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요리사가 이름을 건다는 것은
용두용미는 못 되고 용두띠용미...라지만, 시종 굉장한 화제성을 유지하며 수작으로 막을 내린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매번 셰프의 의도와 그 전달이 아주 중요했다는 점에서, 보는 내내 요리사를 통해 기획자를 생각하게 하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오늘은 '기획자로서 요리사'보다는 ⟨흑백요리사⟩ 자체의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흑백요리사⟩는 참가자들이 오직 요리로만 평가받는다는 점이나 ‘계급’이 들어간 제목 때문에 흔히 말하는 ‘계급장 떼고 한판’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이 프로그램에서 흑백 계급은, 이와 비슷한 등급 시스템을 채택하면서도 참가자들의 계급 이동을 능력껏 허용했던 여느 경연 프로그램들(프로듀스101, 쇼미더머니 등)과 달리 완전히 엄격한 것이었다. 흑수저가 결승에서 이름을 되찾기 전까지, 계급은 절대적이다. 이것이 흑백요리사의 ‘킥’이다.
⟨흑백요리사⟩에서 스타 셰프에 비해 명성이 높지 않은 ‘흑수저’들은 본명 대신 별명으로 불린다. 제작진은 이들에게 ‘결승에 진출하면 이름을 되찾을 수 있다’는 목적의식을 내걸었다. 흑수저들에겐 모든 미션이 그야말로 실존적 위기다. 여담이지만 매번 ‘의도’를 묻는 안성재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 자체가, 참가자들로 하여금 ‘요리사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자각적으로 질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되찾는 여정’은 백수저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흑백요리사⟩ 제작진은 원래도 무명에 가까운 흑수저들의 이름을 감춰 버리면서, 정작 백수저들의 화려한 명성은 숨기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누구보다 비싼 이름값을 가진 백수저야말로 본명을 되찾는 여정의 참가자로 적합하지 않나? 그럼에도 흑수저의 이름에만 조치하는 것은, 분명 숨은 의도가 있는 일이다.
사실 ⟨흑백요리사⟩는 흑수저의 이름을 ‘뺏었다가’, ‘돌려준’ 게 아니다.
오히려 유명 스타 셰프에 대응하기 위해 흑수저들에게도 강력한 새 이름을 부여한 것에 가깝다.
맛피아(이탈리안), 트리플스타(파인다이닝), 돌아이(돌아이), 급식대가...
전부 ‘본질’을 단순화해서 지은 직관적인 별명이다. 하나 하나가 정말 명료하게 잘 만든 캐릭터들이어서, 이들은 임팩트를 얻고 비로소 ‘이름 있는’ 백수저들과 대결할 수 있게 된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흑백요리사 결승전을 ‘별명으로 불리던 한 흑수저의 승리 서사’로 해석하면 이렇다.
‘이름을 건 요리’라는 대결 주제는 12화 동안 명성을 얻은 ‘나폴리 맛피아’를 재료로 권성준을 요리하라는 뜻이다.
이름을 재료로 하는 요리. 제작진은 동등한 대결을 위해 처음부터 무명의 흑수저에게 재료를 주어 균형을 맞췄다. 여기서 승리하면, 권성준이라는 이름은 나폴리 맛피아의 몫까지 더해 전에 없던 가치를 얻는다. 물론 꼭 경연에서 상대를 이겨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승패를 떠나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고 끝난다면, 그는 대중들에게 나폴리 맛피아로 겨우 기억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12화 내내 한 번도 보지 못한 안성재의 극찬을 받으며
나폴리 맛피아를 재료로 '권성준'을 완성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권성준의 마지막 경쟁자이자 가장 ‘비싼’ 이름을 가진 백수저, 에드워드 리가 결승전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재료로 아무도 예상 못한 요리를 준비했다. 떡을 갈아 만든 떡볶이는 그리 놀랍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가 ‘에드워드 리’를 걸고 요리한 ‘이균’에 비한다면.
그래서 결승전의 완성도를 따질 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이것이다.
제작진은 권성준 이름 석 자를 요리 시작도 전에 밝혀선 안 됐다.
그에게 결승은 이름을 ‘돌려받는’ 결과가 보장된 안전한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12화 동안 누렸던 나폴리 맛피아의 임팩트를 그제야 ‘내려놓고’ 자신의 본명을 백수저에게도 밀리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꽤나 숭고한 도전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요리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아직 이름을 되찾은 상태가 아니었다. 이름을 이븐하게 익혀야 하는 단계였지.
그가 본명을 밝히는 장면이 그리 인상적으로 연출되지 못한 건 편집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실제로 맥빠지게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요리가 먼저였어야 했다.
제작진은 권성준에게도, 셰프로서 본인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한 결과인 ‘요리’와 그렇게 되찾은 ‘이름’을 한 상에 차려 낼 기회를 줬어야 하지 않았나. 그랬다면 요리사로서 심장을 걸고 후회 없이 살아온 권성준의 임팩트는 이균이 주는 감동에 결코 뒤처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요식업의 왕이나 3스타 셰프는 아니지만, 훌륭한 서사를 알아볼 줄 아는 콘텐츠 미식가들이니까. ‘이름을 건 요리’보다 ‘무한 요리 지옥’이 더 결승전 같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흑백요리사⟩가 기획한 서사는 훌륭하다.
무명의 요리사에게 그들이 갖지 못한 가장 비싼 재료, ‘이름’을 주고는
종국에는 그 이름을 걸고 진짜 ‘나’를 요리하게 하는 것.
마치 평범한 식재료가 귀한 요리가 되듯,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나를 넘어서는 내가 되는 것.
이 모든 게 요리에 대한 절묘한 은유 같기도 하다.
이런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면, 작은 아쉬움은 정말 흔쾌히 넘어갈 만한 것이다.
벌써 다음 시즌이 기다려진다.
그래서, 진짜로 고든램지 나와요??
오디세이 관찰자 시점: ⟨흑백요리사⟩ 흑수저 서사의 이븐한 해석
✍디디
흑백요리사 결승전이었던 "이름을 건 요리" 보셨나요?
이 결승전을 요리사들이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으로서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에드워드 리가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면, 제가 이런 식의 접근을 시도하긴 어렵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여러분에게 와닿았던 ⟨흑백요리사⟩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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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시점"은 문화 텍스트나 사회 현상 속에서 각자의 관점으로 발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