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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 May 19. 2024

나를 잃은 그 해

19살에 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해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18년의 목표를 달성해서가 아니었다.

합격의 순간 행복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해 1년은 행복은 커녕 꽤 길고도 지옥같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나에게 목표가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 해 내내 술을 마셨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20대는 잘 놀아야 한다고 했다.

놀라고 하면 놀아야 하는 것이 주입식 인간의 특성 아닌가.


술에서 낭만을 찾은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며 강제로 낭만을 주입했다.

그렇게 받은 1학년 1학기 학점은 2.7 / 4.3

(불행인지 다행인지 친구 덕분에 학점을 잘 주는 강의를 들었고

8번 이상 결석하지 않으면 C 밑은 안 주시는 교수님을 만났다.)

아무 감흥이 없었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했었으니까.



침대와 인터넷으로 여름방학을 보내고

다시 학교를 가기 시작했다.

1학년 2학기에는 결국 사고를 쳤다.

(구체적으로 쓰기에는 이제 이런 일들을 떠벌릴 체면이 남아있지 않다.)

이런 나를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고 휴학을 결심했다.



학교를 쉬고,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보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다.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시키는 걸 잘 해온 인간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보이는가?


그렇게 영어 학원에 등록하였고

교환학생조차 가지 않을 나는 이유도 모른채 TOEFL을 보았다.

80점을 넘어야 수강료를 환급해준다는 말에

인생에서 18년 동안은 꽤 쓸모 있던 경쟁심이 발동되었다.

결국 25만원짜리 시험을 보고 82점을 받아왔고 환불을 받은 채로 침대로 향했다.


스스로를 모범생이라고 믿은 적은 없지만

세상에서 하라는 걸 안 하는 깡따구는 없었던 나였다.


그렇게 휴학을 한 1학년 2학기는 끝났다.

그리고 그 해도 끝났다.

그때는 몰랐다.

이 방황이 14년이 넘게 지속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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