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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리자 Dec 26. 2023

나는 문학소녀였다

지난 연휴 성당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각 구역마다 두 곡씩 선정해서 연주와 노래, 추가로 춤까지 준비하여 음악회를 열었다.

아흔이 가까이 되신 할머니부터 유치부 어린이들까지 모든 세대가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모두가 한무대에 오른 자체가 감동이고 아름다웠다.


그중 내 마음을 가장 흔들어 놓은 팀이 있었다.

다른 팀에 비해 인원도 적고 의상 준비도 미흡한 느낌의 팀이었다. 첫곡은 많이 선정되기도 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인원은 적었으나 노랫소리는 너무 듣기 좋은 팀이었다.

두 번째 곡, ‘마중’

차례지에 있는 제목을 보고 처음 듣는 노래겠구나 추측만 하고 듣게 된 노래.

조용한 선율과 가사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노래가 끝나고 나는 그날 무대 중 가장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음악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음악을 찾는다.

여러 성악가들이 불렀던 영상들 가운데

소프라노 이해원 씨가 부른 영상을 보았다.

청아한 목소리의 성악가가 부른 마중은 너무나 아름답다.

어찌 가사도 이리 아름다울까?



마중 - 허림 시 / 윤학준 작곡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 서 있을게


우리 가곡은 가사가 참 멋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 마음은 호수요’를 듣고 가슴 떨렸던 그때가 떠오른다.

시 한 구절에 밤 잠을 못 이루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국어시간이었다.

그날은 각자가 준비해 온 3분 스피치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시를 준비해 갔다. 새로 시집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이 멋진 시를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읊어주기로 했다.



진작부터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 이정하


어디까지 걸어야

내 그리움의 끝에 닿을 것인지

걸어서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밤새도록이라도 걷겠지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버리고

나는 마냥 걷기만 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도

그냥 건성으로 지나치고

마치 먼 나라에 간 이방인처럼

고개 떨구고 정처 없이 밤길을 걷기만 했습니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다지만

짧은 이별일지라도 나는 못내 서럽습니다

내 주머니 속에 만지작거리고 있는 토큰하나

이미 버스는 끊기고

돌아갈 길 멉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걸어서

그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대의 마음으로 갈 수 있는

토큰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내 부르튼 발은

상관도 안 할 겁니다


문득 눈물처럼 떨어지는 빗방울

그때서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아아 난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로 보아

진작부터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시를 다 읊고 나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눈물인지 비인지 모르고 걸었던 마음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난 정말 그 시에 진심이었다.

담임선생님이셨던 국어선생님은 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내 진심을 선생님이 비웃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울었다.


그 감성 터지던 내 여고시절이여.

나 아직 그 감성 살아 있다.

오늘밤도 둘째가 나에게 와 말한다.

“엄마, 마중 또 들어요?”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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