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작가인 하비에르 카예하의 특별전이 한가람미술관2층에서 10월 27일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의 감정을 알아맞히는 것은 쉽지 않기에 조심스럽게 딸에게 의사를 물었다.
"딸, 귀여운 전시회가 열렸던데 함께 갈래?"
아이가 살짝 관심을 보이길래 바로 휴대폰으로 전시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는 일요일에 가자고 짧게 대답한 후 자신이 하던 뜨개질을 계속 이어갔다.
주말 예술의 전당으로 오는 길은 항상 막혀 운전하는 내내 힘들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도로에 차가 적다. 전시관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의아해하며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 ARE YOU READY?라는 글자만 보인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NO ART HERE의 푯말을 든 팔이 보인다. <이곳에 예술은 없다> 그저 보이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액자 하나가 덩그러니 전시해져 있다. 아이는 어떤 상상을 했을까. 계속 걷자 '눈이 큰 아이'가 보인다. 눈이 커서인지 귀엽다. 우리는 동심의 세계로 들어온 듯 걷고 또 걸었다. 다양한 눈이 큰 아이들을 만나자, 아이는 귀엽다며 요리조리 살피느라 바빠 보인다.
작가의 작품 스케치를 보며 한참을 서서 작품을 감상한다. 작가의 작업 공간을 보며 자신의 방과 닮은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며 연신 즐거워한다. 검정고양이와 눈이 큰 아이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며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며 사진을 찍는다.
깊이 생각하는 전시가 아닌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즐기다 보니 1시간 만에 관람이 끝났다. 아쉬움을 달래며 굿즈샵에 들렀다. 아이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인형 하나에 25만 원이에요, 티셔츠는 8만 원이 넘어요." 아이는 고민하다가 우표와 엽서 다섯 장을 데리고 왔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딸에게 제안을 해본다.
"딸, 오랜만에 서울 왔는데 교보문고 광화문점 갈래?"
"서점 좋아요."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차에 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기쁨을 만킥했다. 최근 있었던 손글씨 수상자들의 글씨체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글씨를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음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2022년 책출간 후 두 번째 방문이다. 그 당시에도 느꼈지만 많은 책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음에 놀라울 뿐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장소를 정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안다. 딸은 소설코너에 있을 것이고, 나는 에세이, 자기 계발서 코너에 있을 것을. 한참만에 누군가 내 팔을 툭 친다. 아이 손에는 소설책 두 권이 들려 있었다. 나는 에세이 한 권과 정리에 관련된 책 한 권을 골랐다.
"엄마, 아까 오면서 보았던 알록달록한 빈백이 있던 장소에 가보고 싶어요?"
교보문고에서 한 5분쯤 걸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일까. 자세히 보니 이곳은 서울 야외 도서관이었다. 서울은 도서관 행사도 스케일이 다르다.
한강 작가의 수상소식을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려고 했지만, 예약자가 너무 많아 빌릴 수 없었다. 근데 이곳에 한강 작가책이 있었다. 밤 9시까지 야외도서관은 운영된다며 읽고 반납하면 된다고 했다. 담요도 무료대여다.딸과 함께 감탄하며 서울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우리 동네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읽을 공간이 많다. 혹시나 하면서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엄마입니다>를 검색해 보았다. 누군가 희망도서로 신청했을 것을 생각하니 감사하다. 많은 경험을 하며 나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며 다짐해 본다.
"엄마, 서울은 서점도, 도서관도 너무 좋아요."
"그럼 우리 다음에는 국립중앙도서관 어때? 거기 음식도 싸고 맛있다던데."
"네 좋아요."
행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