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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emis Jun 11. 2020

디 아워즈 (The Hours, 2002)

시간을 거스르는 보편적인 질문 : 삶의 행복과 의미

The Hours는 199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Michael Cunningham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연기 잘하는 세 명의 배우 Nicole Kidman,Meryl Streep 그리고 Julianne Moore가 Stephen Daldry감독의 영화를 위해 모였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 한 니콜 키드먼의 완벽한 변신은 그녀가 아닌 다른 배우인가 눈을 의심하게 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버지니아를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 주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Mrs.Dalloway를 집필하는 버지니아 울프

영화의 도입부, 버지니아는 남편에게 소설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간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마음에 드는 펜을 집고 소파에 앉는다.  담배에 불을 지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은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과 날카로운 옆모습은 프레임에 담아 두고 보고 싶은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집중해서 소설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불안하고 예민한 버지니아의 모습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영상에 담아냈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녀가 직접 꽃을 사겠다고 말했다.”

 “Mrs. Dalloway said she would buy flowers herself”

버지니아의 소설 첫 문장은 세 명의 여성에 의해 되풀이되며 하루를 시작한다.


The Hours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 여자의 하루를 담았다. 1923년 영국 리치먼드 교외의 버지니아 울프(Nicole Kidman), 1951년 미국 LA에 사는  로라 브라운 (Juliaane Moore), 그리고 2001년 미국 뉴욕의 클라리사 (Meryl Streep). 이 세 여성의 어둡고 복잡한 정신세계는 버지니아가 쓴 소설 Mrs. Dalloway라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클라리사, 로라, 버지니아

사회의 규정화된 표본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로라 브라운.  평면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그녀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내와 가족을 잘 돌보는 성실한 남편, 사랑스러운 아이와 곧 태어날 새 생명, 안락한 집과 평온한 생활. 하지만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저 ‘존재하고만 있다. 죽음이 단지 육체적인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소멸했을  움직이는 육체 속에는 생명이 아닌 죽음을 담고 있다.  

로라는 죽음 대신 삶을 택한다.  자신을 택한다. 자신이 택한 자신만의 삶을 택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 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용서를 받지 못할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죽음 속에서 삶을 택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을 선택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고 보호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다.  

노년의 로라

"그것은 죽음이었어요. 나는 삶을 택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후회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It was death, I choose life. What does it mean to regret when you have no choice."

화면을 꽉 채운 클로즈업된  로라의 얼굴. 세월의 흐름 속에 녹아든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을 담아낸 듯 한 주름 가득한 노년의 얼굴로 체념한 듯 담담하게 말하는 로라.


로라와는 달리 버지니아는 정신적 죽음으로 인해 육체적 소멸을 택한다. 실제로 그녀는 평생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었다. 여렸을 적 겪은 성폭력은 그녀에게 오랜 트라 우마를 남겼고 어떤 신체적 접촉 없이 그녀의 글쓰기 작업을 도와준다는 조건 하에 남편 Leonard와 결혼했다. 그는 리치먼드에 Hogarth Press를 창립하고 버지니아의 책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나 T. S 엘리엇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런던을 떠나 리치먼드로 이주를 한 것은 버지니아를 위한 선택이었다. 조용한 전원에서 글쓰기에 집중하며 정신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기 위한 남편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것은 버지니아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전원의 고요한 생활에 그녀는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기차 플랫폼에서 버지니아와 남편

런던으로 가는 기차 플랫폼에서 버지니아와 남편이 대화를 나눈다.


“나는 살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깊은 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고 있어요, 나만이 알 수 있고 오직 나만이 내 상태를 이해할 수 있어요.”

“I’m living a life I have no wish to live, How did this happen”

“In the deep dark and that only I can know, only I can understand my own condition.”


 섬세한 감정과 갈등을 표현해 내는 두 배우의 연기력은 대단히 감동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고 노력 중인 Leonard, 하지만 본인 자신이 결국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갈등과 외로운 고통을 애처롭게 호소하는 버지니아.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이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과 해결책이 최선이라고 믿는 남편에게 소리친다. 어떤 고통도 본인 외에 타인은 알 수 없는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최선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 선택에 타인의 충고, 평가, 비난을 할 수 없다. 옳고 그름은 없다. 그래서 저마다 다른 개인의 삶과 죽음, 인생이 있는 것이다.


2001년 뉴욕에 거주하는 클라리사

2001년 뉴욕에 거주하는 클라리사는 버지니아가 쓴 소설 Mrs. Dalloway와 가장 흡사한 인물이다. 평범하지만 작은 일상의 행복들과 즐거움에 감사하며 살아가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늘 궁금해한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애인인 Richard가 AIDS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행복했던 것들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 그의 죽음으로써 클라리사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궁금증을 버리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라는 버지니아의 메시지를 전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삶을 더 가치있게 여기기 위해서 누군가는 죽어야해요"

“Someone has to die in order that the rest of us should value life more.”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세 여성은 행복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고뇌한다.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 역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같은 고민을 한다.

삶의 전부를 보여주는 하루, 그 하루를 채우는 시간들, 시간들을 채우는 순간, 그 순간은 유동적이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어떻게 채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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