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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Dec 12. 2024

<5가지 독서하는 이유> 데카르트의 존재처럼 독서

나는 읽고 쓴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독서하고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저는 감히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사변도 사유도 지적인 유희의 한 가지 길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기에 글로 적지 않으면,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의 오랜 명상을 이어가지 못하고 만다. 



글을 적을 수 있는 것도,  사유의 길을 걷는 것도 모두 책을 읽으면서 시작된다. 공부하지 않으면, 머리를 회전해야 하는 지적 탐구를 단련하지 않으면, 글도 쓸 수가 없다. 



지적인 경험과 몸소 부딪히는 체험은 성장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 기본은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는 뇌를 훈련하는 기본이고 생각하게 하는 근력운동과 같다.



단거리 혹은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산책 같은 이동을 하면서도 늘 책과 오디오북과 함께 동반, 반려자로 걸어간다. 책을 통해서 깨어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하다. 








데카르트는 수학자였으나, 철학으로 그의 삶을 채우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면서 그의 철학은 내면을 향하였다. 그는 나 자신을 먼저 이기려고 노력하였다. 내면을 응시한 것이 그가 근대 철학의 흐름을 만드는 기초 초석을 놓은 위인이 된 것이다. 



데카르트는 그의 명언처럼, 소크라테스의 후예로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수학적, 과학적, 철학적 위업을 달성하고 인류의 근대 철학을 열게 된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데카르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데카르트, 유럽 르네상스 이후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이성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보한 사람이다.”








독서는 좋은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한다. 데카르트처럼 좋은 생각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독서를 하는 중에 잠시 눈의 시선을 책 바깥에 두어도 생각은 계속 흐른다. 그곳에서 지적 탐구는 이어지고 뇌운동이 호흡을 계속하게 된다. 혹자는 호흡하듯 생각을 가두고 흐르게 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지만, 그 정도의 수행의 높이는 보통 사람들에게 쉽지 않다. 우리들 범인들에게는 독서를 통해서 좋은 생각을 멈추지 않게 된다. 독서하지 않고는 쓸데없는 생각들로 변질될 경우가 많다. 




하나, 두 번째 단계로서, 독서는 나의 두서없는 생각 운동을 지적인 흐름으로 바꾸어준다. 


쓸데없는 생각들, 망상적인 생각들, 비생산적인 생각들에 휩쓸려 있을 때가 있다. 이때 마음을 잡아주는 독서를 하게 되면 지적으로 생각을 흐르게 할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의 흐름은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생각의 물꼬를 터주게 된다. 지적인 생각 운동은 지혜를 낳는다. 지혜를 위한 통찰, 성찰, 통섭의 단계를 밟아가는 것도 수많은 독서 훈련에서 가능해진다. 경험으로 어느 정도 지혜로워질 수 있지만, 독서 없이 지혜로워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둘, 독서는 지식과 지혜를 나의 것으로 소화시켜주는 거대한 외부 소화기관이다. 


독서는 음식물의 소화처럼 매일 작동되어야 한다.  단련되어야 소화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라져가는 지식을 독서는 나의 것으로 소화시켜주는 가장 큰 외부 장기다.


독서를 통해서 얻는 지식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잘 소화되어 몸과 영혼에 영양분이 된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지혜가 성장하게 된다. 지혜는 좋은 뿌리가 없으면 자라날 수 없다.


지식의 씨앗을 발아시켜서 뿌리를 잘 뻗어가게 되면 지혜의 나무가 성장할 수 있다. 


독서는 그러한 내면과 이성, 감성, 영성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셋, 고전의 독서는 수천 년의 거대한 인류사 속에서 나의 존재를 지각하게 한다. 


SNS가 아니고 고전 속에서 온전한 나를 만나게 해준다. 


독서는 거대한 인류 역사에서 온전히 수 천년의 선각자들의 깨달음을 전달해 주고, 


우리가 그들의 후예로 그들의 깨달음을 통해서 태어난 한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오늘날 나의 지식과 지혜는 이미 기원전에 존재했던 것들이 많다. 


고전의 독서를 통해서 그것을 깨우치는 사람은 얼마나 교만하였는지 알게 된다. 


고전을 독서한다는 것은 겸손하게 나를 만나면서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음이다. 


고전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없이 부족한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넷, 독서는 삶을 일으킨다. 독서를 통해서 변화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변화하지 않으면 독서는 필요하지 않다. 변화하여야만 좋은 독서가 되는 것이다. 


또는 변화할 때까지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만 한다. 변화는 확장의 한 부분이다. 


책을 읽었는데도 생각이 확장되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이 무의미해진다.  


책을 읽은 후에도 세계가 확장되지 않고, 다르게 보이지 않으면 역시 그런 독서는 가치를 잃게 된다. 




다섯,  데카르트의 존재처럼, 독서- 책을 읽기에 존재한다. 


독서하는 사람은 지적 유희를 얻을 수 있고, 사유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독서하기에 우리는 올바르게 존재할 수 있다. 나는 독서하면서 글을 쓴다. 


글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하고 이는 동시에 양립할 수 있는 절대 동반자 반려자의 관계다. 


우리는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만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글을 오래 쓸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존재는 책을 많이 읽고 깊게 읽은 결과이다. 


책을 쓰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독서는 정신 성장의 기본적인 양식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야말로 인류사 3천 년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겨우 이 시대의 극히 일부만을 수용하는 존재일 것이다. 


나를 바로 이해하고 읽기 위해서라도 독서를 하여야만 한다.


하루라도 독서하지 않으면 지적인 존재에서도, 사유하는 존재에서도, 글 쓰는 존재에서도 멀어진다.  


고로 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의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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