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친정아버지께서 암 판정을 받으시고 치료를 받아오시다가 작년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시면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직감했다. 맏딸인 나는 퇴근 후 거의 매일 병원이나 친정으로 홀로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갔다. 차가 없어서 주로 지상철이나 버스를 탔다. 대중교통으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왕복하며 수개월 동안 내 몸은 지쳐갔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즈음 중학생 아들이 “엄마는 왜 외할아버지만 챙겨?”하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는 투병 끝에 칠순 생신을 나흘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입원하시기 직전까지 1 ton 화물트럭을 출퇴근용으로 그리고 짐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타고 다니셨다. 가끔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트럭을 같이 탔던 기억이 난다. 고령의 나이에 이제 일 그만 하시고 쉬실 법도 한데 자식들한테 생활비로 손 벌리고 싶지 않다며 끝까지 일을 놓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실 때 바닷가재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끝내 그걸 못 해 드렸다. 그때 만약에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버지를 모시고 식당에 가서 한 마리 사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영영 못하게 됐다.
장롱면허 거의 20년 만에 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흔 넘도록 왜 이토록 운전에 거부감을 가졌을까? 후회스러웠다. 솔직히 가정경제에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컸다. 생활이 빠듯했고 교통비라도 줄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운전의 장점 – 이동 시간 단축, 효율성, 피로도 경감 등은 후순위로 미뤄 둔 거다. 이제 아파트 대출금도 제법 갚았고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니, 내 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초보 운전이니까 작은 중고차로 시작해서 운전에 익숙해지면 새 차를 사야지 했더니만 주위 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운전은 곧 익숙해질 테니 처음부터 새 차를 사라고. 한 달 넘게 고민 끝에 이왕 사는 거 큰맘 먹고 수입차로 결정했다. 중고차 알아보다가 수입차라니… 이런 결정을 내린 나 자신도 어안이 벙벙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내게 유일한 사치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태까지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치자. 내 돈 주고 내가 사는데 누가 뭐래. 학창 시절부터 튼튼한 두 다리로 대중교통을 실컷 이용했으니 이제 좋은 차로 드라이브 한 번 해 보자.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노란색 차로 도로 연수를 받았다.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달린다는 게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물론 강사 선생님이 조수석에서 코치를 해 주셨지만 말이다. 평생 운전 안 하고 살 줄 알았더니만 이런 날이 오다니. 놀라운 건 내가 겁이 많아 운전을 잘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운전대를 잡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한다는 게 뿌듯하고 재미가 있었다. 운전을 통해 미처 내가 모르고 있던 내 모습을 새롭게 발견했다. 사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운전을 안 하냐는 질문을 셀 수 없이 받았더랬다. 운전은 노동이라는 편견을 가지기도 했고 운전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하고 싶어졌다. 이왕 할 거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빨리 할 걸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 적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지 다 때가 있나 보다.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다음 달이면 생애 최초로 내 차가 생긴다.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출퇴근하기
마트에 가서 장보기
교외의 예쁜 카페에 가기
셋 다 할 수 있겠지?
새해, 나의 ‘붕붕이’와 함께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