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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Nov 07. 2022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하는 이유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도발적인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읽고 싶었다.  늙은 부모가 사랑스럽지 않아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인지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인지 직접 확인하길 원했다. 나이 든 부모를 당연히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더 이상 부모로부터 받을 것이 없는 자식이 내 삶의 일부를 내주어야 하는 "나이 든 부모"를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목의 진의가 궁금하지 않을까?

<미움 받을 용기>를 통해 한국 대중들에게 아들러 심리학을 알린 기시미 이치로가 이 책의 작가이다. 이치로는 마흔아홉에 뇌졸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간병한 경험이 있으며 이치로 자신도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또한 이치로는 홀로 남겨진 아버지가 치매를 앓자 간병을 위해 매일 본가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했다. 심리학자이자 아픈 부모를 위해 긴 시간 동안 돌봄 경험을 가진 한 인간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에세이다.

 


  남편은 삼 남매 중 막내이며, 나는 오 남매 중 둘째인데 남편 나이는 나보다 여섯 살 많다. 자연스럽게 시부모님은 친정 부모님에 비해 10년 정도 나이가 더 많기에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부모님의 노년을 좀 더 일찍 경험할 수 있었다. 시아버지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편마비가 있어 거동이 불편했다.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와 단 둘이 지내고 있었다. 가까이 사는 자식이 있지만 자식들도 그들의 자식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시기였다. 어머니도 자식들에게 부담 지우지 않으려 엄청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것도 어머니의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 부부가 결혼 10주년을 맞이할 때쯤부터 어머니는 아버지 간병이 힘들다고 했고 몇 년 후 가족들은 시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나를 내어주는 것이다. 내 시간, 내 체력, 내 정신까지. 부모를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도 없었다.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시어머니는 몇 년 뒤 치매를 진단받았다.


 

자식을 돌보던 부모는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시댁에서 보았던 시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 요양원에 누워있는 무력한 모습, 임종이 가까워지면서 식물처럼 변해가는 시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알아차리고 가족들이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책을 읽다 자주 깊은숨을 내쉬어야 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좀 더 인간적으로 챙기지 못했다는 후회도 밀려왔다. 시아버님이 쓰러진 이후 20년 넘게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꿋꿋하게 해왔던 어머님이 치매 진단을 받았을 당시 자식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자식으로서 이치로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했다.



시어머니가 치매를 진단받았을 때 마음이 무너졌을 남편을 보는 것도, 존경했던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도, 아픈 부모를 둔 자식들의 각자 삶을 생각하는 것도 내겐 괴로움이었다. 간호사 출신인 나조차도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와 소리치며 싸울 정도로 치매 간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하고 돌봐야 하지만 현실은 내 일상이 무너지고 정신은 피폐해지며 상처받기 쉬운 날의 연속이었다.



팔십 넘은 부모를 둔 자식이라면 '자식들에게 해 주는 것은 없고 피해만 주니 내가 일찍 죽어야지'라는 식의 부모님 푸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작가는 생산성으로만 가치를 측정하는 사회에 길들여진 이유도 있다고 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떤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꼭 표현하라고 작가는 당부한다.


 


“사람은 늙으면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그리하여 푸념 따위를 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거나,

손주를 어리광쟁이로 만들어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주무시기만 하시니 제가 안 와도 되겠네요.”라고 한숨 쉬듯 말하자,

아버지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옆에 있으니까 내가 안심하고 잠드는 거야.”


- 기시미 이치로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육아를 비롯한 모든 돌봄에서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아니 내가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기다리고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존재 가치가 있는 일임을 18년 동안의 육아가 내게 가르쳐 주었다. 1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시간 강사 생활을 병행할 때 나는 남편에게 자주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다. 내 능력만큼의 돈을 벌지 않는 상황에서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 부족했다. 이 사회가 생산성으로만 가치를 측정하는 것에 나도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하면 남편이 한 번이라도 관심을 보이니 그렇게라도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픈 것으로 남편이나 자식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이미 우리 집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님이 잘 지내다가도 자식만 보면 아프다고 말한다면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치로는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도 설명했다.

“부모는 현실의 자식을 두고 이상형의 자식을 꿈꿉니다.

그런데 이 이상형의 자식은 부모가 품는 이미지일 뿐 현실의 자식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부모가 이상형의 이미지를 버리고 현실의 자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때로는 힘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모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부모에게 간병이 필요해지기 전까지 함께 보낸 역사가 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는 이전의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부모의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그대로 이상 속 부모가 되기도 합니다.”

이치로는 우리가 나이 든 부모를 돌볼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이상적인 부모님으로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자식이 부모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도 사람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도, 누군가에 의해 행복해질 수도 없다고 말한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 상상 속 이상형인 자식을 놓고 현실 자식을 키우려니 얼마나 힘들었던가? 사람이 사람에게 순간적인 기쁨을 줄 수는 있지만 자식이 행복하다고 부모가 행복한 것도 아니고 그 반대는 더욱더 아니다. 자신이 아닌 누구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일구어 간다는 것도 지속되기 어려운 일이다. 이치로는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부모의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과한 죄책감을 가지며 자신을 괴롭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시어머니가 치매를 처음 진단받았을 때 가까이 사는 시누이는 어머니의 변화와 돌봄에 지쳐 번 아웃 직전이었다. 남편은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다니던 서울 직장도 옮기려고 알아보았다. 남편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결된 것들이 너무 많았고 결정적으로 남편의 발을 잡은 것은 부산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나와 아이들이었다. 부산으로 이사하면 아이들은 낯선 곳에서 사춘기를 맞이해야 했고, 나도 육아를 병행하며 할 수 있었던 출강 자리도 잃게 된다. 육아를 위해 직장 생활을 포기한 아내에게 마지막 남은 사회생활까지 포기하라고 강요해야 하는 상황과 학교 적응이 쉽지 않았던 두 아들이 남편을 서울에 주저앉게 했다. 남편이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내세웠다면 우리 가족들은 물론 부산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 생활은 장담할 수 없다.  오랫동안 서로를 원망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온 식구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대신 남편의 불편한 마음을 덜어주고, 부산 시누이를 잠시라도 쉬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교대로 부산을 다녀왔다. 주말이라도 시누이가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원했다. 몇 개월 동안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교대로 내려갔다. 서울에 남겨진 사람이 큰 아이들을 돌보고 당시 15개월이었던 막내는 엄마와 세트처럼 부산을 다녔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본 서울 형님 부부가 주말 돌봄 당번을 함께 하면서 주말마다 한 사람씩 부산으로 갔다. 그게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하는 우리의 최선이었다.


 

주말마다 가던 부산행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멈추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치매 약을 복용하면서 증상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시누이는 여전히 매일 밤 혼자 지내는 늙은 어머니 곁을 지키고, 주말마다 바깥나들이를 동행한다. 책을 읽는 내내 부산 시누이를 떠올렸다. 시누이는 나이 든 부모를 돌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낼까? 자신의 가치를 발견했을까? 시어머니 존재 자체만으로 자식들은 힘을 얻을까? 그 힘은 사실 시누이의 돌봄으로 가능한 것임을 그녀와 그녀의 오빠, 남동생은 알고 있을까?


 

작가는 마당에 핀 히비스커스 꽃을 보고 기뻐하는 아버지를 보며 꾸준히 물을 주었다고 한다. 어느 해에는 꽃이 잘 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물을 주었고 그해 늦게 꽃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 작가는 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더라도 돌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꽃을 피우는 것처럼 미래가 있어 힘들어도 돌보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 든 부모는 회복이라는 꽃을 피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다. 끝없이 물을 주어도 매일 시들어가는 식물에게 물을 주는 건 매우 힘겨운 일이다. 자신의 물 주기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하고픈 까닭은 부모의 “지금, 여기”를 함께 하지 않으면 먼 훗날 그들을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사람이 진짜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산 사람들에 의해 기억되지 않는 순간부터라고 믿는다. 부모가 내 안에 계속 살아있게 하려면 “지금, 여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지금의 시간이 쌓여 오랫동안 서로를 떠올릴 것이며 자식으로서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것이니까.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시어머니 돌봄 당번을 위해 다시 부산행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시간은 쌓여 15개월이었던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지난 주말 내가 입고   요가 바지를 보고 몸빼 입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왔냐며 자신의   벌을 내민다. 할머니  같아서  입는다는 중년 며느리를 보며 본인도 어이없는지 하하 웃는다.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손녀에게 용돈 두둑이 챙겨주며  오라고 당부하는 시어머니다. 어머님은 치매를 앓는 무력하고 연약한 노인의 모습이 아닌 시어머니이자 손녀의 할머니로 존재하고 싶어 했다. 내가 나이  부모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의 과거 속에 내가 살았으며, 지금도 함께 살며,  미래에도 우린 함께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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