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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디 Nov 22. 2024

누가바를 좋아하세요...

누가 볼까 몰래 먹는 건 누가바, 누가바

동생이 세 살, 내가 다섯 살이던 어느 해 여름.

저녁 어스름에 엄마는 잠시 나갔다 오더니 우리가 먹을 간식을 이것저것 사왔다. 실은 잠시 나갔다 온 건지, 종일 밖에 있다가 그 시간에 들어왔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현관문이 열리고 마트 비닐봉투가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내다본 오누이는 엄마 얼굴에 긴장하면서도 즐거운 기색이 역력한 것을 보았다. 꼭 허락받지 않은 일탈을 하며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으로, 몸을 숙이고 쉿, 뭔지도 모를 일탈에 우리를 동참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검지를 입에 연거푸 가져다 댔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계속 겁을 내는 엄마를 도와야 할 것 같았다. 내 눈에 엄마는 바깥 세상에서 요리조리 도망치다 집으로 겨우 숨어든 상태였고, 그런 엄마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 엄마와 오누이가 유사시에도 서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작당모의하듯 현관 앞에 둘러앉았다. 굳이 현관 앞에 앉은 건 아니고, 모여 앉은 거실이 아주 작아서 그런 모양새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놀랄 틈도 없이 봉투에서 누가바 두 개를 꺼냈다. 아껴먹지 말고 지금 먹어야 한다고, 누가 보면 안 된다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왜 누가 보면 안 되는데? 엄마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이듯 작아졌다. 집주인이 안 볼 때 몰래 먹어야 하거든. 이건 그런 아이스크림이야. 누가 볼까 몰래 먹어야 해. 그래서 누가바야. 심지어는 노래도 불렀다. 누가 볼까 몰래 먹는 건, 누가바, 누가바... 그게 날 더 공포스럽게 했다. 그 CF를 본 적도 없던 나는 이 농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나는 엄마가 누가바를 어둠의 경로로 구해서 남들 몰래 먹어야 하는데, 그걸 하필 집주인이 보게 된다면 우리 가족이 당장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과한 농담을 하진 않았다.


다만 나는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우리를 끌어들인 엄마가 밉지 않았다. 되려 울적하면서도 묘하게 애틋하고, 동시에 영원히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강력한 소속감 때문에 고양되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마치 언젠가 위험에 처하게 될 우리집을 구하기 위해 나서게 될 거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던 것처럼 결연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유치한 말장난을 집주인 하나 끌어들였다고 덜컥 믿게 된 것이나, 일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함께하는 거라고, 뭔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마음가짐도 그렇고, 이 모든 건 어딘가 불안하고 숨는 듯한 기분이 비단 누가 볼까 몰래 먹던 그 순간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이스크림이 달아서 그저 좋은 동생 옆에서, 나는 엄마가 들어올 때 지었던 표정과 내가 짓고 있을 표정이 얼마나 비슷할지 조금 궁금해하며 서둘러 초코 코팅을 베어 물었다.


그러는 동안 해는 다 졌고, 나는 잠들기 전까지 아빠가 아무한테도 잡히지 않고 무사히 집에 오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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