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중간에서

by 수현


미지근했던 6월을 지나, 뜨거웠던 7월이 가고, 어느덧 날이 입추에 다다랐다. 조상님들의 지혜가 남달라 하루아침이라도 절기가 바뀔 때 체감되는 공기의 변화는 매년 맞이할 때마다 놀라울 따름이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며칠 전만 해도 후끈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코끝을 살랑이는 시원하고 포근한 바람이 분다. 여름을 사랑해 보기로 다짐하고 맞이한 세 번째 여름. 조금은 시시하게, 때로는 온 힘을 다해 주어진 이 여름을 하루하루 나아가는 중이다.


뒤를 돌아 7월을 바라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는 여름인데, 8월에 접어들고 나는 7월의 여름과 8월의 여름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 이어폰 속 소음을 아득하게 만들 정도로 크고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와 풀벌레 소리도 한풀 숨이 죽은 것도 같고, 너무 따가운 나머지 아주 작은 영역의 그늘에라도 온몸을 구겨 넣게 만들던 햇살 역시 조금은 완만한 형태로 변하였다. 한밤 중에도 가슴에서 벌컥 끓어올라 잠 못 들게 만들던 마음의 온도도 주춤하는 더위를 따라 차츰 낮아지고 있는 듯하다.


겨울과 봄을 어찌나 아등바등 버텨냈는지 여름의 코앞에서 나는 나에게 Help를 외쳤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걸음을 멈추고 돌아와 나를 돌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파릇파릇 피어오르는 에너지는 운동을 통해 건강하게 분출시키고, 자꾸만 본체를 강제종료 시키며 가성비 없는 잠에 빠져드는 시간은 독서로 가득 채워나갔다. 이곳저곳 젊음이 가득한 거리거리를 온종일 걸었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에 시원한 냉수를 흘려보내며 잡초처럼 삐져나오는 부정적인 마음도 함께 닦아내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 뜨거운 온기와 알록달록 여름과일들, 푸릇한 덩굴들을 보내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에 코에 닿는 선선함이 반가우면서도 퍽 아쉽다. 어디선가 흘려 읽게 된 '나에게 주어질 여름이 100번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에 벌써부터 조바심이 난다. 숨이 턱 막히게 더운 바깥에서 집에 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원한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켤 때의 청량함을, 얼음장 같은 목욕탕 찬물에 발끝부터 머리까지 한 번에 풍덩 빠질 때의 짜릿함을 부단히 즐기기에 더더욱 박차를 가해야지.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여름이 정말 싫다고 투덜대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올 해의 여름이 하루라도 더 길게 이어지면 하는 바람이다(정말 미안). 남은 8월에도 행복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주워 담으며 이 계절의 풍요를 더듬어야지. 오늘 저녁에는 엊저녁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딱딱이 복숭아를 깎아 먹으며 백수린 작가님의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다 일찍이 잠자리에 들고, 내일 아침에는 머리를 좀 더 짧게 쳐볼 테다. 아- 아꼬운 여름, 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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