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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Feb 13. 2021

코로나가 선물을 주었다.

2020년을 결산하며...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게 8월 초.  그간 바쁘기도 했고 갑작스런 조회 수 폭발에 놀라 잠시 손을 놓는다는 게 여섯 달이 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독자 수가 오히려 늘었으니 기분 참 묘하다.     


  지난 한 해는 온통 코로나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시간들이었다.  비단 나만의 문제이지는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렵고 낯선 타국 생활이 코로나로 인해 버벅거린 기억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한 해를 결산해보니 이게 무슨 조환가.  꽤 큰 선물들이 양 손 가득 아닌가.     


  우선 브런치 덕분에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니 자신감이 넘쳐났다.  별 생각 없이 올린 글이 3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해버리는 바람에 놀라서 잠시 거리를 둔다는 것이 그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그래도 브런치가 고맙고 읽어주시는 분들이 고맙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내 안에 숨어있던 상처들을 주섬주섬 꺼내어 양지바른 곳에 말렸더니 그럴듯한 인생의 재료들로 바뀌었으니 이 또한 고맙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는 생활에 쫓겨 마음만 간절했던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소개받은 한국계 미국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본인이 총장으로 계시는 현지 대학에 편입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것과 경력 등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4학년에 편입하였다.  지나가버린 1학기는 리포트로 대체하고 2학기는 정상적으로 강의만 들으면 되는 조건이었다.  작성해야할 리포트의 양이 어마어마했지만 다행히도 한국어로 작성해도 되었고 강의만 듣고 시험은 치루지 않아도 되니 나로선 정말 거저 얻게 되는 셈이었다.  강의실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답답하기도 했지만 언어를 공부하는 셈 치니 나름 얻는 것도 제법 있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종강식 겸 학위 수여식이 같이 진행되었다.  머리에는 학사모를 손에는 학위 증서를 들고 가족들과 함께 사진까지 찍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올해는 사정상 어렵지만 내년에는 석사도 한 번 도전해볼까 욕심도 가져본다.     


  세 번째로 처음으로 나에게 생일 선물을 해주었다.  그간 생일 선물을 받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선물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생일 전날 학위 증서를 받고 아이들에게 용돈까지 받았음에도 왠지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거금 47,000원을 들여 만년필을 샀다.  한국 쇼핑몰에서 구입한 탓에 40여 일 만에 손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좋다.  작가에 걸맞은 소품을 원한 것은 어찌 보면 허영심일 수도 있겠지만 내심 작가라는 이름이 퍽이나 뿌듯하기에 더욱 만족스럽다.     


  마지막으로 한 학기 동안 바쁘게 지내다 막상 종강을 하니 남는 시간을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피아노와 미술을 해보기로 했다.  12월 말에 시작한 피아노는 2월 현재 체르니 100번 no.16을 치고 있다.  다들 무슨 진도가 그리 빠르냐고 하는데 나로서는 빠른지 늦는지도 모르겠기에 도통 와 닿지 않는 말이지만 그래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은 좋다.  미술은 어반 스케치라는 장르에 도전하였다.  여행 중에 다이어리에 간단하게 풍경을 그리는 어반 스케치는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착각에 선택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거친 듯 하면 선이 마음에 들었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워질 것 같다는 느낌이 좋았다.  만년필이 생겼으니 어디에 쓸까 생각하다가 찾아내었다는 것이 결정적이긴 하지만.  아직은 혼자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내 눈에 좋은 수준까지만 도달하면 만족이다.     


  나이 쉰을 넘었으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자꾸만 다른 영역을 넘본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예전에 하고 싶었던 일들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이제야 손을 대어 본다.  나이 들면 머리가 굳어져 새로운 것을 배우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그동안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들에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그렇게도 안 외워지던 단어들이 조금씩 외워지는 것을 보니 더욱 그렇게 여겨진다.  코로나로 인해 아직까지도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덕분에 많은 선물들도 받았고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들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100세 인생이라 하였으니 이제 남은 인생의 절반은 좀 더 풍성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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