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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15. 2021

오지에 세워진 유치원

  아프리카에서 4년간 개인적으로 또 작은 규모의 NGO 단체를 통해 봉사활동을 했다.  말로만 듣고 티비로만 보던 아프리카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 주고 꿈을 꾸게 해 준 나의 또 다른 고향이다.  때로는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 보기도 했으며, 많은 눈물들을 쏟아낼 만큼 벅찬 감동들을 맛보기도 했다.  4년간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몇 개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시골의 작은 유치원을 꼽을 것이다.     


  미국에서 자녀들 다 키우시고 은퇴하신 후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오셨다는 노부부가 계셨다.  어느 날 유치원에 지원을 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약간의 비용을 부담해주었다.  몇 달 후 마침 시간이 되어 방문을 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지 않아 놀랐고, 아이들의 대부분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가운데 굳이 이런 외진 곳에 유치원을 세우게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워낙에 외진 곳이라 정부의 무관심과 에이즈에 감염된 부모들의 무책임한 쾌락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감염자가 되는데 대부분 청소년기를 넘기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유치원을 세워 함께 놀아주고 공부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에이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해야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가끔은 국제 구호 단체에서 마련한 에이즈 치료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려 치료제를 지원받기도 한다고 한다.     

                                                              (Pagoi 유치원의 모습)


  에이즈라는 병이 외관상으로 구분이 가능한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저리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밝게 뛰어 노는 아이들과는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저 아이들 대부분이 에이즈 감염자라니.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흘러내렸다.  그동안 전해준 후원금으로 인해 12명의 아이들을 더 돌볼 수 있었노라는 할머니 선교사님의 한 마디에 눈물은 더욱 진해졌다.  100불도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금액이었지만 12명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유치원에 나와 친구들과 뛰어놀게 해주었다는 것이 나로 부끄러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고 저리 밝게 뛰놀고 있음에 오히려 고마웠다.     


  내가 가진 작은 것들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보다도 그저 해맑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내가 어린 아이가 되어 함께 뛰어 노는 양 즐거웠고 이리 저리 흩어져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마치 잘게 부수어진 햇살의 한 부분인양 눈부셨다.       


  지금쯤 그 아이들은 대부분 스무 살 전후 일 텐데 어찌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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