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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u May 22. 2020

(7) 매 맞는 선수들 (촘촘한 권위)

직장인 늦깎이 유학 수기

직장인 늦깎이 유학 수기


매 맞는 선수들 (촘촘한 권위) (촘촘한 권위)


어렸을 때 난 몸으로 노는 건 그것이 스포츠이든 술래잡기 같은 놀이이든 좋아했다. 지금은 영장류보다 나무늘보에 가까운 움직임을 가지게 되었지만 군대에 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주 농구를 즐기곤 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격렬하게 뛰어놀던 놀이터, 운동장 그리고 가쁜 숨과 즐거운 웃음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행복감에 젖어든다. 운동신경이 좀 있어서 여러 운동을 곧잘 했지만 운동선수를 할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출중히 잘하는 종목도 없었을뿐더러, 탄력도 그저 그렇고 뼈대가 영 부실해서 운 좋게 선수가 된다고 해도 그저 그런 역할을 하다가 잔뜩 부상을 입고 은퇴했을 것이다.


아홉 시 뉴스에서 스포츠를 뉴스를 하는 9시 45분 정도쯤에는 늘 방에서 나와 TV 근처를 기웃거렸다. 이는 시험 기간에도 허용되던 일탈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스포츠 뉴스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신문에서도 매일 같이 스포츠 기사를 정독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스포츠 관련 소식, 선수들의 스탯, 연봉 정도는 줄줄 읊을 수 있었다.

 

9시 뉴스에 나온 박찬호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에 대한 뉴스는 늘 가장 재미있는 뉴스였다. 얼마나 감정 이입이 되었던지 이 선수들의 경기력이 안 좋았던 날에는 내 기분도 덩달아 하루 종일 꿀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굳이 나라까지 대표할 필요는 없는 프로선수들이다. 프로팀과 계약을 하고 외국의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 개인일 뿐이었지만 대부분의 스포츠 기사는 그들을 국위 선양의 대표 사례로 또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들도 국가의 명예를 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나에게도 그들은 영웅 이상의 의미였다. 경건한 생활태도, 투철한 직업정신, 페어플레이 및 희생정신 등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받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들은 영웅 이상의 의미였다.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 덕분에 해외의 우수한 프로 리그들을 알게 되었다. 열광적인 팬들로 가득 찬, 세련되고 팬 친화적이며 잘 정비된 경기장은 언제나 부러웠다. 우수한 프로리그들은 넓은 저변의 하부리그 그리고 생활스포츠로 뒷받침되고 있었다. 유소년 선수들은 학업을 병행하며 스포츠에 재미를 느끼고 평생의 취미로 삼을 수 있도록 교육받았고, 소질이 있는 선수들은 프로에서 최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관리되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은 스포츠에 대한 팬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스포츠가 산업화되었으며 국가 대항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스포츠에서 성과를 내는 방식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생활 체육의 저변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엘리트 선수들을 육성하여 국제 대회에서의 성과를 내기를 원했다. 이것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이고 국민에게 자부심을 불어넣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종목에서 국제대회 메달을 따오는 선수들을 본 적이 있다.


Mercedes-Benz Arena / Stuttgart


유소년들은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만이 좋은 대학 혹은 좋은 실업, 프로팀에 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단기성 토너먼트 대회에 목숨을 걸었다. 지도자들은 실제로 이 성과에 목숨이 달려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느끼는 중압감을 폭력이나 고압적인 태도로 전달하였고 학부모들은 이를 묵인하며 대회 성적을 우선시하는데 동조하였다. 자연히 학생들은 학업이나 운동 외적인 것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간 훈련 야간훈련으로 이어진 끊임없는 훈련 속에서 지도자는 안도감을 얻었을지 모르나 어린 학생들은 성인 리그에서 뛰어보기도 전에 몸이 고장 났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도자와 학생들 간에 폭력으로 형성된 위계관계는 선후배 간으로 잘못 전달되어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에는 교사들의 체벌권이 인정되다 못해 교사의 필수적인 권리라고 생각되었다고는 하나 체육계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오남용 되어 폭력이 만연했다. 감독이나 교사들이 학생들 관리를 목적으로 상급 학생들에게 자신의 폭력 행사권 일부를 대놓고 양도하거나 암묵적으로 승인하였다. 선후배들 사이에 촘촘한 폭력의 권위가 생겨났다. 불과 1~2년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하급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위가 주어졌다. 이것은 검증할 수 없는 태생적인 권위이기 때문에 개선하기 힘들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유소년 체육계에 이런 권위를 바탕으로 한 폭력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촘촘한 폭력의 권위

박지성도 그의 자서전에서 축구는 힘든 적이 없지만 선배들의 폭력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감독에게 폭행당한 선배 선수는 후배들에게 분풀이하듯 폭력을 행사했고 이런 선배로부터의 폭행은 그의 유소년 시절 내내 이어진 듯했다. 박지성이 은퇴하면서 가장 아쉬워했던 점은 폭력이 만연한 문화에서 운동을 한 것이었다. 상급자의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졌다는 것이 해외 무대에서 상당한 열등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분명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외국인 선수를 대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2002 월드컵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히딩크는 후배 선수들이 선배 선수들에게 더 많은 패스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선수들 사이에 위계 관계를 없애려고 짧은 기간 많은 노력을 했다. 선수 상호 존칭을 뺀 이름을 부르게 하고, 선후배가 식사자리에 동석하게 하는 등 온갖 방법을 고안해내었다. 축구는 창의적인 움직임과 패스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고 득점을 하는 것이 승리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자신을 때리던 선배가 경기중에 고함을 치면 창의적인 움직임을 하기 전에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작용해 중요한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승리를 위한 정신 무장을 하고 전술적으로 준비를 한 들 선수들 간에 촘촘한 서열 관계를 갖고 시작한 경기에서 그렇지 않은 팀을 상대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안다. 이 문화가 정도만 다를 뿐 군대, 회사, 학교,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리적 폭력은 아니라 하더라도 언어폭력, 갑질, 강압적인 명령과 상명하복의 문화는 사회 어느 곳에서나 촘촘한 권위의 체계 안에서 동일하게 작동한다. 운동선수들이 검증되지 않은 권위에 매 맞는 동안 사회도 이곳저곳에 멍들었다. 내가 유학을 통해 경험하고 싶었던 다른 세상은 이런 권위적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혹은 약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외국 대학에서 학위 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유학을 발판 삼아 다른 사회에 진출하고 그곳에서 나의 가치관과 내 안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사회의 작동 방식을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재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갈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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