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 인터뷰 ①
공동취재: 최혜정 김한별
<10. 29 이태원 참사> 2주기가 다가온다. 2주기를 앞둔 지금, 유가족들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또,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지난 9일, 서울 중구 부림빌딩에 마련된 임시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집' 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을 만났다.
■ 다시 돌아온 10월, '참사 2주기' 맞는 유가족
-어느새 10월이 됐네요. 언젠가 '우리에게 10월은 굉장히 아프고 시린 달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 있어요. 참사 2주기를 맞는 마음.. 어떠실까요?
10월은 유가족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달이에요. 사실 1년 중 너무나 좋은 한 달이잖아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고요. 이렇게 좋은 한 달이 우리한테는 굉장히 아프게 다가오는 달이라 너무 서글프기도 하죠. 놀러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집 안에만 있고요.
10월을 기억하면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게 너무 비참한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고 우리도 밖으로 나오자. 나와서 뭔가 하고 사람들한테 10월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라도 하자. 그런 마음으로 10월을 보내고 있어요. 지난주부터 <시민들과 주말걷기> 행사를 시작했는데, 만나서 함께하다 보면 웃을 수도 있고 참 좋은 것 같아요.
-1주기와 2주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점도 있을까요?
많이 다르죠. 1주기 때는 10월이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어요. '10월을 어떻게 보내지? 어떻게 해야 되지?' 10월 29일이 다가올수록 당시 기억들이 자꾸 되살아나기 시작하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오로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만 견디려고 했었는데 올해 10월은 달라요. 우리가 해야 될 목표가 뚜렷해졌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될지가 명확해졌으니까요.
아이들의 모든 꿈과 희망이 다 날아간 것에 대해서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이에요. 아이들이 자기들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항간의 이야기를 없애주는 것. '너희 잘못이 아니야. 국가와 정부가 잘못해서 만들어진 참사야. 너희들은 정말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이야' 라는 것들을 밝히기 위한 것이요. 그래야 아이들의 명예가 고스란히 살아날 수 있으니까요.
■ 특별법 통과부터 특조위 출범까지... 유족이 전하는 숨겨진 뒷 이야기
○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통과…긴박했던 순간들
-먼저 이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얼마 전,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어요. 여기까지 오는데 우여곡절이 참 많았지요. 특별법 통과 목표가 지난해 12월이었는데, 올 5월에야 통과 됐더라고요?
야당 단독으로 통과됐지만, 일단 법안이 통과됐어요. 특별법이 통과되는 시점에서 참 묘한 일이 있었어요. 우리가 1년 동안 특별법 통과를 위해 길거리를 헤매고 목소리를 내고 몸을 다 던지는 고행을 했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했고 완전히 외면하고 거부해버렸었잖아요. 굉장한 절망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었거든요. 아이들한테 '우리가 법안을 만들어서 올렸어' 했는데, 거부당하니까 어찌할 줄 모르겠는 거야. 이 막막한 심정을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했어요. 유가족들이 절망감 때문에 포기할까 봐 걱정이 됐어요.
재의요구권이 거부돼 다시 국회로 돌아오면 여당 국회의원들 찾아가서 '찬성표를 많이 확보해서 다시 거부권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설득하고 희망을 주려고 했어요. 끈을 놓지 말라고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고. 유가족들은 절망감에 빠져있고, 저도 기진맥진 탈진한 상태에서 집에 멍하니 있었어요. 그런데 전화가 온 거예요. 지금 특별법 관련해서 여야가 합의를 하려고 한다.
-갑자기요? 그때가 언제였어요?
지난 5월이었죠. 굉장히 생뚱맞았어요. 처음엔 신뢰 못 했어요. 계속 그래왔으니까. 협상만 하다가 서로 안 맞으면 어그러지는 식이었으니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영수회담을 할 때 말을 잘못한 게 있었어요. 법리를 잘못 해석하더라고요.
'영장 청구권'과 '영장 청구 요구권'은 완전히 다른 사항이거든요. 특별법에는 영장 청구 요구권이 들어있었어요. 대통령은 영장 청구권이 들어있어서 위헌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영장 청구는 오로지 대한민국에서 검사만 할 수 있는 권한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특별법에 있는 일반 민간인 특조위원들이 그 자격을 갖는다는 것은 위헌이고 안 된다는 거죠. 그게 아니거든요.
영장 청구 요구권은 검사한테 우리가 요구를 하는 거예요. 검찰에 '영장 청구를 해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거란 말이에요. 검사가 판단을 해서 '이거 가지고는 안 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검사가 '오케이' 하더라도 판사한테 영장 청구를 해야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판사가 '아니야' 하면 또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요구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대통령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고 저 실수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통령이 영장 청구 요구권을 비롯한 독소 조항만 없애주면 특별법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으니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지자. 이걸 삭제시키면 특별법 통과시켜 줄 것인지 강하게 정부 여당에 푸시하자고 했죠.
그런 상황 과정 속에서 여야 협상을 다시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의아했어요. 이게 뭘까? 믿을 수가 없으니 좀 지켜보자. 그런데, 한 30분 있다가 다시 전화가 온 거예요. 여당에서 요구하는 조항이 있다. 우리가 만약에 요구를 받으면 통과시켜주겠다고 한다.
조항이 뭐냐 물었죠. 아까 말한 대통령이 실수한 부분 ① 해당 조항을 빼 달라. ② 특조위 기간을 (1년+3개월 연장) 9개월+3개월 연장으로 해 달라. ③ 특조위원장 추천을 여야 합의로 하자. 이 3가지 조항을 이야기했어요.
급하게 운영위원들과 대책회의가 줌 회의를 통해 논의하고 결정을 했었어요. 판단했을 때 '대통령이 실수한 부분은 없어도 큰 관계없다. 오케이 그거는 빼줄게' 그런데, 기간은 1년+3개월 연장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1년은 지켜야 된다고 했죠.
특조위원장 자리는 여야 합의로 해서 하자고 제의했는데, 합의는 애매모호한 거예요. '합의가 아닌 협의로 하라'고 했어요. 협의는 기한이 있어요. 계속 논의하다가 기한이 넘어가면 그냥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협의로 하자고 전달한 거죠.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한 1시간 있다가 전화가 왔는데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우리가 얘기한 것들을요. 깜짝 놀랐어요. 전혀 기대도 안 하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유가족들이 오케이만 하면 바로 여야 원내대표가 기자회견하고 발표할 거라는 거예요. 고민할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1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 시간이 저한테는 가시방석이었죠. 모든 유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고, 설명을 들을 수도 없고, 오로지 내가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 무거운 짐이 나한테 온 거예요. 그런데, 머리를 딱 비우고 딱 이것만 생각했어요. '내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 선택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 그것만 생각했어요.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하고 바람직한 선택일까.
삭제한 조항은 특조위 활동을 하는 데 크게 지장이 있는 항목들은 아니라고 판단되었고, 지금 법안 통과시키지 못하면 앞으로를 장담할 수 있을까, 입법이 어떻게 될지, 정치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고민하다 전화했죠. 오케이. 그리고 잘못되면 모든 책임에 대한 돌은 내가 맞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 정세가 보이잖아요. 상황이 점점 눈에 보이면서 이때 특별법 통과 안 됐으면 큰일 날 뻔했겠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법이 통과 안 됐으면 사실 이 공간으로 오지도 못했어요. 분향소에 계속 있었어야 했어요. 지난여름 얼마나 폭염에 시달렸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어떻게 견뎠을까요.
이게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했냐면요. 이번에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잖아요. 만약 법이 통과 안 된 시점이었다면 모두 다 절망에 빠졌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에게 특조위가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큰 위안이 되는 거예요. '그래. 무죄받았어? 알았어. 특조위에서 조사해서 더 큰 죄를 받게 할 거야'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 경찰은 유죄, 구청은 무죄? '엇갈린 판결'
-아, 그렇죠. 얼마 전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1심이 있었어요. 박 구청장은 무죄, 이 전 서장은 금고 선고받았더라고요. 유족들이 법원 앞에서 울부짖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어요.
네. 유족들은 박희영 구청장에게 형사적 책임을 떠나서 구청장으로서의 정치적 책임을 묻고 싶은 거예요. 자신의 지자체에서 일어난 사고잖아요. 지자체장으로서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책임을 느끼고 구청장직에서 물러나야 맞는 이치인 거죠.
그런데, 너무나 당당하게 직을 수행하는 걸 보고 우리는 조롱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사람은 정권의 실세 라인이에요. '방탄하는구나'라고 느꼈거든요. 재판 과정에서도 똑같았어요. 유족들은 재판하는 중에도 굉장히 많이 분노하고 느꼈어요.
-위원장님은 전 재판과정을 직접 지켜보셨잖아요?
네. 검사가 제대로 역할을 안 하는 거 같았어요. 판사가 몇 번이나 증거 자료 좀 확보해 와라 해도 안 하는 거예요. 판결이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예상을 깨고 징역 7년을 구형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웬일로 7년을 구형하지? 의아했는데 무죄가 나왔어요.
간극이 너무 크잖아요. 이건 형식적인 언론 플레이다. 보여주기 위한 거다. 검찰은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구나 생각해서 그때 굉장히 분노했거든요. 어떤 판단과 기준을 가지고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했고, 판사가 판단했을 때는 죄가 안 된다는 것인지.
징역 7년과 무죄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계속 인터뷰하면서 검찰이 항소하고 제대로 다퉈주지 않으면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되고 스스로의 무능을 인정해야 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7일에 항소를 했어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텐데 안 할 수 없죠. 항소 시작되면 특조위 조사하고 병행해서 가게 될 텐데 다들 도망갈 길이 없을 것이다 생각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솔직히 밉고 괘씸한 건 있지만 그렇다고 없는 죄를 씌우고 싶지는 않아요. 죄가 없는 사람을 밉다고 무조건 넣어야 된다? 이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만약에 죄가 없더라도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책임이 있다면 직을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형사적인 책임을 떠나서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 무죄에 대한 그 의미가 '일을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 예요. 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안 했어, 인파 관리도 안 하고.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무죄인 거야. 그런데, 일을 했던 사람, 무언가를 한 사람, 경찰이든 뭐든 뭘 했던 사람들은 유죄 판결을 받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하는 거죠.
이런 메시지가 공무원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한번 고민해 봐야 될 부분이에요. '나 일 안 할래. 가만히 있으면 아무 죄도 안 되는데 괜히 나서 가지고 책임지라고 처벌받으면 나만 손해지. 왜 해?' 이런 메시지를 던질 수 있죠. 이건 잘못됐고 부적절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전혀 없죠. 외국 언론들도 참 이해할 수 없다고 해요. 159명 사망자. 얼핏 듣기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사망자가 많은 참사라 들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성수대교 붕괴됐을 때 국무총리, 국토부 장관 다 그만뒀어요. 그 사람들이 대교 만들 때 무슨 책임이 있었겠어요? 없어요. 그렇지만 여파라는 게 있기 때문이죠.
관료들이 있는 이유가요. 그런 상황 생기면 대통령이 그만둬야 돼요. 하지만, 대통령이 그만둘 수 없죠. 국가에 혼란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국무총리, 장관이 있는 거예요.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책임을 안 져요. 그러면 책임은 대통령한테 계속 가 있는 거예요. 사라지지 않는 거죠.
우여곡절을 겪었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고, 참사 22개월 만인 9월 비로소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송기춘 위원장의 약속처럼 특조위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원을 풀어줄 수 있을까. 특조위가 조사하고 밝혀야 할 과제들을 하나씩 꼼꼼히 짚어본다.
■ "진상규명 이제 시작" 특조위 출범과 해결 과제
-지난 9월 23일,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어요. 수사를 위한 별도의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유가족 측 입장이었죠?
특수부 수사 때부터 부실 수사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부가 방탄하고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들을 알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조사할 수 있는 기구가 없으면 아무것도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목매달았던 거죠.
얼마 뒤면,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선고 나올 텐데 사실 기대가 없어요. 검찰에서 김 청장은 불기소해야 된다고 1년 동안 방탄을 했어요. 죄가 없다.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의견이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기소했는데 금고 5년을 선고했어요. 불기소해야 된다고 떠들더니 금고 5년을 때린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거잖아요. (*김광호 전 청장에 무죄 판결이 나왔고, 23일인 오늘 검찰은 항소했다.)
박희영 구청장 재판과 똑같이 기대치가 없어요. 겉보기로만 해놓고 직접 선고는 전혀 다른 각도로 나올 확률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직접 팔 걷어붙이고 하지 않으면 그냥 덮여 버리고 말 거다. 진실을 밝힐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 가지, 특조위에 대해서 정부 여당이 무용론을 많이 주장했거든요. 세금 낭비니 어쩌니. 국정조사나 특수본에서 다 했는데 왜 또 하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국민들도 보고 있어요. 특조위에서 무언가를 밝혀내지 못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어떤 재난 참사가 발생했을 때 영원히 특조위를 꾸릴 수 없을 거예요. 무용론이 되어버리고 말 거예요. 그래서 엄청난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되는 겁니다.
○ 특조위가 반드시 밝혀야 할 과제들
-유가족들이 특조위에 '1호 진상규명 조사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요? (*진상규명은 특조위의 자체 직권조사, 유가족 등 관련자 신청으로 이뤄지는 신청 조사로 나뉨.)
유가협 차원에서 공통된 과제예요. 모든 가족의 공통된 의문점을 1호로 접수한 거고요. 11월쯤 2주기가 끝난 후에는 각 가족 개개인들이 가진 의문점에 대한 진상 조사 신청을 할 거예요.
-추가 신청은 개별적으로 하나요?
네. 희생자들마다 의문점이 달라요.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개개인의 기록은 다르니까요. 어떤 유가족은 내 아이는 계속 살아 있었다, 체온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문이 드는 것들을 찾아봐 달라고 하는 부분이 있겠죠. 사망자 시신이 소방 기록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고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 영상이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는데. 길에 아이들 시신이 눕혀져 있는 게 있어요. 7~8명 정도. 그런데, 하의 탈의를 시켰어요. 얼굴만 옷으로 덮어놓은 게 있었어요. 너무나 의아했던 부분이죠. 하의 탈의를 왜 시켰지?
누워 있다가 생존한 애도 있어요. 자기가 기절해서 누워 있는데 너무 추워서 깼대요. 그런데, 옷이 다 면도칼로 찢어져 벗겨져 있었다는 거예요. 그 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대체 왜 이유가 뭐지? 왜 그렇게 했지? 의문이 드는 거죠. 보통 시신을 그렇게 방치하지 않거든요. 덮어 놓아야 맞는 건데.
또 사진 찍는 걸 제재하지 않았어요. 보통 제재해야 되는 거예요. 경찰도 한 명 서 있었어요. 그렇게 두면 안 되거든요. 미스터리인 거죠. 계속 유류품도 조사했었잖아요. 만약, 마약이 발견되거나 연루됨이 나타나면 아이들을 그 매개체로 삼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사 발생 초반에 SNS에 잘못된 정보가 많이 돌았어요. 클럽에서 마약 하다가 사고가 났다, 클럽에서 화재가 있었다.
모든 게 왜곡되어 퍼진 거예요. 희생자 159명 중 단 한 명이라도 마약을 가지고 있었거나 연루됐으면 모두가 마약 사범으로 매도 돼버릴 수 있었죠. 이런 사진이 아마 증거 자료가 되었을 거예요. 나중에 가족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니까 정말 성실한 아이들 밖에 없는 거예요. 이태원에 그냥 구경 갔던 애들이에요. 핼로윈을 체험하고 싶어 왔던 애들. 한편으로 참 다행이라고 안도했어요.
우리가 의문점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게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잖아요? 경찰들이 와서 희생자들 유류품을 다 뒤졌어요. 마약 관련된 게 있나 없나 계속 찾고 있었던 거예요. 마약을 한 흔적이 있나 없나. 만약 희생자 중 한 명이라도 마약을 소지하고 있거나 마약과 연루된 무언가가 있었으면 다 뒤집어 씌웠을 거예요. 이게 마약 때문에 생긴 사건이라고.
-참사 원인에 많은 의문들 중 '대통령실 용산 이전도 영향이 있다' 지적하는 의견도 있잖아요?
특조위 조사에서 나올 거예요. 참사 전과 후, 그 후 대처. 이렇게 세 가지.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데 용산 이전이 굉장히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어요. 청와대에서 용산 이전할 때 충분한 기간을 가지지 않았어요. 집을 이사하더라도 충분히 준비를 갖춰주고 이사를 해야 하는 게 마땅한데, 대통령 집무실을 졸속으로 이전할 수 없는 거죠. 공간만 이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가장 핵심적으로 잘못된 것은 대통령실이 이전하면 대통령 경호의 문제가 따르는 거예요. 청와대에 있을 때는 그 역할을 종로경찰서가 했어요. 오랜 시간 동안 청와대에 있었기때문에 종로경찰서가 모든 노하우를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용산으로 와버렸어요. 용산경찰서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옮기기 전에 예상해서 인력을 보충시켜 준다든가 용산서에서 충분히 할 수 있게끔 만들어놓고 진행해야 됐어요.
가장 1순위가 대통령 경호란 말이에요. 그런데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가버렸어요. 용산경찰서는요. 재판 과정에서도 증언했지만 대통령실이 이전하면서 업무량이 1.5배가 늘었대요. 능력도 안 되는데 대통령 경호에 대통령실 앞 집회까지 경호하려니까 일정 외 업무량이 늘어나고 견딜 수가 없잖아요. 너무 힘들어서 인원 보충을 해달라고 계속 요청했는데 그것도 안 됐다. 재판관이 '대통령실을 이전한 것이 참사에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냐' 물었더니 그 사람이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집회 때문에 발생된 거다, 집회만 없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집회가 없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에요. 보수 정권이 집권하든 진보진영이 집권하든 집회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 건데 그게 문제라고 하면 공산국가죠. 모든 국민들도 알고 대통령실도 알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했다는 게 얼마나 무능한 일인지 근본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다 이야기를 하거든요.
용산서 담당 과장이 재판 나와서 증언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자기들은 이태원의 인파 관리에 대한 것들을 지시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상부에서 참사가 발생했을 때, 빨리 가서 인파 관리하고 구조하라고 했으면 30분이면 갔다는 거예요. 그만큼 대기를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런 지시를 받은 게 없다는 거죠.
아이들이 압사당한 채, 길에서 기절해 있는 상태로 무려 50분을 멈춰 있었단 말이에요. 심각한 상황을 인지했으면 빨리 경찰을 보내서 구조 활동을 시켰어야 되는데.. 그러면 많은 아이들이 살 수 있었어요. 지시하면 30분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아무런 지시를 안 했어요.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용산으로 대통령실 이전한 게 영향을 안 끼쳤다고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당연히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김광호 서울청장이 국정조사에서도 이야기했고 법정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곳에 경찰 병력이 한 160명인가 140명인가 이렇게 있었다. 예전보다도 훨씬 많은 경찰 병력이 있었다고 했거든요. 경찰 병력 중 50명은 마약 수사대 병력이었어요. 나머지는 각기 다른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범죄, 성추행 사건 등에 배치 돼 있었고 인파 관리를 위한 병력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만약, 정보 경찰이 있었으면 사태 심각성을 보고 빨리 전파해서 구조해야 된다고 했을 텐데, 정보 경찰조차 한 명도 없었단 말이에요.
마약 수사대 병력은 사법경찰이란 말이에요. 아무도 경찰인 줄 몰라요. 사법 경찰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듣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경찰이라는 것을 인지 못하니까. 이 사람들은 과연 참사가 벌어지고 수습되는 동안에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느냐가 핵심인데,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어요.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도 채택 안 됐고, 특수 수사에서도 조사가 안 됐고, 이 사람들만 이상하게 빠져나가 있어요. 아무런 증언도 확보가 안 돼 있잖아요 가장 핵심 인물들인데. 그래서 이번 특조위에는 꼭 그걸 밝혀야 된다고 하고 있어요.
국정조사 때 이야기 나왔던 게 마약 수사대는 한 팀이 5명으로 수사하는데, 당시 50명. 10개 팀이 투입 돼 있었던 거예요. 이 사람들이 생생히 현장을 목격하고 있었는데 상부로부터 인파 관리를 해야 된다, 뭘 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자기 직무에만 충실하라고.
경찰 특성상 마약 수사를 하고 있잖아요? 살인사건이 나도 개입 못해요. 그게 경찰의 특성이고요. 직무를 팽개치고 다른 걸 하잖아요? 그럼 징계 대상인 거예요.
눈앞에서 그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과연 사람이라면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요. 틀림없이 상부에 보고했을 것이다. '지금 심각하다.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되냐' 상부에서 뭐라고 지시했느냐가 핵심이에요.
마약 수사대 팀장들이 지켜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거 도저히 안 되겠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했대요. 그 자리에서. 그래서 마약 수사대 조끼를 갈아입고 그때부터 구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그때는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상태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느 장소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보고를 했는지 이게 굉장히 중요한 핵심이에요. 그리고 누구한테 지시를, 보고를 했고, 누구한테 지시를 받았느냐 이게 굉장히 큰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참사가 벌어진 이후, 상황 대처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고요?
제가 오전 12시쯤 현장에 갔는데 그때까지도 도로 통제가 안 되어 있었어요. 살아있는 아이들이 119에 실려서 응급실로 가야 되는데 못 가는 거죠. 도로에 사람이 꽉 차있는데.. 이건 그냥 길에서 죽으라는 거예요.
또 한 가지 짚고 싶었던 것은. 당시에 응급환자를 보내기 위해서 병원 응급실에 연락했는데 안 받았다는 거예요. 그것도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재난 상황이에요. 전시 상태 같은 상황이라고요. '받을 수 있다, 없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조건 받아야 되는 거죠. 선택적으로 우리 병원은 안 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 제도도 분명히 고쳐야 되는 부분이죠. 전시 상태에 준하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무조건 가까운 병원 어디든 응급실은 무조건 가야 되는 거예요. 이게 가장 최우선적으로 되어야 되는데, 너무나 부실하고 어이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겉포장은 선진국이라고 해놓고 실상은 완전히 후진국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분명히 살 수 있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굉장히 분노하는 지점이고요. 특조위에서 꼭 이걸 밝혀내야 된다고 유족들은 강조하고 있어요.
-희생자들이 가족에 인계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의문이 많이 드신다고요.
초기부터 공통된 의혹들이 있어요. 제가 현장을 갔을 때 이태원 골목 옆 빈 상가에 아이들 시신이 쭉 눕혀져 있었어요. 거기서 아이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경찰이 못 들어가게 막는 거예요. '내가 부모인데 왜 못 들어가게 하냐' 그랬더니 '여기 다 치료 중이라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면 안 됩니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방해되면 안 되지 하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 시신들이었어요.
왜 부모인데도 못 가게 막았나 굉장히 화가 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아이의 손을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하는 상태로 그렇게.. 부모들이 찾아왔는데도 인계해주지 않고 계속 놔두고.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다목적 체육관에 들어가 있었는데, 신원 확인도 되었고 내가 사실관계 확인하면 인계해주면 되는 걸 안 하고 의정부로 보냈더라고요. 의정부 가서 찾았거든요.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그 이유가 뭡니까? 거리로 외곽으로 보낸 이유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재난 대응 시스템을 만드는 데 1조가 넘는 돈을 들여서 만들어놨단 말이에요. 완전 무용지물이에요. 그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놨던 게 아무 쓸모가 없고 하나도 쓰지를 못했어요. 너무 답답하고 갑갑한 거죠.
-9대 과제에 담긴 유족들의 추가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9대 과제 8번은 피해자 지원 체계의 부분인데요. 참사 초기에 정부로부터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하나도 받은 게 없이 방치돼 버리니 그런 문제를 지적하는 거죠.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의 권리라는 게 당연히 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던 거고. 당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이야기 할 수 없는 시스템, 상황.
그리고 주위에서 우리를 억누르게 했던 유가족다움에 대한 이야기들 때문에 위축이 되는 것이 있었어요. 2차 가해도 근본적으로 우리가 되짚어봐야 될 사회적인 병폐이고요. 한 두 사람의 문제가 되는 게 아니죠. 특조위에 이런 2차 가해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특조위가 출범한 날, 유족들과도 만났죠. 그 날 송기춘 위원장이 '유족과 희생자의 한을 꼭 풀어주겠다' 말을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한'이 진정으로 풀릴 수 있을까요?
가지고 있는 한은 유족들 마다 다를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참사가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만 밝혀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아이들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무질서했다. 자기들이 잘못했다' 또는 '왜 거기를 갔느냐' 이런 왜곡된 시선에 묻혀버리면 영원히 그냥 하지 말아야 될 짓을 했던 아이들로 낙인이 찍혀버리는 거예요. 그것만큼은 해명하고 싶어요.
열심히 일상을 살아왔던 아이들이에요. 단 한 번의 휴식을 위해 갔던 곳에서 엄청난 일을 당해버린 거잖아요. 도대체 왜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냐는 거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휴식할 권리도 있는데. 열심히 일은 해야 되고 휴식은 하면 안 된다? 그런 문제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제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이태원을 관광특구에서 해제시켜라' 왜 관광특구를 만들어 놓고 와서는 안 되는 공간처럼 이야기를 하느냐고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거 아니냐고. 관광특구로 지정한 건 오라고 하는 거잖아요. 왜 여기를 갔느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왜 하는 걸까요.
<이태원참사 2주기>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을 만나다
① 2년이 지났지만…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② 참사 향한 ‘2차 가해’...곳곳에서 쏟아지는 화살
③ 공감과 연대로 더욱 강해진 우리
④ 딸을 위해 투사가 된 아버지 *순으로 연재됩니다.
빠띠 캠페인즈 https://campaigns.do/discussions/1783
▷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안녕하세요. 저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쓰고자 만든 <브런치 스토리> 공간에 제 이야기가 아닌 글을 올립니다.
저는 이번 한 달 동안 저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시민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거든요. 인터뷰를 함께한 친구와 저는. 다른 어떠한 글보다도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으로도 엮이지 않은 이들이지만, 우리는 이 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10월, 이번 한 달 동안 마음을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해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총 4편으로 나눠진 인터뷰 글은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과 4시간에 걸쳐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저희가 이 글을 '썼다'라고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저희는 짧은 질문을 던졌을 뿐, 여기 나오는 글들은 온전히 유가족들이 채워주신 글 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