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mping ink Mar 10. 2022

끼어들기

11. 차선 변경

출장을 마치고 이른 시간 퇴근길이라 기분이 들떴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있을 시간에 퇴근을 하는 꿀맛은 한가한 도로부터 보상받는 것만 같았다.

큰길을 지나 마지막 좌회전만 마치면 편안한 나의 침대와 늘어난 운동복의 자세로 저녁을 즐길 수 있는 나의 집이 나타난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깜빡이를 넣었다.

신호가 들어오고 순서대로 주차장으로 차량이 이동했다.

유도선을 따라 주차장 입구를 진입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은색 차량이 순식간에 앞을 파고들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신호를 무시하고 끼어든 차는 자신의 운전실력으로 얻어낸 결과라고 생각하는지 미안함을 표시하는 비상등조차 켜주지 않았다.


분노의 클락션을 울렸다.

"빵. 빵."

분명 알아들었겠지만 나만 아는 상황인 듯 은색 차량은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데 미안하다는 제스처 정도는 해 줘야 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앞차 엉덩이를 노려보며 저주와 분노를 중얼거렸다.


앞차는 나와 같은 주차구역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동 근처에서 같이 차를 세웠고 시동을 끄고 나니 은색 차량에서 아빠, 엄마, 어린아이까지 함께 내렸다.

그들을 따라 내리려 했지만 짐을 챙겨 내리다 보니 그들을 놓쳤다.


원수는 외나무다리... 아니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되어있는 것인가.

엘리베이터 앞에는 은색 차량을 타고 있던 가족이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레이저 나올 듯한 눈빛을 느꼈는지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내게 말했다.

"혹시 저희 차 뒤에 흰색 차량 운전 자시지요?"

뭐야. 알고 있었네.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네. 제가 뒤차였어요. 운전이 너무 난폭하신 거 아니세요?"

전투력이 상승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진입 차선을 못 보고 무리해서 들어왔네요. 많이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제가 직접 내려서 말씀드리려 했는데 뒤로 차가 밀려서 여기까지 그냥 왔네요."


생각해보니 우리 아파트는 주차장 입구 유도선이 초행자에게는 진입하기 어려움이 있을 위치였다.

어린 여자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랑 아빠가 미안해서 어쩌지?라고 계속 말하면서 왔어요. 엄마 아빠가 미안하대요. 싸우면 안 돼요. 화해해요."

귀여운 아이의 말에 모두 미소가 지어지며 오해가 이해로 변했다.

이른 오후 시간을 오해로 날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진심을 이해하니 마음의 여유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리무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