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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emis Jun 30. 2020

밤쉘 (Bombshell, 2019)

침묵을 깨는 그녀들의 목소리

Bombshell은 영어로 폭탄선언 같은 충격적인 소식과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영화의 제목대로 니콜 키드먼(그레천 칼슨), 샤를리즈 테론(메긴 켈리), 그리고 마고 로비(케일라 포스피실) 세 명의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들의 가장 용감하고 가장 큰 외침으로 폭스 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의 몰락을 이끈 성추행 사건을 다룬 영화다.  


1. 로저 에일스 (Roger Ailes)는 누구인가?

 그는 폭스 뉴스를 CNN, MSNBC와 더불어 3대 케이블 TV 뉴스 채널로 키운 폭스 뉴스의 회장이다. 로저 에일스는 미디어 컨설턴트로 공화당인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등 공화당의 정치인들에게는 미디어와 여론을 움직이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선거 캠페인의 고문이 되어 TV 토론 준비를 도왔다.

폭스 뉴스의 대표 앵커 그레천 칼슨은 성희롱 혐의로 로저 에일스를 고소하고 그는 2천만 달러를 지불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미디어에서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군림하던 그가 저지른 수많은 여성들의 성희롱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다.

바비 인형의 옷장 같은 폭스 뉴스의 분장실은 여성 뉴스캐스터들에 대한 로저의 태도와 회사 내 복장 문화에 대한 그의 통제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몸매가 드러나는 밝은 색깔의 드레스, 진한 화장, 볼륨 있는 머리 스타일, 보정 속옷, 푸시 업 브라로 치장한 대체 가능한 바비 인형. 똑똑하고 실력 있는 전문직 여성의 갈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여성은 인간의 운명이 아닌 여성의 운명을 타고 난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일단 선택하지 않으면 자신의 경력과 직장생활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를 불안함. 목소리를 내야 하는 매체에서 일을 하는 여성 직원들에게 목소리와 실력보다는 에일스가 스튜디오에 설치해 놓은 유리 책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여성 앵커의 다리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2. 니콜 키드먼(그레천 칼슨), 샤를리즈 테론(메긴 켈리), 그리고 마고 로비(케일라 포스피실)


그레천 칼슨 vs 니콜 키드먼

그레천 칼슨은 폭스 뉴스에서 오랫동안 로저 에일스의 성추행에 대해 불만을 호소하고 연봉협상이나 승진 등의 대가로 성적인 즐거움을 원할 때 분명하게 “노”라고 거부했었다. 그 결과 그녀의 연봉은 삭감되고 일거리는 줄어들고 결국 2016년 해고된다. 그녀는 에일스와의 대화를 녹음하고 그가 말한 모든 성적 농담과 추행들을 기록한 증거로 그를 고소한다. 변호사와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녀는 성추행 혐의의 법정 소송에서 기록과 녹음된 증거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2017년 그레천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한 명으로 선정됐다.


메긴 켈리 vs 샤를리즈 테론

2015년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진행하던 메긴 켈리는 과거 여성 비하 발언을 한 트럼프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한 이후 몇 달간 트럼프로부터 엄청난 반격을 받은 인물이다. 2014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그녀는 지적이고 똑똑하며 아름다운 저널리스트다. “일어나서 한 바퀴 돌아봐(twirl)”라는 로저 에일스의 요구로 시작되는 많은 성추행 사건들 속에 그녀 역시 그의 요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레천 칼슨의 소송을 계기로  메긴 켈리는 13년간의 경력을 쌓은 폭스 뉴스에서 벌어졌던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케일라 포스피실 역의 마고 로비

두 명의 캐릭터와 달리 케일라 포스피실은 가상인물이다. 젊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그녀와 굳게 닫힌 로저 에일스의 개인 방에서 단독 미팅을 하는 장면은 정신적 감정적으로 폭력적이고 굴욕적이다.

“일어나서 한 바퀴 돌아봐(twirl)” 로저 에일스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로 시작되는 장면은 영화에서 여성들의 내면의 갈등과 정신적 굴욕감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이다. 하지만 자신의 존엄성을 빼앗기는 케일라의 감정적 복합성의 표현에 중점을 두기보다  카메라는 에일스의 시선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에일스가 보는 것을 관객들도 봄으로써 잠재적으로 그 시선을 즐긴다. 감독은 희생자의 시선보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관객들에게 에일스의 경험을  반복해낼 뿐이다.


케일라는 에일스의 성추행에 대한 메긴 켈리의 침묵을 비난한다.

"내가 어떻게 성공했다고 생각해? 여성이 프라임 타임 폭스 쇼를 어떻게 얻어냈다고 생각해?"  (실제 메긴 켈리는 이 대사는 사실이 아님을 지적했다.) 영화가 직장 내의 성추행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주제로 하는 영화라면 당신의 침묵이 내 피해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한다. 흔히 '침묵을 깬다'라고 표현한다. 깬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비밀로 남겨져야 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다. 명백하게 보이고 명백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관심 밖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로써 여겨지는 무언의 동의인 것이다. 침묵을 깨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무언의 힘의 횡포를 깨는 것이다.


남성 감독과 남성 시나리오 작가가 만들어 낸 이 영화는 여성의 시선을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영화의 주제 자체에 비중을 두고 본다면 중요한 영화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찰스 랜돌프는 남자의 시선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남자들을 위해 이 영화를 썼다고 한다. 어떤 시선이 될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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