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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Dec 26. 2022

웬즈데이가 자폐라구?

좋아해 달라고 한적 없다

무려 팀 버튼의 연출로 <아담스 패밀리>의 스핀오프 격으로 출항한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가 연일 화제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인데다 <아담스 패밀리>에 익숙하지 않아도 비주얼부터 합격이라 생각했던 이 드라마는 독특한 웬즈데이의 캐릭터성으로 더더욱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웬즈데이가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각종 밈과 짤방으로 재생산되며 <웬즈데이>를 보지 않은 시청자조차 웬즈데이의 춤만큼은 익숙해지게 만들었죠. 아날로그 감수성과 미쟝센으로 주목받았던 팀 버튼 감독은 한때 스크린의 총아였으나 CG가 난무하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길을 잃고 한동안 헤매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헌데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어두운 고딕을 배경으로 한 성장기 청소년의 이야기는 팀 버튼의 부활 신호탄처럼 보입니다. 창백한 얼굴에 다크 써클, 그리고 사회성이 결여된 소년이라는 팀 버튼 자신을 반영한 뮤즈들은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살짝 모습을 바꾸며 변화한 시대상에 발맞춰 팀 버튼을 부활시켰습니다. 이전작까지 사회성이 떨어지면서도 소심했던 팀 버튼의 주인공은 <웬즈데이>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사회성에도 개의치 않는 소녀 웬즈데이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이런 웬즈데이의 모습에 열광했죠.


저는 냉정하면서도 똑똑하고, (친구 사귀는 거 빼고) 못하는 것이 없는 웬즈데이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제가 <웬즈데이>를 재미있게 본 것은 드라마 속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도 웬즈데이에 깊이 이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웬즈데이는 저와 동일한 mbti인 INTJ에 해당하는 인물이더군요. 이렇듯 즐겁게 드라마를 시청하던 와중 페이스북에서 이런 이미지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이 웬즈데이 아담스를 퉁명스럽고, 솔직하며, 표정변화가 거의 없고, 독특한 관심사를 가진 데다 사회적인 신호에 희한하게 반응한다는 이유로 포용할 수 있다면 같은 이유로 자폐인도 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짤을 보고 저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창 자폐에 대해 공부하던 시기에, 제가 가진 몇몇 특성이 희한할 정도로 자폐인과 겹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저는 웬즈데이처럼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표정 변화가 적으며, 추리물을 좋아하고, 소설을 쓰고, 친구가 적었고 검은 옷을 자주 입었습니다(알고 보니 검은 색이 잘 어울리는 겨울 쿨톤이더군요..). 의심도 많아서 저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친절한 이성 친구들에게는 저의를 의심하며 차갑게 대하기도 했습니다. 웬즈데이만큼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머리가 좋고 성적이 뛰어난 편이었죠. 거기다 한 가지 주제에 꽂히면 놀라울 정도로 몰입하곤 했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아는 걸 줄줄이 늘어놓다 보면 잘난 척한다며 외면당하기 일쑤였습니다(이미 중학교 때 알고 있었던 잭 더 리퍼가 상식이 아니라는 걸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웬즈데이는 포옹을 꺼리는데, 저 또한 일부 예민한 감각을 가진 탓에 감각을 커버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습니다. 구글에서 wednesday autism이라고 검색해보면 실제로 웬즈데이가 자폐스펙트럼 장애일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글이 많습니다. 저나 웬즈데이와 같은 INTJ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자폐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일까요, 혹은 INTJ의 성격 특성이 자폐인과 겹치는 것일까요.


헌데, 저 짤을 보고 생각에 잠기자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극중 웬즈데이는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고 웬즈데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학생들도 있으며, 이렇게 특이한 성격임에도 친해지고 싶어하는 룸메이트 이니드도 있죠. 저의 학창시절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친구가 없었고, 특이하다는 이유로 따돌림도 자주 당했습니다. <웬즈데이>에서는 웬즈데이가 동생을 위해 풀장에 피라냐를 풀지만 저는 학창시절에 골목에 끌려가서 맞는 쪽이었던데다 저의 남매들은 제가 맞고 다니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었죠. 사람들이 웬즈데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웬즈데이가 일상에 존재하는 친구가 아닌 허구의 인물이며, 지켜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중 웬즈데이는 친구가 거의 없고 기껏 생긴 친구마저 밀어내는 아이죠. 웬즈데이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셜록 홈즈 또한 INTJ로 분류되는 인물이며, BBC 드라마 <셜록>에서는 대놓고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고백합니다.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자폐인과 소시오패스를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자폐인은 인지적 공감이 가능하지만(정서적 공감은 불가능하다고 함) 소시오패스는 인지적 공감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이죠. <셜록> 속 셜록은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고 다니며 영국 경찰청에 지대한 공헌을 하지만 경찰청의 그 누구도 셜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회화를 거치지 않은 INTJ에게 이 사회는 상당히 잔인한 곳이며, 작중 인물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실제 생활에서는 친구가 없고 친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괴짜라는 시선을 받아야 하는 외톨이일 뿐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외톨이라는 사실 자체보다는 외톨이라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의 시선에 더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망상하는 시간이 더없이 행복했는데 말이죠. 더군다나 혼자 다니는 것을 상대적으로 덜 이상하게 보는 서양과는 달리 한국 사회는 화장실조차 혼자 가는 걸 이상하게 보는 곳입니다. <웬즈데이>를 보며 저런 사회였다면 나도 웬즈데이처럼 마이웨이로 지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짤로 돌아와서, 왜 저는 저 짤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걸까요. 오래 고민하는 동안 그 답을 알아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좋아해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저를 내버려두었으면 했을 뿐이었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INTJ답게 저는 뒤에서 저에 대해 수군거리거나 욕하거나 저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제가 다르고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저에게 돌을 던지는 곳이었습니다. 웬즈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웬즈데이는 심지어 부모인 모티시아와 고메즈에게조차 애정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애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애정이 없어도 웬즈데이는 충분히 잘 지내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허구헌날 괴롭힘을 당해 집에 돌아왔던 저를 보는 부모님은 사회화가 진행된 평범한 아이를 원하는 눈빛을 보내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쩌나요, INTJ는 전 세계 인구의 1%인데다 여성 인구 중에서는 0.8%밖에 되지 않는 레어템인걸요(심지어 겨울 쿨톤은 한국인 중에서 가장 적은 비율을 자랑한다죠?). 다르고 특이한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용인받아야 한다는, 대단히 오만해 보이는데다 평범한 사람들의 시혜적인 시선이 담긴 저 짤은 저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거기다 시청자들의 포용이란 일상 생활에서의 포용과는 전혀 다른 의미죠. 말했다시피 시청자들이 웬즈데이에 열광하는 건 내 친구나 동료가 아닌 구경만 해도 되는 허구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폐 스펙트럼은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방대한 범위의 사람들을 포괄하며, 웬즈데이와 유사한 자폐인은 자폐 스펙트럼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해당할 테죠.



근래 들어 자폐인을 다루는 미디어가 많아졌습니다. 시작은 한국 드라마 <굿 닥터>였던 것 같네요. 이후 이 드라마는 미국과 일본에서 리메이크되었고, 미국에서는 시즌6까지 제작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한국에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자폐인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미디어에 등장해서 화제가 되는 자폐인은 전부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게 말입니다. 전체 자폐인 가운데 서번트 증후군은 10%밖에 되지 않고, 그 중에서도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 될 수 있는 정도의 사회화 및 수준급 학업이 가능한 자폐인은 더더욱 소수입니다. 거기다 발달장애는 일반적으로 홀로 오기보다는 다른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자폐스펙트럼에 위치한 사람들은 폭력장애, 강박장애, 학습장애 등등이 딸려오면 딸려왔지 서번트 증후군인 자폐스펙트럼 장애 하나만 갖는 경우가 더 특이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문과보다는 이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자폐인 특성상 자폐인 변호사는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겁니다. 특정 드라마를 비난 혹은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자폐인의 대다수를 반영하기보다는 자폐인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부각되는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자폐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사회적인 신호를 읽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신경전형인(neurotypical, 자폐인이 아닌 사람들을 일컫는 말)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드라마 속 자폐인들은 어쩜 그렇게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지 놀랄 일이죠. 웬즈데이조차도 친구가 거의 없는데 말입니다.

*미국 드라마 <굿 닥터>에서 neurotypical이라는 단어가 신경전형인이 아닌 정상인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자폐인이 정상인이 아니라는 뜻을 포함하므로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왜 미디어에 비춰져 인기를 끄는 허구의 자폐인은 서번트인 걸까요. 사실 당연합니다. 쉽게 말해서 신기하기 때문입니다. 공부와 수련을 오래도록 한 신경전형인 의사들조차 불가능한, 인체 구조를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내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응급처치를 하는 숀의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시즌제로 제작되는 미국 드라마의 특성상 미국판 <굿 닥터>는 숀의 경이로운 능력만큼이나 일상 생활에서 저지르는 자잘한 실수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숀과 주변 인물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합니다. 숀은 그럴 의도가 없지만 수술실의 간호사를 기분나쁘게 해 경고를 받기도 하고, 상동 행동으로 의도치 않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사회적인 신호를 해석하지 못해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생활합니다. 숀의 주변인들은 숀을 오해하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도 하며, 숀과 다채로운 인간관계를 맺어 나갑니다. 즉 숀과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는 결코 어느 한 쪽이 시혜적인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숀은 그저 다른 특성을 지닌 한 의사일 뿐이고 이 다른 점을 서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주된 전개입니다. 자폐인 의사로서 인터뷰가 들어왔을 때 인터뷰를 거절하며 숀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자폐인 의사가 아니라 그냥 의사가 되고 싶어요." 미국 드라마 <굿 닥터>처럼 자폐인의 삶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에 대해 다루는 대신 서번트 증후군인 주인공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활용하는 이야기라면, 작가의 게으름을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숀조차도 자폐인 중에서는 여전히 두뇌가 대단히 뛰어나고 사회화가 상당히 진행된 인물인데다, 연애와 결혼 서사가 포함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신경전형인의 삶에 억지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보이는 점이 미국 드라마 <굿 닥터>의 한계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사이코패스라고도 하는 소시오패스 또한 사실은 일종의 장애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이 소수자라며 연민의 시선을 보내거나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이들과 가까이 했을 때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아, 참고로 소시오패스도 이른 나이에 진단받고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친구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적절한 사회화가 진행된 소시오패스와 동료로 지내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쨌거나 이들은 먹이사슬의 하위보다는 상위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기에 소수자임에도 시혜적인 시선이 감히 주어질 수조차 없습니다. 공감 능력 부족인 건 소시오패스나 자폐인 모두 마찬가지인데 사회적인 시선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죠. 어쩌면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위치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요. 자폐인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열광하면서도 정작 일상 생활에서는 자폐인을 보기 힘든 한국의 현실은 대단히 모순적입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소수자가 존재하고, 사회의 복지 제도는 이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그간 사회가 소수자의 희생으로 다수자가 편한 삶을 누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시혜적인 태도를 가져서도 안되고, 소수자가 복지의 혜택을 공정성을 해치는 것 이상으로 누려서도 안됩니다. 상대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기 쉬운 농어촌 지역 학생들을 위해 각 대학들이 농어촌 전형이나 지역균형 전형을 마련해 입시 기회의 간극을 완화해 주지만, 동시에 이 전형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최저점수 등 일정한 기준을 맞춰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이 공정성에 관한 논의는 결코 칼로 자르듯 쉽게 논의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언제나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요는 다수자도 소수자도 한 사회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특이한 성격을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만큼이나 저 또한 사회에서 지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사회화를 거쳐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웬즈데이처럼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고, 가십보다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 세상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곳입니다. 언젠가 저에게 경미한 자폐가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공식적으로 진단받은 적은 전혀 없으며, 자가진단에서도 자폐 점수는 중간 정도.. 전혀 높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되지 않는 이 곳이 제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터전이며, 그렇기에 사회화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저를 좋아해주길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라면 제 입장에서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도 웬즈데이도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받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었으면 합니다. 연민의 시선이 저에게 밥을 먹여주진 않을 테니까요.


이미지 출처: https://eastside-online.org/showcase/wednesday-becomes-a-major-netflix-success/#


https://twitter.com/not_mememy/status/1264429596029579264

https://en.wikipedia.org/wiki/The_Good_Doctor_%28TV_series%29

https://www.bbc.co.uk/programmes/p046dr6j/p04lnj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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