20명 내외인 것 같다. 물론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는 100명이 넘는다. 초, 중, 고, 대학교, 대학원 등 20여 년의 학창 시절과 1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알게 되고 맺어온 사회적 관계도 많지만, 그만큼 정리하게 된 인연들도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인연도 있지만 내가 칼같이 끊어낸 지인들도 있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생들과의 모임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려고 한다는 나의 말에 '왜? 네가? 너무 안 어울린다.'라는 말을 던진 친구들과는 지금은 친구로 지내고 있지 않다.
학창 시절 제법 까불거렸던 내가 선생님을 하겠다니, 누군가를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어색한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임용시험에 합격한 해에는 모두들 사회인이 되어 있었고, 그 친구들과 다시 만남을 가졌다.
시험을 준비하느라 그전에 있었던 모임은 나가지 못해서인지,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반가웠다.
- 우리 저번 모임 때, 임용시험까지 100일도 안 남았다고 못 나온다고 해서 우리끼리 의아했지. 100일이면 되게 많이 남은 거 아냐? 공부 엄청 열심히 하는가 보네, 했지 뭐야.
꺄르륵 웃으며 얘기하는 친구들.
나에겐 일 년에 한 번뿐인, 경쟁률 40:1의 일생일대 중요한 시험이었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하던 친구들과 자연스레 직장생활의 고충을 나누게 되었고, 나도 대화에 합류하였다.
그 당시 근무 중인 학교에는 타반 출입금지라는 교칙이 있었고, 아이들은 꽤나 자주 그 교칙을 어겼다. 어긴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학생은 나에게 소리 지르며 반항하는 모습을 보였고 23살의 나는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물론 지금은 흔하디 흔한 일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에피소드를 전하며 다시금 그때의 억울함과 서러움이 올라오던 차, 한 친구는 슬쩍 웃음 지으며 말했다.
- 그냥 좀 들어가게 해 주지. 다른 반에 좀 들어가면 안 되나?
그 친구에게 교칙의 중요성이라든지, 필요성을 논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친구들에게는 더 이상 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날의 만남 이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아주 친했고 소중했던 친구들이지만 나를 깎아내리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외에도 내 결혼소식을 전하자, 축하한다는 말은 한마디 없이 요즘 결혼한다는 사람들이 많아 부담스럽다며 혹시 축의를 해야 하냐는 말부터 하던 대학교 동기와도 관계를 정리한 적이 있다. 또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인 남사친이 나에게 여성의 키에 따른 이상적인 몸무게를 표로 정리한 것을 보내주며 나를 비웃길래 관계를 정리했던 적이 있다. 이상적인 몸무게는 표준 몸무게보다 훨씬 적은 숫자였고, 당연히 나는 그 이상적인 몸무게보다 많은 건강한 여성이었다.
말로 천냥빚을 갚는다 했던가.
말로 천냥빚을 지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
남편은 가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독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당신은 그렇게 가깝고 친했던 사이를 어떻게 단숨에 칼같이 관계를 끊어낼 수 있냐고.
나는 남편에게 얘기한다.
단숨에 끊어낸 것이 아니라고. 우리 관계의 소중함을 생각해서 여러 번 인내했으며, 그 인내심이 바닥났을 때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고. 나를 소중한 존재로 여겨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내 시간과 마음을 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