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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소리 Jan 05. 2022

04. 아이를 위한 물건

딥러닝 마마

물건에 관해서,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건이 생각 외로 많다는 것에 놀랐고, 물건의 종류와 사용 방법이 천차만별이라는 데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밤낮으로 인터넷상에서 육아용품에 대한 지식의 홍수를 경험하며 내가 딥러닝을 하는 AI기계가 된 듯했다.





출처-pixabay


처음에는 카페와 블로그를 탐색하면서 정보를 수집했고, 이후 집단 지성의 힘이라 볼 수 있는 구매 횟수와 평점을 참고했다. 또한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자세한 상품 후기를 읽었고 심지어는 당근마켓에 들어가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매매하는지 보면서 '요즘' 육아에 필요한 핫한 아이템이 무엇인지 찾아냈다.


수많은 정보들 중,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나누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추려낸 품목만 최소 60가지였다. 이를 범주로 구분하면 신생아 의류, 침구류, 목욕 및 위생 관련 용품, 세탁용품, 수유용품, 가구류, 기타 용품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구매 목록 중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품도 꽤 있었다. 역류방지쿠션, 스와들업, 수유시트, 하이체어 등 헤아리기도 힘들다.


'아이를 위한 물건'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물건'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더욱 심난했던 것은 개별 품목마다 여러 가지 상품들이 존재하는데, 아이에게 맞는 것이 '애바애(케바케라는 용어에서 따온 말인 듯한데, 애마다 다르다는 신조어이다)'이기 때문에, 물건을 구매해도 그 유용성의 여부는 미지수라는 데에 있었다.


한 번은 아이 엉덩이에 발진이 나서, 기저귀를 다른 것으로 바꿔 보려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 종류가 다양했는데, 기저귀 간에 비교 전쟁을 방불케 하는 블로거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문제는 이를 종합하기가 어려울 만큼 평가 결과가 다양했다. 결국은 사용하던 기저귀를 다시 썼다.


이렇게 밤낮으로 아이템을 검색하고 따져보고 신중하게 구매하고, 아이에게 적용해보는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니, 결정장애를 갖고 있는 내가 물건 보는 눈썰미가 생기고, 물건의 필요성 여부, 구매 수량 등을 조절하는 일에 있어 속도가 붙고 효율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육아 아이템 고르기에 있어 드디어 나에게도 '딥러닝'이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이제야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날도 여전히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정보 탐색에 여념이 없었다. 낮잠 자는 아이 옆에 누워서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낮잠을 자다 깬 아이는 조용히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을 거다. 잠시 후에 아이가 나의 등을 손으로 툭 쳤다.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얼굴에 활짝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장바구니에 골라놓은 아이를 위한 물건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듯이 말했다.


"엄마 이것만 사고."


그제야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내 딸은 아이를 위한 물건 잘 고르는 '딥러닝 마마'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늦깎이 엄마여서 아이에게 필요한 걸 못해줄까 봐, 인터넷에 떠다니는 온갖 정보를 탐색하고 긁어모으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던 내가 처음으로 한심하다고 느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이에게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아이의 눈에 내가 들어오도록 아이를 안아 올렸다.


"우리 뭐하고 놀까?"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아이의 웃음소리에 그동안 내가 흘려보내고 놓쳐버린 시간들이 물밀듯 떠올랐다. 그때 다짐했다. 더 이상 물건 잘 고르는 '딥러닝 마마'가 되기 위해 너무 노력하지 말자고. 린 서로에게 소유가 아닌, 존재가 돼야 하니까.



-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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