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우리 둘이 친해서 만났다기보단, 부모님끼리 친해서.
영재는 항공대학교를 나와서 파일럿이 되었고, 범진이는 재수를 해서 서울대 의대를 입학했으나, 휴학중이라고 했다.
초등학생땐 영어 시간에 1년에 한 번 전교생 앞에서 영어 발표날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우리는 장래희망에 대해 발표를 했었고, 나는 범진이와 파일럿이라는 똑같은 장래희망을 가졌다는 지점에서 같은 조로 묶였었다.
지금은 별 것 아니지만 당시엔 파일럿이라는 직업은 판사라는 직업과 더불어
대통령, 가수, 과학자, 의사 보다 마이너했던 직업이었다.
다른 조원들은 5,6명씩 한 조가 되어 준비할 동안 우리 조는 2명이었던지라, 의상을 준비할 때도, 대사 수정을 할 때도 촉박했으며, 발표 당일 카메라 여백도 심했고, 꽤 눈에 띄었었다.
우리를 지도했던 영어 선생님들도 종종 5,6학년이 된 나를 마주치실 때마다 당시 발표 대사였던
“범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가 되고 싶어했대요. 해열이는 어렸을 때부터 새가 되고 싶어했대요.“를 흉내내셨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한국 최고의 대학교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고
나도 늦은 나이에 의대에 가겠다고 수능을 치겠다는 이 꼬라지가 영 묘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게다가
원래대로라면 영재가 의사가 되고 싶어했는데 이 아이가 파일럿이 되어 왔다.
한창 어색했는데 우린 그 별 것 아닌 접점으로 서로 정확하게 바뀌어서 온 게 묘하다고 킬킬거렸다.
처음에 영재와 범진이와 약속이 잡혔다고 모친에게 들었을 때, 나는 영재가 의대를 갔을 줄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할아버지가 과거 대통령 주치의셨다고 했고, 그의 부친도 이비인후과를 꽤 크게 한다고 들었어서.
그러나 반대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외국으로 떠났고 곧 이스라엘로 취업이 되었다고 했으니, 우리 중에 소득이 제일 높다고 또 낄낄거렸다.
사람의 앞일은 늘 모르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