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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Aug 12. 2020

창조주 콤플렉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해야

    작은 아들은 미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클레이 폼인가 뭔가 하는 것을 가지고 오물조물 만지다보면 제법 예쁘고 귀여운 작품들이 나오곤 한다.  만들기 뿐 아니라 그리는 것도 좋아한다.  ‘코빈’지 ‘커빈’지 인터넷을 뒤져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지 맘대로 그리기도 하고, 때론 스토리를 덧입혀 만화책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요 작은 아들 녀석이 가진 미술적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비싼 미술책이랑 색연필 등 다양한 미술 도구들을 마련해 줬는데 별 관심이 없다.  선긋기나 스케치 연습을 위한 재료들도 있는데 지 하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을 보면 속이 탄다.  기초를 좀 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녀석을 옆에 끼고 가르친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녀석의 얼굴은 지가 그린 그림처럼 엉망이 되곤 했다.  열불이 나 “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하고 소리를 빽 지르고는 삐쳐서 나가버리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상담을 공부할 때 배운 창조주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현상이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창조주 콤플렉스(Creater complex)는 누군가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무의식적인 관념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다.  특히 부모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어떤 강한 감정이나 바람들과 결부되어 매 순간 자녀의 의식적인 행동을 방해하거나 촉진하곤 한다.  또한 종교지도자들에게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자신이 신의 절대적인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착각하거나 신의 뜻을 모두 안다는 오만에서 나오는데, 신자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신자들의 모든 일상을 조정하려고 한다.  그 외에도 사회지도층처럼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들에게서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에게서 유독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이의 출산을 마치 자신들이 창조한 것처럼 여겨 피조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창조주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자녀들의 작은 행동 하나까지 간섭하려들고 제재하고 억압하거나 촉진시키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녀들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녀들을 자기 입맛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녀들을 위해 좋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안좋은 습관들을 버리도록 제재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생각하고 경험한 좋은 것들이 반드시 자녀들에게 좋을 수는 없다.  일례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거기에 다리까지 건들거리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본다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세가 안되어 있다며 바로 잔소리를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들어면서 공부하는 것이 제법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무의미한 소음들이 오히려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음악을 들으면 방해가 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음악을 들어야 집중이 잘 된다는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만 부모들이 공부에 재능이 없으면서 자녀들에게 재능이 있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 뿐이다.  예체능에 재능도 없으면서 자녀들이 예체능을 잘 하기를 바란다면 유전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자유로운 외모를 가진 부모가 자기 자녀들은 멋진 배우들의 외모를 갖기를 바라는 것처럼 욕심이다.  자녀들이 잘 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자녀들을 힘들게 하지 말자는 것일 뿐이다.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은 경우 더 심한 강요를 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떤 재능을 통해 성공을 이루었을 경우 그 재능이 자녀에게 있음을 발견한 순간부터 옆구리에 끼고 가르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재능은 타고 나는 그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다.  하늘이 준 재능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재능이라고 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타고난 재능을 연마하여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잘 하게 되는 모양새가 장기적으로 훨씬 유익할 것이다.     


    비단 공부나 재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자녀들의 독특한 성향을 이해하려 하기는커녕 틀렸다 단정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강요하곤 하는데, 자녀들의 모습이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부터 우선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틀린 것이라면 당연히 고쳐줘야겠지만 다른 것이라면 존중해줘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한데 어우려져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인데 다름을 틀림으로 배운 탓에 자녀들의 독특함을 전혀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로 바꾸려 든다.  심지어는 자녀들의 진로 마저 부모들의 뜻대로 하기 원하니 참으로 안타까울뿐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으니 심히 고롭다.     


   자신의 뜻을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부모들은 대체로 자녀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기 보다는 자신을 돋보여줄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  물론 나도 아이들이 잘 나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정말 간절하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될만큼 대단하지 못하면서 내 자녀들은 그러기 바란다는 것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것이다.  잘 나든 못 나든 내가 낳은 사랑하고 소중한 아이다.  못난 내가 낳은 아이들이 잘나면야 다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사랑해주어야 할 아이다.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간과하는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자신의 뜻에 아이들이 잘 따라줄 것이라는 착각과 자신의 뜻대로 커준 아이들은 결코 부모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출어람은 꿈과 같은 말일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청출어람이던가.  대부분 가르친 스승을 뛰어넘지 못하지 않던가.  청출어람은 아주 특출난 소수의 사람들만의 이야기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자신이 콩인데 자녀들은 수박이기를 바라고 팥이 망고를 꿈꾸면 되겠나.  콩은 콩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배운 것 이상을 전해줄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 더 큰 콩일 뿐이다.  크기나 종류에 연연하지 말고 행복한 콩이 되도록 해주자.     


    에휴, 글은 그럴듯하게 써놨는데 나 자신부터 그리하기 힘드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일단 아이들을 마주하면 속부터 타들어가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을 대하는 것처럼 여유있게 대하질 못한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달랑 아들 둘 뿐인데 둘이 어쩌면 그리도 다른지.  각자에 맞춰 대해주면 서로 자기가 더 이쁨 받는다 좋아하기보다는 상대를 더 이뻐한다고 생각해버리니 참으로 문제다.  그렇다고 똑같이 대해주면 내가 형인데 나는 동생인데 하며 더 이뻐 해주라고 하니 난감할 뿐이다.  나보고 어쩌라고.       


    언젠가 그런 내게 딸만 넷인 친구가 한 마디 해준다.     


    “야, 니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아들은 패기라도 하지.  딸들 삐쳐봐라.  그거 아주 미친다.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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