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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Feb 19. 2021

아들이 보내준 동영상 함께 보실래요?

둘째 아들로부터 카톡으로 동영상링크를 받았다.

<공부법 전문가 조남호 코치의 혼공 코드 강연 풀버전 공개!>

2시간이 넘는 동영상이다. 유튜브보다 문자로 읽는 것이 더 편한 나에게는 너무 긴 동영상이다. 공부법에 대한 강연이면 당연히 고등학생 아들이 봐야지 이걸 왜 내가 봐야할까?

“아들, 이게 뭐야? 공부법이면 너만 보면 되지.”

“꼭 끝까지 봐야 해. 중간에 그만 보지 말고!”

고등학생 1학년이 된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아들이 원한다니 보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집안일을 하며 동영상을 시청했다.



강사의 고등학교 때 경험으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공부 스킬(skill)이 아니라 코드(code)에 관한 내용이라며 스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코드는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초반 내용은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 들었다.

스스로 익힐 수 있는 시간 확보가 안되는 학원 수업으로만 채워진 공부의 한계, 공부는 암기라는 경험을 쌓은 부모들의 잘못된 조언, 학원주도형 공부와 엄마 주도형 공부의 한계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반론에 대한 답까지 이야기했다. 두 아들 초등학교까지는 학원을 거의 보내지 않았던 나의 신념과 일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 공부는 책 읽기가 중요하다는 것, 타임 스케줄보다는 투 두 리스트(to do list)를 사용한 계획표, 자식에게 부모는 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경험까지 강사의 입을 통해 지난 나의 과거를 돌이켜본다.

“아들, 엄마가 정말 너희들 공부 잘 시켰네. 물론 시행착오도 거쳤지만 강사가 말하는 내용 다 엄마가 사용한 방법이잖아..”

의기양양한 엄마에게 아들은 한마디 한다.

“맞아, 나도 동영상 보면서 엄마의 방법을 생각했어. 엄마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려”

궁금했다. 아들이 말하는 틀린 부분을 찾기 위해서라도 동영상을 끝까지 보고싶다.



난 고1, 고2 학생을 둔 학부모다. 다른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난 아이들 공부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고 있다. 아이들 공부보다는 내 삶에 더 집중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전권을 아이들에게 넘겼다. 중학교를 거치며 아이들 공부 과정과 결과는 그들의 권리이며 선택이고 책임이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것은 물론 아니다. 두 아들 사춘기와 공부 과정을 지켜보며 이제는 내가 손을 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두 아들의 중학교 성적은 널을 뛰었다. 그 과정에서 깨닫고 느끼며 자신만의 사는 법을 찾아가는 두 아들을 이젠 진심으로 믿는다.



강사는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나와 아들에게 고스란히 떠올리게 했다. 쓴웃음이 났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각자 서야 하는 위치를 제대로 찾았다. 난 두 아들에게 게임시간을 더 이상 제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스스로 게임시간을 줄였다. 학원 선택도 모두 아이들 몫이다. 난 밥을 해주고, 가끔씩 깨워주고, 교육비를 납부해 주며 원하는 책을 사준다. 아주 가끔 모르는 문제에 답을 해주기도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일이라고 핑계를 대며 피하기도 한다.

난 두 아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엄마, 아빠는 너희들에게 물려줄 돈은 없어. 이 집도 빚이 너무 많고 다 갚으면 우리 노후대책이야. 그 대신 아빠가 현재 수입이 있으니 고등학교, 대학까지는 너희가 원하는 만큼 지원해 줄 수 있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야.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 앞으로 단 몇 년. 그동안 각자 살 길 잘 찾아봐. 꼭 공부가 아니어도 돼”



공부법인 줄 알았던 이 강연은 알고 보니 자식에 대한 부모 이야기였다.

“우리 아이는 의지가 없어요.”, “노력을 안 해요.”, “보고 있으면 답답해요.” 아이들을 쪼그라들게 하는 말들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부모라는 것이다. 부모는 좀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등학생 학부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중고등학생, 입시 준비를 하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하는 말이다. 집밖 세상에서 이미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며 집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굳이 부모까지 비수를 꽂지는 말라 했다.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배움이 느린 아이, 경험해야 깨닫는 아이인 둘째 아들이 나에게 이 동영상을 왜 보내주며 끝까지 보라 했는지 알 것 같다. 마음이 아팠다. 미안했다. 나는 아이에게 공부시키는 법은 제대로였는 모르지만 아이를 한없이 쪼그라들게 만든 말도 많이 했다. 동영상 시청을 마친 뒤 아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보내 준 동영상 잘 봤어~ 네가 왜 엄마에게 보내주었는지, 끝까지 꼭 보라 했는지 알 것 같아. 지금은 엄마가 한발 물러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우리 아들도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다. 엄마가 널 단정 짓고 나의 방법을 주입하려 했던 모습도 인정한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지금 우리의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깨닫고 성장하는 널 엄마, 아빠는 지지한다. 비빌 언덕, 쉴 수 있는 그늘처럼 남아있고 싶어. 열심히 네 삶을 살아라.”


https://www.youtube.com/watch?v=7DwXK3u0w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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