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니. 이거 말고 딴 거.
내가 나고 자란 경상도에서는 ‘소고기뭇국’이라는 음식이 조금 다르게 불린다. 무와 소고기를 볶아 간장과 소금으로 간해 맑게 끓여낸 국은 ‘탕국’이라 부르고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얼큰하게 끓여낸 것이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다. 지금이야 다들 경상도에 가보지 않더라도 검색 한 번 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둘의 차이점을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 토착 음식 덕분에 어찌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그 시절은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시는 날엔 자연스럽게 옆집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 거기서 저녁을 먹던 때였다. 학교도 못 들어간 꼬맹이였던 나 역시 가끔 낯선 밥맛을 느끼며 끼니를 해결했다. 익숙히 알던 맛은 아닌지라 다른 사람 자리에 앉은 듯 불편했지만 애기는 그냥 주는 대로 먹는 게 미덕이라 믿으며 이름도 모르는 음식들을 잘 먹었다.
그러던 한 날, 아주머니가 퍼담아 준 국이 말도 안 되게 맛이 좋았다. 푹 익어서 부드러워진 무하며, 조각조각 난 고기를 씹을 때마다 퍼지는 풍미가 소고기의 맛이라는 걸 좀 더 크고 나서야 알았다. 무엇보다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한 그릇 더 달라고 부탁드리기엔 소심한 성격이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다만 마음속으로 다음번에 엄마가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꼭 이걸 이야기해야지 다짐했더랬다. 근데 이게 이름이 뭐지? 모르겠다. 그냥 재료를 설명해 주면 알 거야! 그렇게 믿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저녁에 뭐해줄까란 질문을 받자마자 나는 연신 어, 음, 어를 내뱉으며 “국인데, 소고기도 들어가고, 무도 들어가고 그거 해줘!”라고 매달렸다. 엄마는 이 꼬맹이의 말이 무슨 말인가 고민하다 드디어 이해한듯한 얼굴로 "소고기뭇국?"이라고 물어보셨다. 처음 들어보는 거 같지만 아무튼 소고기도 들어가고 무도 숭덩숭덩 들어가니까 맞겠지, 순진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 다 될 때까지 가서 놀고 있으라는 말에 신나서 두다다 뛰어가기까지 했다.
“정아, 밥 먹으러 와. 언니도 불러.”
엄마가 나를 부르자마자 곧장 식탁으로 달려왔다. 언니는 항상 밥시간 때 늦장을 부렸다. 가족이 다 모여야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언니를 데리고 오는 건 주로 내 몫이었다. 의자에 앉아 “언니!”하고 목소리가 찢어져라 불러대니 그제야 언니가 식탁 의자에 풀썩 앉는다. 엄마가 국을 뜨는 동안 수저를 놓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려니 엄마가 내 앞에 먼저 국그릇을 놓는다. 김이 펄펄 날 정도로 뜨겁고 시뻘건 국이 담긴 그릇을.
“엄마, 나 이거 안 먹을래.”
엄마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왜? 소고기뭇국 먹고 싶다면서?”라고 물었다. “아니, 아니. 이거 말고. 딴 거.” 꼬맹이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그뿐이었다. 나는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은데, 왜 엄마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섭섭했다. 비죽비죽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걸 참았다. 이렇게 빨갛고 뜨거운 걸 어떻게 먹으란 건지! 입 꾹 닫고 밥상만 쳐다보는 막내딸을 두고 엄마는 행동을 개시했다. 작은 그릇에 국물을 몇 숟갈 떠 밥을 비빈 후 먹어보라고 딸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그건 딸의 변덕이 딴 게 아니라 국이 뜨거워서겠거니 생각한 엄마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딸내미 마음은 좀 달랐다. 뜨거운 것도 그렇고 도무지 저 빨간 국물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자꾸만 빗나가는 엄마의 시도가 제대로 기분이 상한 나는 아예 밥에 손을 대지 않는 것으로 응수했고, 결국 그때 끓인 빨간 소고기뭇국은 우리 둘의 씨름을 멋쩍게 지켜보던 아빠와 언니가 다 먹을 때까지 내 눈길 한 번 받지 못했다.
적어도 경상도 바닥에선 이웃집의 그 맑은 소고기뭇국을 ‘소고기뭇국’이라고 불러선 안 된다는 걸 안 건 한참 뒤였다. 그날은 제삿날이었는데, 엄마가 제사상에 올릴 국이라며 냄비에 국거리용 소고기와 얇고 네모나게 자박자박 썰린 무를 달달 볶고 있었다. 그걸 ‘탕국’이라고 부르는 엄마를 보면서 조용히 내 잘못을 깨달았다. 음식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 그건 ‘소고기뭇국’이 아니라 ‘탕국’이었어. 괜히 머쓱해져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할까 하려다 말았다. 밥으로 투정을 부린 게 부끄러워서였다. 그렇게 나는 경상도 사람답게 ‘소고기뭇국’과 ‘탕국’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나 보다. 매일 새로운 경험으로 넘쳐나던 그 무렵의 수많은 찰나 중에서도 당혹스럽고 어쩌면 불쾌한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불쑥 튀어 오른 걸 보니 말이다. 그 이후로도 소고기뭇국이 밥상에 오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꼬옥 조여 오는 것이 이 이야기에 어서 결말을 내라는 성화 같았다. 그런데 스무 해는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게 뭐라고 여전히 이 기억에 매달려 있을까. 조금은 혼란스러운 가운데 애쓸 필요도 없이 실마리가 절로 찾아왔다.
엄마가 서울로 올라왔다. 함께 살아본 지 오래된 막내딸과 며칠 지내고 싶다는 소망이 엄마를 차에 실어 보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나서 특별히 무엇을 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같이 장을 봤고, 제철인 참외와 수박을 깎아먹었다. 그리고 청계천을 산책했다. 잔뜩 길어진 해가 뜨끈뜨끈하게 늦은 오후의 하천을 덥히고 있었다. 엄마와 나란히 걷던 나는 문득 그날의 일을 엄마에게 털어놓고 싶어졌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서는, 글쎄 사과를 해야지 싶었다. 나는 여태껏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빚졌다고 여겨왔던 것이다. 이름을 잘못 알아서 생긴 오해가 어린 나에게는 빨간 국 보이콧 정도로 그쳤지만, 엄마에게는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덤으로 말이다. 때마침 하던 이야기가 끝나고 침묵이 흘러 나는 슬쩍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엄마, 있잖아. 예전에 나 어렸을 때 갑자기 소고기뭇국 먹고 싶다 졸랐던 거 기억나? 근데 막상 끓여놓으니 내가 안 먹겠다고 했잖아.”
괜히 엄마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졸졸 흐르는 냇물만 쳐다보았다. 근데 엄마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아니.”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주절주절 떠들었다.
“실은 탕국이라고 해야 하는데 소고기뭇국이라 해가지고, 그러면 안 되잖아. 경상도에서는, 그치?”
당황해서 내가 이 말 저 말할수록 엄마는 더 무심해졌다. 이쯤 되니 엄마는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게 확실했다. 금방 끊길 화제를 던진 실수에 머쓱해져 입을 다물었다. 자연히 미리 마음먹어둔 시나리오도 엉망이 됐다. 그저 냇물 흐르는 대로 따라서 휘적휘적 걸었다.
그렇게 며칠을 함께 보내다 엄마가 본가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방에서 소고기뭇국에 얽힌 그동안의 기억들을 되짚어봤다. 빨간 건 먹기 싫다며 토라진 어린 나, 나중에서야 내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부끄러워했던 역시 어렸던 나, 그리고 청계천에서의 다 커버린 나. 그러고 나니 엄마의 그 심드렁한 얼굴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잊어버릴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호들갑 떨면서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 밥상에 국그릇이 수천 번 오르고 내렸듯이 엄마와 내가 함께 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갈수록 그날의 소고기뭇국도 겹치고 겹쳐 희미해져 갔다. 생각해보면 막내딸 한창 무럭무럭 크던 시절로 뭉쳐져 기억될 엄마의 역사 가운데 딱 하루, 딱 한 끼의 밥상이 무슨 대수겠나 싶다. 밉든 곱든, 심통이 나든 말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함께하는 일상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애당초 그걸 위해 서울까지 올라온 엄마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닌지, 또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닫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