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알게 된 것

by 수현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3km를 채 못 뛰고 얼굴은 벌개지고 숨이 가빠 한참을 쉬다 겨우 집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지난주엔 6.5km를 거의 쉬지 않고 완주했다.


일상 속에서 신호등이 바뀌기 전 뛰어가기,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질주하기 같은 소소한 달리기는 늘 해왔지만, 러닝화를 신고 트랙을 돌거나 한강을 달리는 ‘제대로 된 달리기’는 지난달이 처음이었다. 번아웃과 무기력함을 떨쳐내기 위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곧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고, 못해도 주 2회, 여유 있으면 주 3회는 꾸준히 뛰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달 만에 이만한 기록을 낸 건 부끄럽지만 제법 뿌듯하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다. 또래보다 키가 한 뼘쯤 컸고, 체육대회나 운동회에서 달리기 경기 1등을 놓친 기억이 거의 없다. 출발선에서의 두근거림, 온힘을 다해 앞으로 던지는 발걸음, 결승선까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내달리던 순간들. 그 뜀박질은 내게 상장과 노트, 연필 같은 소소한 포상을 안겨줬다. 이런 달리기 실력은 놀 때도 유용했다. 술래를 도맡아 뛰어다니며 숨은 친구들을 잡아내면, 그날의 MVP는 늘 내 차지였다. 하루를 땀에 젖어 마무리하고 누웠을 때의 성취감은, 그깟 근육통쯤이야 가볍게 잊게 했다.


올여름, 나는 인근 공원 한 바퀴가 1.2km인 트랙에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반에는 준비운동도 없이 무작정 달렸고, 곧 바퀴 수에 집착하게 됐다. 며칠 지나자 나이키 앱에 찍히는 거리와 페이스에 눈이 가기 시작했고 점점 숫자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숫자에 집착할수록 기록은 오히려 제자리였다.


그날은 저녁도 적당히 먹었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급하게 나서느라 에어팟을 두고 나왔는데, 덕분에 음악 없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시끄러운 노래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 다른 러너들의 발걸음소리, 숨소리가 귀를 채웠다. 며칠 전, 친구 속도에 맞춰 천천히 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속도를 줄이니 지칠 만한 지점에서도 이상하게 더 달리고 싶어졌다. 그날도 페이스를 낮췄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응원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기운에 등을 떠밀려 계속 달렸다.


어느새 5km를 넘겼다. 멈출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왠지 더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트랙 한쪽, 약 30m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낯선 연주 소리가 발걸음을 조금 더 밀어줬다. 5km를 지나면서부터는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멈추고 싶은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다시 발을 옮겼고, 결국 6km를 돌파했다. 당장 멈추고 싶었지만, 출발 지점까지만 뛰자는 생각으로 500m를 더 내달렸다.


숨을 고르고 걸음을 멈추니, 몸은 온통 땀에 젖었는데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욕심과 잡생각을 비우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한 시간이 달리기 실력뿐 아니라 나의 내면 역시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 낯설고도 짜릿한 감각이, 아마도 내일의 나를 다시 달리게 만들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10km 마라톤의 꿈이 이제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날까지 부지런히 달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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