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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Sep 26. 2024

두 번째 엄마

다정한 말이 문득 떠오른 날

장일호 기자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을 읽다가 산부인과 이야기가 나를 멈추게 했다.


속옷을 벗고 의자 위에 올라앉은 내 허벅지를 남자 의사는 자꾸만 툭툭 건드렸다.
 "몇 번이나 해봤어요?"
 "남자 친구랑 할 때도 이렇게 뻣뻣해요? 힘들어서 진료하겠나......"
대거리를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진료를 마치고 소견을 듣는 자리에서 겨우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환자를 불쾌하게 하는데 재능이 있으시네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왜 저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당시는 어렸기에 용기가 없었다. 이후 산부인과는 나에게 불편한 공간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산전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을 때도 여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을 찾았다. 같은 성이면 조금 더 친절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찾아가 만난 선생님이 '최노미 선생님'이다.


산전검사에서 갑상선항진증이 발견되어 대학병원에 소견서를 써주며 건강해지면 임신해서 만나자고 약속하셨던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왔던 선생님. 오늘은 그분의 다정한 말들이 떠오른다.




선생님 산모 중 가장 철없던 엄마가 바로 나일지도 모르겠다. 임신초기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대구까지 8시간에 걸쳐 남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엄마가 즐거워야 태아도 즐겁다는 생각에 캐리비안 베이로 놀러 갔다. 온천에 들어가려는데 마음의 소리가 묻는다. '태아에게 괜찮을까?' 묻는 것은 잘했던 덕분에 바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수화기 속에 선생님은 웃으며 "족욕만 하고 오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에도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급하게 병원으로 이동했다. 선생님의 표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아가 괜찮은지 빠르게 검사를 하셨다. 다행히 엄마도 태아도 아무 탈없었다.


한 번은 미친 듯이 매운 갈비찜이 먹고 싶었다. 남편을 졸라 찾아간 식당에서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먹었다. 그날밤 배를 잡고 뒹굴었다. 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았다.


"먹고 싶다고 다 사주시면 안 됩니다."


남편은 쉽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철없는 엄마와 달리 태아는 건강하게 자랐다. 다만, 거꾸로 자리를 잡았던 태아가 막달이 되도록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제왕절개 날짜를 잡았야 했다. 제왕절개하는 날, 신기하게 태아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친정엄마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선생님 응원으로 자연분만에 성공했고, 아기와 무사히 만났다.


이후에도 철없는 산모가 걱정이 되어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셨다.

"나중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답답해도 내복 꼭 챙겨 입기. 엄마가 잘 먹어야 아기도 잘 돌볼 수 있어요. 끼니 거르지 않기. 아이 돌보면서 힘들면 남편에게 도움 요청하기."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산모와 아는 건강하게 지내다 퇴원했다.




선생님, 지금 그 아기는 중학생이 되었고, 철없던 산모는 선생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임산부를 볼 때면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무지했던 엄마에게 다정하게 건넸던 말들. 잊지 못할 겁니다. 지금도 많은 임산부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계실 선생님을 떠올려 보며 멀리서나마 감사함을 전해 봅니다. 지나고 보니 인생에 귀인들이 많이 존재했네요. 덕분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낸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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