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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Jul 01. 2024

여교사로 산다는 것

#1.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수업을 막 시작하려는데, 맨 뒤에 앉아 있는 학생이 말한다.


-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무시하고 다음 말을 이어가는데, 한 번 더 말하는 학생.


- 선생님,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여기는 남자중학교 3학년의 교실이다.


하던 말을 멈추고, 그 학생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한다.


- 너 지금 선 넘는 거 알고 있지?


그러자 조용히 엎드리는 학생.


조용히 그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 얘기했다.


- 내가 왜 불렀을 것 같니?


- 수업시간에 딴 소리 해서요.


- 무슨 말? 네가 다시 한번 얘기해봐.


- 첫사랑 물어보고....


- 또? 아기 어떻게 생기냐고? 너 지금 열여섯 살이지? 진짜 어떻게 생기는지 몰라서 질문한 거니? 그리고, 지금 과학시간이니? 관련된 주제를 배우고 있니?



나는 사회교사이다.


- 아니요.


- 엄마 앞에서도 웃으면서 그런 농담할 수 있니?


- ... 아니요.


- 충분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면서, 장난식으로 다른 친구들 다 있는 데서 그런 질문을 하면 선생님 기분이 어떻겠니? 부모님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라면, 선생님 앞에서도 하지 마라. 너만 재밌는 건 장난이 아니야, 상대방을 희롱하는 거지.


- 네,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부끄러운 듯 사과하는 학생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다.


- 네가 평소에 선생님한테 살갑게 대하고 애교가 많은 건 정말 장점이야. 그렇지만 할 말 못 할 말 구분하지 않고 선을 넘은 언행을 하는 건 곤란하다. 아까 선생님은 매우 불쾌했다. 성희롱적 발언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건 교권 침해 행위이기도 한 거 알지? 그렇지만 네가 충분히 알고 반성하는 것 같으니까 선생님이 이번에는 벌점만 주도록 할 거다. 앞으로 말할 때 신중하게 하도록 해라. 알겠니?


- 네, 죄송합니다.


그 학생에게 벌점을 부과하고 메모사항에 기입했다. 

"수업시간에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 아기는 어떻게 생기냐는 등의 질문을 하며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고 교사에게 불쾌감을 줌. 그러나 잘못을 반성하며 사과하여, 태도 개선의 가능성을 보고 벌점을 부과함."


적힌 메모사항은 학생과 보호자의 연락처로 문자가 발송된다. 



#2. 젓가락이 그렇게 재밌는 단어일 줄이야


중학교 1학년 수업시간, 동북아시아의 문화에 대한 설명 중이었다.


- 한국, 일본, 중국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이죠.


- '젓'가락. 크크크큭..


한 학생이 '젓가락'의 '젓'을 크게 외치며 키득거린다.


- 뭐 하는 거야? 재밌니?


순간 조용해지는 교실 안.


- 다시 말해봐. 어떻게 얘기했니?


- 젓가락이요.


- 내가 다시 해줄까? 젓!!!! 가락.


- ...죄송합니다.  


활동지 작성을 지시한 후 잠시 그 학생을 교무실로 불렀다.


- 수업 들으면서 그런 것이 연상되고 속으로 재밌을 수는 있어.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이 다 있고, 선생님이 있는 앞에서 그런 식으로 젓가락의 '젓'만 굳이 강조하면서 키득거리는 건 굉장히 불쾌하다. 충분히 무슨 의미인지 알 만한 나이 아니니? 수업 분위기도 흐리게 되고. 너 혼자만 재밌는 건 재밌는 게 아니다. 말할 때 좀 더 신중하고, 조심하도록 해라. 알겠니?


- 네, 죄송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 해당 학생에게 벌점을 부과하고 메모사항을 기입했다.

"동북아시아의 문화를 수업하던 중 '젓가락'의 '젓'을 크게 발음하며 웃어 수업분위기를 방해함."




최근 일주일간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한 선배 교사는 한참 그럴 때지 않냐며 그래도 바로 인정하는 게 어디냐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 진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궁금해서 물은 건데요?

- 그냥 젓가락이라고 말한 것뿐인데요? 

- 그런 의미 아닌데요?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면 불쾌감뿐만 아니라 분노, 교사로서 느끼는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

실수하면서 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으니 남학생들의 희롱적 발언에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야 한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거기에는 동의할 수 없겠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해도 된다거나 해도 괜찮다는 것과는 다르다."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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