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엄마를 키운 거야
막내딸을 재우기 위해 막 누우려던 참이었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며 둘째 아들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소화도 시킬 겸 밖에 나가서 좀 걷고 와.”
“나 혼자?”
평소 같으면 형이랑 다녀오라 하겠지만 오늘은 열일곱 살 아들과 같이 걸어주고 싶다. 최근 몇 주 동안 눈빛을 반짝거리며 고등학교 공부에 열을 올리더니 요 며칠 지친 모습이었다. 안 하던 공부를 갑자기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 말없이 지켜보던 중이다. 방 청소를 하다 엄마의 마음이 아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포스트잇에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안방으로 들어온 아들의 표정을 보니 그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엄마랑 같이 나갈까?”
“oo 재워야 되잖아?”
“조금 있으면 아빠 올 거고, 까스 활명수라도 사 먹으면 좋아질 거야. 금방 다녀오자.”
소화시키겠다고 까스 활명수를 먹어 본 적 없는 나였지만 아들과 바깥바람을 쐬어 주어야 할 것 같아 아무 말이나 했다.
첫째 아들에게 막내를 잠시 맡기고 둘째 아들과 함께 동네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아이는 고민이 있는 듯 답답해하면서도 쉽게 말을 못 꺼낸다. 구입한 활명수를 그 자리에서 마시게 한 뒤 소화도 시킬 겸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아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나란히 몇 발자국 걷기 시작했을 때 아들의 팔이 내 어깨를 감싼다. 오랫동안 기억될 순간이다. 사춘기 아들이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몇 년 만이지? 엄마 품에 쏙 안기던 아들은 초등 고학년이 되고 중학교를 들어가며 엄마에게 먼저 다가오는 스킨십은 사라졌다. 내가 아이의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쓰다듬거나, 귀를 후벼주는 것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부탁에 못 이겨 내 어깨를 안마해 준 것을 제외하면 아들이 먼저 친근한 스킨십을 한 것은 정말 오래되었다. 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용기 내어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지만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는 못한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들어봤어?”
꿈, 무의식, 과거 경험 등의 단어로 내가 이해한 만큼 설명했다. 이야기는 아들러 심리학으로 이어졌다. 개인 심리학, 의지, 지금, 여기, 미래 지향적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정신분석학보다 아들러 심리학이 더 끌리는 이유, 스물여덟에 시작한 연년생 아들 육아 이야기, 어린 엄마의 시행착오에 대해 들려주었다. 아들은 자주 울컥해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00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돼, 만약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떠오르는 단어 하나만 이야기해 봐.”
아들의 반응을 살피며 천천히 단어를 나열해본다. 후회, 걱정, 불안, 미래.........
아들은 고개를 젓는다. 한참 후 힘겹게 아들은 입을 열었다.
“두려움.......”
아들은 공부에 지친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려고 밤늦게 앉아 있으면 시간의 유한함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이고 부모의 건강이 걱정되며 자신이 부모와 잘 지내고 있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때로는 그 불안이 공포감으로 커지기도 한다며 눈물을 흘린다.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우는 열일곱 살 아들이다. 맘껏 울 수 있도록 어두운 공원 인적 드문 곳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열정적으로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요가, 플루트, 글쓰기와 관련하여 겹치는 지인은 없지만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뭐냐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주저 없이 난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구체적으로 인지하며 사는 것 같다. 나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응급실 간호사로 지낸 10년의 시간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결혼 후 이메일 계정을 새로 만들 때 바닥글로 쓴 문장이 있다.
“평생을 살 것 같이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 같이 오늘을 살자.”
18년 동안 이메일을 쓸 때마다 내가 적어 놓은 글귀를 보았다. 며칠 전 아들 태블릿 PC 바탕화면에서 똑같은 글귀를 발견했다. 소름 끼치면서도 웃음이 났다. 최근에 내가 읽은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책 제목, 며칠 전 노화로 인한 내 눈의 이상증세, 다음 주 친정 아빠 생일을 맞이하는 나의 애틋한 마음까지 아들은 엄마의 일상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친 게 없었다. 아이는 엄마의 많은 부분을 흡수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춘기 아들이 느끼는 죽음,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 난 부모로서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
“네가 요즘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자연스럽고 감사한 일이야. 네 삶의 큰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어.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으니까. 그 안에서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거지.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에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넌 벌써 깨달았으니 얼마나 좋아. 부모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을 부모가 죽거나 아픈 뒤에 느끼는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가 건강할 때 알아차리고 표현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런데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 네가 날 위해 뭔가를 한다면 엄마는 잠시 기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어.”
친정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남편과 아이들을 집에 두고 친정에 가서 지낸들 부모님이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주 못 찾아봬도 제 자리를 지키는 내 모습에 부모님 마음은 더 편안한 할 것 같다. 엄마, 아빠를 위해 뭔가 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부모로부터 독립할 때 우리 관계가 가장 아름답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아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각자의 자리에 살면서 가끔씩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오늘처럼 네가 엄마 어깨에 손을 얹는 것처럼 말이야. 엄마 완전 심쿵했거든. 아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엄마 나이 정도 되면 전해지는 마음들이 있거든. 엄마는 네가 뭘 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네 존재 자체로 고맙고 좋아.”
아들의 감정도 잦아들고,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도 끝날 무렵 우리 둘은 어두운 공원을 빠져나와 가로등 불빛이 있는 길을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는 전화와 문자 진동이 오고 있다. 아마 집에 있는 또 다른 자식의 부름일 것이다. 사춘기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은 세 아이가 나를 엄마로 키웠기 때문이다. 생각, 감정 모든 것들이 성장하며 어른의 단계로 들어서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들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지금(now), 여기(here)에서 할 수 있는 부모 노릇이 늘 최선이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