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는 날은 항상 긴장된다. 올해로 11년 차지만 결과를 들으러 갈 때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
"괜찮습니다."
다섯 글자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다.
5년이 지나면 완치다. 정기검진을 가까운 병원에서 해도 되지만 매번 서울 아산병원을 고집하는 이유는 딱하나다.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싶어서다. 혹여나 오진을 할까 언제나 긴장하는 가족들을 더 이상 걱정 시키고 싶지 않다.
병원 진료실 앞, 눈에 들어온 글귀가 있다.
[의사가 말한다]
오늘도 많은 암환자들이 이 방에 들어옵니다.
'지금의 치료가 최선인지, 더 나은 치료법은 없는지...'
간절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마음 푹 놓고, 치료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그분들의 동반자로서 따스한 온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분들이 안심하고, 치료에 매진할 수 있도록
우리가 모였습니다.
[환자가 말하다]
암이라고 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진료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지쳐있는 나를 보듬어 주는 이곳 '암통합진료실'
여러 의사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나의 치료를 위해 고민하고, 결정합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어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안심합니다.
- 서울 아산병원 암통합진료실에 있는 글귀
맞다. 처음 암판정을 받고 두렵고, 무서웠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웃고, 울었다.
오늘 담당선생님이 차트를 보며 한명식 선생님은 자신이 존경하는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이제 현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11년 전 그분을 만났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본다.
처음 만났던 김쌤은 너무나 무섭게 말을 했다. 진행이 많이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곧 수술할 환자에게 안심대신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다. 서른다섯 살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암담했다. 두려움에 의사를 변경했다.
한명식 선생님으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하얀 머리의 선생님.
몇 기가 뭐가 중요하냐며 우선 배를 열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선생님.
확신에 찬 말씀으로 환자에게 믿음을 주셨던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두려움 대신 희망을 가졌던 시간들.
선생님, 잘 지내시죠?
덕분에 두 번째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 확신에 찼던 선생님의 말에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을 했지만 퇴원을 할 수 없었던 저로 인해 출근을 저의 병실로 하셨던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까칠한 환자의 투정에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따뜻한 말에 감사했습니다. 2주 만에 재수술을 하고, 인공항문을 달고 40일 만에 퇴원을 해야 했죠. 그때 무너지는 저를 토닥여주셨던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집스러운 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다시 수술을 해주셨고, 다시 보통 사람으로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공항문을 떼고 퇴원할 때 선생님 말이 기억납니다.
5년 완치 판정을 받으면 꼭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벌써 11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때의 일들이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그만큼 건강해졌다는 사실인 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사의 확신에 환자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저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은 걱정 대신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뵙고 싶었는데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네요.
선생님이 살려주신 삶, 반짝반짝 빛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용기 낼 수 있도록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