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인연이다 – 낯선 땅에서 내 집 찾기
첫 번째 집의 계약이 끝났다. 연장을 원했지만 집주인은 1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이사를 했다. 그러나 새로 이사한 집에서 물이 새 다시 또 이사를 해야 했다. 그렇게 1년 2개월 만에 세 번의 이사를 경험했다.
처음 계약할 때 집주인은 1년 계약이지만 중간에 집이 팔리면 나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대신 월세를 주변 시세보다 200달러 저렴하게 해 주었다. 집이 팔려도 거래 완료까지 4개월이 걸리니, 그때쯤 새로운 집을 알아보면 된다고 했다. 당장의 저렴한 월세에 혹해 계약했고, 다행히 1년을 무사히 보냈다. 만약 중간에 이사를 해야 했다면, 비싼 월세에 허덕이며 집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어학원 1년 과정이 끝난 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같은 집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집을 여전히 매물로 내놓고 있었고, 언제 나가야 할지 몰랐다. 1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에 아쉬움을 삼키고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를 앞두고 집 상태를 원래대로 유지해야 했기에 청소에 심혈을 기울였다. 보증금에서 청소비를 과하게 공제할까 봐 걱정했지만, 깔끔하게 정리한 덕분에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신중하게 집을 구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는 대신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고 싶었다. 수리가 필요할 때마다 연락이 어렵고,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루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인 인터넷 카페에서 한인 부동산 리얼터가 올린 매물을 찾았다. 작지만 원하는 조건을 거의 다 갖춘 집이었다. 원 베드룸, 마룻바닥, 집안에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이 있었다. 그리고 수영장 시설도 갖춘 콘도였다. 월세도 저렴했다.
이사업체를 예약하고 이삿날까지 잡았는데, 갑작스럽게 한국에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할 수 없이 이삿짐을 부동산과 지인에게 부탁했다.
이삿날, 걱정한 대로 새벽부터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사업체가 주인집에 있던 집기까지 다 가져와 되돌려 놓느라 시간을 허비했고, 이사 갈 집 엘리베이터 예약이 안 되어있어 당일 입주도 불가능했다. 짐을 모두 지인의 창고에 가져가 보관하고, 다음 날 다시 옮기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하와이로 돌아온 날은 약 2주 뒤였다. 그날따라 비가 쏟아졌다. 좁은 집에 가득 찬 짐을 보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싱크대에서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에 연락했지만, 밤이라 당장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옆집도 같은 문제로 욕조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배관이 문제였고, 공사를 하는 동안 우리 집 바닥까지 물이 스며들었다. 마룻바닥이 들뜨고, 축축한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감돌았다.
이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부동산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고, 사진을 첨부하며 아이들 건강 문제를 이유로 강경하게 나갔다. 결국 보증금은 돌려받았지만, 이사비와 이미 낸 월세는 돌려받지 못했다. 싸울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묘지가 보이는 우중충한 꼭대기 작은 집, 빨리 떠나고 싶었다.
세 번째 집 이사도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로 6층까지 짐을 들고 옮겨야 했다. 하지만 이번 이사는 행운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아이들 학교에서 도보 2~3분 거리에 있었다. 방 하나와 거실이 분리된 원 베드룸이었고, 내부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바닥과 싱크대, 욕실 가구까지 모두 새로 리모델링해 깨끗했다. 콘도 내 수영장은 없었지만 완벽했다.
무엇보다 월세가 두 번째 집과 비슷했지만 더 큰 집이었다. 서향이라 덥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집 안으로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에어컨 없이도 쾌적했다. 겨울에는 바람이 세서 오히려 내복을 입고 잘 정도였다.
부동산에서 관리도 체계적이라, 세면대 고장부터 냉장고 문제까지 연락하면 바로 수리해 주었다. 건물 매니저도 친절해서, 이사하는 날 직접 짐을 들어 도와주기까지 했다.
하와이에서 1년 2개월 동안 세 군데 집으로 이사를 하며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마지막 집은 축복이었다. 이 집이 아니었다면, 코로나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서 깨달았다. 집도 결국 인연이고, 정성을 들이면 나를 맞아줄 좋은 집이 나타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