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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r 14. 2022

실존 인물을 스크린으로 소환하는 이유

우리는 다이애나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는가

죽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는 끊임없이 제작된다. 많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왕세자비이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인 다이애나는 영화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나오미 왓츠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연기했던 <다이애나>가 제목으로 왕세자비의 이름을 써버리는 바람에 이후 제작되는 영화들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아이콘이 되는 인물의 전기영화는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도 타이틀에 이름을 넣지 않을 수 없는데 스티브 잡스의 경우 <잡스>, <스티브 잡스>라는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부인 재키의 삶을 다루며 타이틀을 <재키>로 잡았던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제목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왕실에서의 답답한 삶을 견디며 결혼 전의 삶을 그리워했을 다이애나를 상상하며 결혼 전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결혼 전의 성 스펜서가 영화 제목이 되었다. 영화 내내 스펜서라는 성의 등장 빈도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지만 나올 때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든 누구든 간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영화는 기실 그 인물에 대해 영화인들이 상상을 더해 재해석한 결과에 가깝다.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 분)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왕실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나 상황은 온전히 작가와 감독의 상상일 뿐 실제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증거는 없다. 영화 <스티브 잡스>가 개봉한 이후에도 잡스의 지인들은 영화를 놓고 사실과 가깝다 아니다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고 한다.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나 영화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는 그 인물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인물을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다이애나>에서 다루었던 다이애나의 러브스토리는 진정 다이애나의 감정을 반영한 것인가? 실화 바탕의 영화를 보았다고 해서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관객은 더 잘 알게 되는가? 그런 게 아니라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실존 인물을 다루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그 한계를 어떻게 돌파해 나가느냐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실존 인물을 다룰 때 가장 기본은 인물과 최대한 유사한 외양의 배우를 섭외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 <잡스>는 영화 공개 전부터 어느 쪽이 스티브 잡스이고 어느 쪽이 애쉬튼 커쳐인지 분간이 안되는, 얼굴을 반씩 붙인 사진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관객의 눈에 너무나도 뻔하게 스티브 잡스를 연기하는 것이 마이클 패스밴더라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잡스>가 스티브 잡스를 더 충실하게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인물의 행적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이 인물에 대한 영화의 이해도를 꼭 높인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의 경우 키가 작은 나오미 왓츠가 키가 큰 다이애나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항간의 비판이 있기도 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영화에서 다이애나비의 외양을 충실하게 재현함으로써 몇몇 장면에서는 알아보기 힘들 만큼 멋진 모습을 구현해냈다. 하지만 관객의 평가는 스튜어트가 재현한 외양이 아니라 연기에 방점이 찍힌다. 왕실의 결혼 생활로 무너져가는 다이애나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 그의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같이 숨이 막히게 만든다. 여기서 스튜어트의 연기가 뛰어났다고 평가하는 것은 스튜어트가 다이애나비의 성격을 구현했다는 데 있지 않다. 어차피 관객의 대다수는 다이애나비의 실제 성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다이애나비가 겪어야 했던 영국 왕실의 답답한 생활과 피로감 그리고 결혼 전의 삶을 그리워하며 무너져가는 한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 데 방점이 찍힌다. 실제 다이애나비가 스펜서라는 성에 애착이 더 있었는지, 스펜서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관객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스튜어트의 연기를 통해 영국의 왕실 생활이 얼마나 관습에 얽매여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을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뜨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식사마다, 행사마다 갈아입어야 할 옷이 정해져 있고 자신의 곁에 둘 사람마저 선택할 자유가 없는 영국의 왕실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내부의 사람들을 조금씩 좀먹는다. 세상 화려한 음식을 매 끼니 먹을 수 있지만 다이애나는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먹고서 토해내며 일반 사람들은 평생 한 벌 사기도 힘든 명품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을 수 있지만 다이애나는 입고 싶지 않아한다. 영화는 마치 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국 왕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화려한 영국 왕실은 모순투성이다. 화려한 음식과 의복, 실내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음에도 전통에 얽매여 난방 온도조차 올리지 않으며 타이트한 의복을 제공하면서 크리스마스 기간 일정 몸무게 이상 찌우도록 강요한다. 다른 구성원들은 문제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리와 윌리엄조차 다이애나비와 이야기를 할 때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넌지시 보여준다.



결국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얼마나 다이애나비를 충실히 재현했느냐가 아니라 왕실 생활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했냐에 평가를 받는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은 어차피 배우가 아닌 각 부문 담당자의 몫이다. 스튜어트의 연기는 다이애나비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왕실의 모순을 관객이 목격하도록 만든다. 크리스마스 행사에 홀로 지각한 다이애나는 단순히 몸무게를 재는 것부터 반감을 드러내는데 이 장면까지만 해도 관객이 다이애나에게 연민을 느끼기는 어렵다. 모든 건 정해져 있고 고문을 하는 것도 아닌데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을 다이애나는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적대감을 드러낸다. 자신의 집인 스펜서 저택에까지 출입이 금지되는 장면에 이르러 관객은 왜 그토록 다이애나가 왕실 생활을 답답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다이애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타 떠나며 자신의 이름을 스펜서라 말하는 대목에서 일순간이나마 관객은 다이애나의 해방을 맛본다. 물론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관객 대다수는 알고 있지만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 다이애나가 느꼈을 자유와 행복으로 위안받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각색은 비난받아야 하는가, 존중받아야 하는가. 어차피 두 시간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은 한 인물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짧다. 아무리 제작진이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해도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는 있다. 다이애나비의 비극은 결국 한 사람을 왕실의 소모품으로만 봤던 영국 왕실의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스펜서>는 다이애나비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도 삶의 비극을 탁월하게 묘사해 냈으며 관객은 <스펜서>를 통해 다이애나비를 다른 방식으로도 애도할 수 있게 됐다.



* 본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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