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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ppy Mar 31. 2021

숲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샤이니숲길'







숲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숲은 제 품을 내주며 대답해 주었습니다.
생명이 흐름을 타서 나아가는 방향이
곧 너의 길이라고







우리들은 태어나서 부모의 손길로 걸음마를 떼고, 학교에서 학문을 공부하며, 사회에서 사는 법을 배워갑니다. 하지만 자연은 스스로 생명을 틔우고, 스스로 나아가며 스스로 순환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가치와 정의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며 실천합니다. 반면에 인간은 끊임없이 학습하고, 의존하며 평생을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헤매게 됩니다.








길을 잃은 것 같아요




길을 헤매다 한 숲길을 만났습니다. 이름은 없지만 이름이 있는 짧은 구간의 숲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샤이니 숲길이라는 비밀의 숲이었어요. 숲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짧았던 이 곳은 나에게 참으로 강렬한 기억을 심어주었습니다. 무심한 듯 섬세한 삼나무 향을 은은하게 뿜어 대는 이 숲길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게끔 했어요. 저는 이 길에 끝에 서서 외쳤습니다. ‘길을 잃은 것 같아요!’ 그러자 숲은 대답 없이 제 몸에서 떼어낸 나뭇잎 하나를 제 발치에 건넸습니다. 마치 저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만 같았어요. ‘길을 잃어야 또 다른 길을 찾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누구나 길을 잃는 단다.




 나뭇잎을 살포시 손에   다시 숲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바스락 거리는 자갈과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걷는 내내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어요.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높이 뻗어 있는 나무가 시야를 한가득 채워옵니다. 눈을 살며시 좁혀오니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매서운 바람에  이겨 꺾인  가지, 길게 뻗은 몸통 곳곳에 새겨진 생채기 ..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치열한 삶의 흔적들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스치는  하나도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았고, 과정 없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째서 이제야 깨닫게 되었는지 작은 탄식이 한숨처럼 흘러나왔습니다. 누군가에겐 쉬워 보였던  모든 길들이, 길을 잃음으로써 얻은 자신만의 길이었다는 것임을.







나를 찾아 떠나는 용기






이 나무들이 다 자랄 때까지, 그 나무들이 모여 ‘숲길’이라고 불릴 때까지 얼마나 수많은 고난과 기약 없는 기다림이 스쳐지나갔을 까요. 그 고됨은 여기 있는 이 나무만이 알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나무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거예요. 끊임없는 생명을 향한 갈구는 결국 그들을 싹 틔웠고, 또 하나의 나 다움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 길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수없이 길을 잃으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임을 이제는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할 따름 이 에요.

비록 10분도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산책 길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언젠가 또 한 번 길을 잃게 된다면 또 한 번 이곳을 찾아 이렇게 외칠 것만 같아요.  ‘저 또 왔어요! 다시 한번 길을 잃었거든요!’






by. choppy

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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