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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Apr 09. 2021

설레면서 두려웠다

하와이 유학의 시작

  늘 그런 식이었다.

  호기심이 일어나고, 궁금해서 자꾸 보게 되고, 자꾸 보니 원하게 되고, 간절히 원해서 힘에 부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처음 오는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는 하와이. 첫눈에 반해서 결국 살아 보기로 했다. 신랑은 한국에 두고 혼자서 초등 두 아이와 함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넓은 세계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 6살 때, 나와 친했던 직장 후배 가족이 신랑 덕분에 국비유학을 다녀오면서 부러움에 나도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유학이 조금 더 간절해지기 시작했던 시기는, 큰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부터였다. 

  학교는 20여 년 전 내가 다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겉모습은 전자 기자재, 화이트보드 등으로 멋지게 변한 듯 보였다. 하지만 똑같은 교육 방식으로 공부의 비중은 더 커져있었다. 세대가 변한 만큼 기대했던 학교 분위기에 크게 실망했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하던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그 모습이 이미 초등학교 때에 겹쳐 보여 지레 숨이 막혔다. 적어도 초등까지는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 놀기를 바랐는데 순진한 생각이었다. 강요하는 공부는 힘듦을 알기에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었는데, 사교육을 받지 못했던 우리 아이는 이미 초등 1학년 때부터 쳐지기 시작했다. 1학년 1학기 공개 수업 시간에는 알든 모르든 손부터 들던 아이가 2학기 공개 수업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변 친구들이 똑똑해졌고 부모들은 갈수록 사교육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학원에 보내지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공부를 봐주지도 못했다. 퇴근해서 밥 해먹이고 나면 이미 8시가 훌쩍 넘었고, 학교 숙제가 끝나면 바로 잘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지 못했는데 서로 피곤하고 힘든 시간에 눈 비비며 아이와 문제집 같은 걸로 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자연히 주변 친구들과 우리 아이의 공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나도 모르게 이제 겨우 저학년인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고 있었다. 죽어도 내뱉지는 말자고 다짐했지만, 아이를 자랑하는 친구 엄마의 말을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감정이 쌓여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말을 내뱉어 버렸다. 딱 한 번이었지만 우리 아이의 상처는 깊었고 지금도 종종 그때 너무 싫었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우리 아이는 친구들에게도 별로 인기가 없었다. 나에게는 보석처럼 빛나 보이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아무리 엄마인 내가 다독여도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우리 아이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 아이가 결국 공부가 좋아질 때가 올 것을 믿었다. 사실 그 공부가 대입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길고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늦더라도 그 길을 찾고 따라 가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다려주기 쉽지 않았고 당장 내 아이의 자존감이 중요했다. 그래서 짐을 싸기로 했다. 내가 유학생으로 가게 되면 아이들도 외국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국비유학은 아니더라도 자비로 가능하다면 추진해보기로 했다.      


  설레면서 두려웠다.

  한 번도 못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돈과 방법이 문제일 뿐. 사실 꿈을 꾸더라도 돈이 없고 방법을 몰라서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신랑 설득에만 2년이 걸렸다. 신랑이 보기에는 불가능했지만 꼭 가고자 하는 내 눈에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도 막상 신랑 설득을 끝내고 마음먹고 유학원을 다녀보는데 환율은 껑충 뛰고 내수는 좋지 않다고 했다. 환율 몇 십원에 당장 예산이 몇 백만 원이 왔다 갔다 했다. 하필 하와이는 유학지로 생각하기에 생활비가 너무 많이 비쌌다. 무엇보다 월세가 비쌌고 전기세도 주유비도 미국에서 가장 비쌌다. 섬이라서 모든 것이 배편으로 수입되어 값이 비쌌다. 아이들이 아니라면  하와이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유학 준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가족 모두 힘들어 질까 봐. 

  그런데,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해야겠다 싶었다. 두려워도 움직여야 했다. 우리 가족 모두 힘들어지지 않도록 나는 내 자리에서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나는 바랐다. 열심히 공부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스스로 따라와 주길. 엄마와 유년기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찾고 즐기는 공부가 되길. 학교에서 사랑받고 자존감 있는 아이가 되길. 그리고 영어에서 자유로워져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이든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권리를 갖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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