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인문학 고전들의 행복한 앤딩 가르침
<돈키호테>는 아마도 오래되고 가장 엉뚱한 스토리의 명작 코미디 고전일 것이다.
이 고전은 오늘날까지도 유쾌 통쾌하게 사람들을 행복하면서도 굵직한 메시지가 있다.
"시대가 변해도 기사도 정신을 갖고 신념을 지켜내려는 돈키호테의 캐릭터는
우리가 지켜가야 할 원칙, 인생관, 세계관,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마도 가장 엉뚱한 발상의 스토리로 기괴스럽지만 재미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데 감추려고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사람들만이 놀라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는 뮤지컬 영화로 더 유명하여 스토리 에피소드마다 즐거워진다.
주디 갤런트의 노래와 세 친구들, 허수아비, 철통, 사자 아저씨들의 모험이 주는 상징들을 되새기게 된다.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의 주제가도 영원한 고전의 반열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무지개 너머의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어떠한 시련도 함께 견뎌낼 만한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러한 고전들은 행복한 엔딩을 통해 전해준다.
내년도 소설 단행본 출간을 위해서,
호프맨작가가 이번에 쓰고 있는 소설의 스토리도 극중 물론 주인공들에게 고난이 있다. 하지만 너무 깊게 비극으로 빠져들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소설을 극복의 스토리가 카타르시스, 반전의 희열감을 주기에 시련이 가득한 스토리가 있다.
고전, 문학작품에서 독자들이 바라는 것은 언제나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엔딩이 좋다.
철학가 중에 절망을 이야기한 키르케고르, 인생은 고통임을 강조한 소크라테스, 그들조차도 절망과 고통을 통해서 오히려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철학에서 절망과 고통은 건강한 절망과 성장하는 고통의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끌림(propensio)이란 우연에 의해 기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그 어떤 사물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출처] 사람과 끌림 /스피노자
인문학의 끌림은 인생의 모든 곳에 있었다. 그것이 고통을 치유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분명한 치료제임을 알게 된다. 긍정의 철학을 배우게 하고, 아름다운 미학에 눈뜨게 하는 인문학을 탐미한지 수년이 흘러간다.
인문학이 얼마나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주는지 그것보다 - 오히려 겸손하게 만드니까 -
인문학 공부가 얼마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지 적어본다.
하나, 유한한 삶을 행복한 시선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누군가 짧은 인생 방탕하게 즐기다가 가자고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다가 막판에 눈물 흘리면 후회할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주어진 삶의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게 된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나의 생애의 시간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
둘, 사람이 얼마나 커다란 존재인지 감사하게 된다.
서양에서 천문학의 혁신을 이룬 코페르니쿠스로부터, 동양에서 주역과 같은 태극 사상, 음양 사상에 이르기까지 우주가 사람의 한 생애 들어올 수 있음을 인문학은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상상 너머의 세상으로 끌리게 되는 것은 인문학의 선각자들이 실현한 성과들 덕분이다.
과학도 인문학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호기심이 과학을 탄생시켰다.
셋, 무언가 열심히 기록하게 된다. 자신의 탐구를 성찰하고 성장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이런 인문학적 질문들에 끊임없이 끌린다.
그러한 끌림 들은 행복한 삶을 만들어준다. 자신이 갖고 있는 호기심을 발동하여 탐구하는 것은 행복한 삶의 발자취가 된다. 우리는 그 발자취의 궤적을 명랑하고 쾌활하게 호기심의 체험과 발견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비극적인 엔딩은 없다. 행복은 스스로 깨닫는 스토리임이 인문학의 가르침이다. 사람의 생애가 자신을 탐구하고 성찰, 성장하면 낭비할 틈도 슬퍼한 시간도 없다.
우리 삶이 얼마나 충만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고전들, 인문학을 배우고 익히니 행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