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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ddar Mar 27. 2022

그러나 분명한 건

before she became a grandmother

아들에게

너는 나하고 대화도 카톡도 싫어하는데 나는 네게 꼭 하고싶은 말이 많단다.
이제 내게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 어느날 갑자기 카톡도 글도 못쓸 날이 닥치기라도 할까봐
그 전에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되어 긴 편지를 보내니 신중하게 읽어 주면 고맙겠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단다. 부산 평화교회 근처 살때.. 누나 보내고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 때였지
 "오늘은 엄마가 불쌍해 보여" 라고 내게 이야기 했을때 힘들고 지친 삶이 눈 녹듯이 뼈 마디가 다 녹아 내리는 그런 감동을 지금도 그 따뜻하고 고마운 말을 잊을수가 없단다.

그러던 네가 살아갈수록 원망과 불만으로 나를 대하니 늘 네 앞에 죄인이 되어 눈물과 기도로 살았다. 서로의 한이 쌓여 이렇게 라도 죽기 전에 속 마음을 털어놔 서로의 섭섭함을 풀어야 할것 같아 쓰다보니 장문이 되었다.

언제 또 쓸 날이 있을런지... 나는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이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살고 있기에 때로는 조급하고 할일은 많은데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으니 때로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기도 한단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너를 믿고 사랑한다.*


할머니가 되기 전에 그녀는 엄마였다.

자신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세월을 생각하면 꼭 울고 마는 사람.

그녀는 한 세대를 건너뛰어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있다.


스물넷의 그녀는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기 전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남녀가 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긴다고 생각해서 언젠가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해온 남학생에게 손목을 잡히고 임신이 되었을까 봐 남몰래 엉엉 운 적도 있는 소녀. 물론 이십 대 중반까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리 없지만 그녀에게는 분명한 괴로움이 있었고, 그 괴로움의 출처는 사랑 없는 결혼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빼닮은 아이들을 마주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이 사랑하고 있었다. 피의 끌림은 불가항력이었나 보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 두 명을 앞뒤로 업고 집을 나오려고 했던 날에도 남매의 눈망울은 반짝였다.


열세 살 연상이었던 남편은 초혼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자상하고 겉모습이 번지르르해서 인기가 많았지만 정작 좋은 배우자는 아니었으므로 남매를 품에 안기 전 그녀는 그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비관했다. 비관의 결과가 따귀 세례였다고 해도 슬픔을 숨길 수는 없었다고 한다.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지는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고통의 고리를 끊고자 캄캄한 새벽에 길을 나섰으나 번번이 버스에서 끌어내려졌다. 매번 좌절을 예상하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매가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는 두 손으로 아이들의 손을 꼭 쥐고 지옥 같은 일상으로부터 탈출했다.


아득한 기억은 오랜 세월에 덮이고 쓸려 색이 바래졌다. 모호한 인과를 뒤져보면 이런 것들 뿐이다. 그를 소개받지 말았어야 했나, 어느 때에 딱 잘라 거절했어야 했나... 조목조목 따져 들기 시작하면 그 끝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모든 일이, 그저, 이미, 벌어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몇십 년이 흐르는 동안 그녀가 선택한 건 침묵과 회피였다. 아직 남편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유년기의 남매를 앉혀두고 자신에 대한 중상모략을 할 때에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은 자녀들이 자신에게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녀의 입은 변명을 내놓지 않았다.


스무 해도 살지 않은 첫딸을 먼저 보내고, 그녀의 삶은 뼈저린 후회로 물들었다. 매일 눈 뜨고 있는 순간 내내 수만 가지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스스로를 찢다 보니 이런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더 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 아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누나를 잃은 슬픔과 엄마에 대한 원망이 엉겨 붙어 마음속에 가시덤불을 안고 살아가던 소년. 소년이 엄마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엄마가 불쌍해 보여."라는 말이었다. 이 한마디가 뭐라고 엄마는 뼈 마디가 녹아내리는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아들은 그녀가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였다.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를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상처로 뒤덮인 엄마와 아들이 꿋꿋이 살아내고 있다고 밖에. 한 가정을 평생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비극을 아는 사람이 이제 이 세상에 둘만 남은 것이다.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하기에는 행복한 나날도 많았고, 다 회복되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상처가 쓰리다. 할머니가 된 그녀, 이제 증조할머니가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그녀는 더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오늘의 편지를 쓴다. "아들아,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너를 믿고 사랑한다."



* 할머니의 편지, 휴대전화 메모장에 직접 작성하셨다. (오탈자는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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