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 도전은 현재 진행형
배수구에 쌓인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었다.
‘매일 이렇게 빠지면 금방 대머리가 되겠네.’
영어 공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실력은 늘지 않고 애꿎은 머리카락만 줄었다. 빠진 머리카락만큼 영어 실력이 늘면 좋을 텐데,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강렬한 태양 빛에 새카매진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다. 나이 들어 공부하다니 노화만 앞당기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수업은 하루 4시간. 직장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던 때와 비교하면 반나절 수업은 거저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오리엔테이션 첫날부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단어라도 알아듣겠다고 집중했더니, 마칠 때쯤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업 강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4시간 수업이 끝나면 방전되었다. 숙제도 수업 시간만큼 걸렸다. 영어 공부에 하루 8시간 이상을 투자했다.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딸, 아들뻘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영어 실력이 금방 늘었다. 처음엔 나보다 못하던 친구들도 몇 달 지나니 나를 앞질렀다. 나는 밤새가며 했던 숙제를 그들은 수업 시작 몇 분 전에 뚝딱 끝내고 왔다. 밤새 놀아도 수업을 따라가는 그들의 체력과 기억력이 부러웠다.
그들은 외국인 친구들과 인스타그램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금방 친해졌다. 여행도 같이 다니고, 쉬는 날이면 어울려 놀았다. 나도 그 친구들 덕분에 인스타그램을 만들었다. 정작 내 소식을 올릴 일은 없었지만, 젊음이 빛나는 그들의 일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부러워할 수만은 없었다. 나이 때문에 뒤처지는 건 더 싫었다. 딸들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집중할 수 없어, 재우고 나서야 책상 앞에 앉았다. 숙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놀면서 공부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했다. 쉬운 책은 두어 시간 만에 읽어 치웠다. 하지만 영어는 달랐다. 한 문장을 읽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겨우 이해한 문장을 다시 읽으면 또 헷갈렸다. 말하기와 쓰기는 더 난관이었다.
특히 ‘말하기 시험’은 최악이었다. 문법 시험은 자신 있었는데, 제시된 문법을 적용해서 말로 표현해야 했다. 긴 내용을 듣고 기억하는 것도 어려웠다. ‘절대로 외우거나 보지 말라’는 시험 규칙 탓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발표 도중 실수를 할까 봐 외우고 또 외웠다.
‘어떻게 나온 유학인데.’
포기할 수도 없었다. 신랑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괜히 하와이에서 공부하는 게 호강으로 들릴 것 같았다. 해외까지 나가야 하냐며 반대했던 그였다. “내가 뭐랬냐?”는 말이 돌아올까 봐, 오기로라도 참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도 있었다. 은퇴 후 공부하러 온 일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셨다. 그중에서도 안과 의사였던 레이코 할머니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제니, 네 나이가 부러워. 그 나이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레이코를 보면서 힘을 냈다. 나이 들어 시작하는 공부에도 장점이 있었다.
첫째,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체력은 떨어졌지만 버티는 힘은 남들보다 강했다. 공부가 어려워도 될 때까지 앉아 있었다. 시험과 숙제도 최선을 다했다. 포기하지 않았을 뿐인데 항상 90점 이상을 받았다. 우등상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성적이었다.
둘째,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어를 못하면 답답했지만, 나이 들어서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직장을 준비하는 대학생들보다는 부담이 적었다. 그들은 토익까지 준비하며 취업 걱정을 했다. 나에게는 그런 부담이 없었다. 오히려 젊음이 부럽다고 했더니, 그들은 안정적인 내 생활이 부럽다고 했다.
셋째, 나이를 잊을 수 있었다.
영어에는 높임말이 없다 보니 이름을 편하게 부를 수 있었다. “제니~” 하고 부르면 모두 내 또래 친구처럼 느껴졌다. 스무 살 대학생도, 일흔 넘은 할머니도 친구였다. 선생님조차 이름을 부르니 거리감이 없었다.
“제니는 참 편해요. 사회에서 만났다면 이렇게 친해질 수 없었을 거예요.”
영화배우를 꿈꾸던 친구의 말이 고마웠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세대에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다. 직장에서는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만큼 거리도 생겼다. 하지만 하와이에서는 스무 살이든, 마흔 살이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였다. 하와이에서 4년을 살면서 나이를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나이를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그 말을 듣자 안 아프던 허리도 아프고, 관절도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하와이에서 배운 게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오히려 나이 들어 시작하는 도전을 더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하와이에서는 나이 많은 바리스타나 서빙하는 분들도 당당하고 멋졌다.
“하와이에서는 일흔 넘은 분들도 당당하게 새로운 도전을 해요. 아직 오십도 안 된 우리가 늦었다고 할 이유가 없죠.”
지금이 가장 왕성한 나이다. 나이를 핑계 삼지 말고, 도전을 늦추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가장 젊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