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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번아웃 오다

완벽한 엄마이고 싶은 몸부림

by 만석맘 지은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전화를 했다.

“에어프라이어는 필수야. 꼭 사! 얼마나 편한데.”

밥 하느라 고생한다면서 에어프라이어를 사주겠다고 돈을 보냈다. 주말에는 복잡해서 잘 나가지 않는데, 마음이 고마워서 바로 나섰다. 주말에 요리할 일도 많으니, 바로 요리해서 언니에게 사진을 보내주고 싶었다.

주말 오전, 코스트코는 북적였다. 장난치는 아이들이 사람들과 부딪힐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큰 아이는 카트를 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카트를 밀면서도 집중하지 않고 실랑이를 했다. 한 번 카트로 내 발꿈치를 쳤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봐 몇 번 주의를 줬다. 그런데 결국 카트로 내 발뒤꿈치를 세게 치고 말았다. 벗겨진 피부가 피멍으로 변해갔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미국에서는 아동학대가 큰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가까스로 참았다. 아이들도 당황하며 미안하다고 울먹였지만, 정작 울고 싶은 건 나였다. 삼키는데 눈물이 흘렀다.




꿈꿨던 여행, 악몽이 되다


어학원 10주 과정을 마치고 3주간의 방학이 주어졌다. 학기 중에는 숙제와 공부로 아이들을 잘 못 챙겼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마침 아이들의 봄방학과 어학원 방학이 겹쳐서 이번만큼은 아이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틈틈이 미국 본토 여행을 계획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하나씩 일정을 짰다. 하지만 졸면서 구매했던 항공권 시간이 오전이 아닌 밤 시간이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오전 비행기임을 뒤늦게 알았다. 변경할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여행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피곤한 저녁 시간에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LA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서 산 도시락은 밥이 말라 먹을 수 없었다.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디즈니랜드로 가는 셔틀을 탔다. 아이들도 나도 꿈에 그리던 디즈니랜드였다. 꿈같은 하루를 상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아이들 장난은 끝이 없었다. 장난에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났다. 아이들은 싸우고, 나는 화를 내고,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다시는 너희랑 여행 오나 봐라.’ 이 말만 속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5일간의 여행이 끝났고, 남은 것은 사진 몇 장과 씁쓸함뿐이었다.


무너지는 나


여행 후에도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더 무기력해졌다. 여행이 주는 설렘과 기쁨이 사라진 자리에 피로와 짜증만 남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을 치고 싸웠다. 나는 이전보다 더 쉽게 화를 냈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쳤다. 마치 내 안의 인내심이 모두 소진된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무기력했다.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지 않는 책은 쌓여갔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살림도 못하고, 아이들도 제멋대로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랑은 혼자 떨어져 어렵게 돈을 벌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해외 생활은 무리한 선택이었을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화만 내는 마녀가 되어 있었다.

내가 노력하면 아이들도 변할 줄 알았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면 아이들이 더 좋은 경험을 하고, 더 성장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을 치고, 싸우고,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있는 걸까? 영어고 뭐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위기였다.


기운을 주는 아이의 한 마디


“이번 여행이 너무 좋았어!”

귀를 의심했다. 싸우고 혼나기만 했던 여행이었는데, 아이는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아이의 한 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모르고 있었는데 번아웃 상태였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라, 지쳐 있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에너지


아이들은 때로 콩나물 같다. 비록 물을 다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 쑥쑥 성장했다. 그런 아이들은 말 한 마디로 엄마를 살리기도 한다. 위로가 되는 한 마디. 방전되었던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었다. 다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힘내기로 했다.

‘어떻게 온 하와이인데.’

아이들과의 시간은 소중했다. 완벽한 엄마가 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웃고, 함께 경험하고, 함께 성장하면 된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종종 시간이 걸렸다.

그날 밤, 아이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엄마도 너희랑 여행 가서 참 좋았어.”

아이들은 활짝 웃었고, 나는 그 미소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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