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나의 하루 중 내적 갈등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고 바깥은 분명 추울 테니 포근한 이불속에서 잠을 더 청하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마음과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도 해냈구나'라고 뿌듯함을 느껴보라는 마음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탄천 길이 있다. 매일 만보 걷기를 결심하게 된 건, 마음만 먹으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쭉 뻗은 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곧은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막바지에 공원 입구가 나오는데, 나는 보통 공원 중앙에 있는 호수를 둘러싼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는 보폭으로 걷다 돌아오면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어둠과 적막함이 가득한 새벽 공기가 마음을 자꾸 움츠러들게 하는 것 같아서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조금만 걷다 보면 이내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한다.
곧이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어르신도 보이고, 숨이 차 호흡이 가쁘지만 쉬이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지나간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뜨거운 열기와 에너지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에너지의 전파력이 얼마나 강한지 아직 잠이 안 깨 힘없이 걷고 있는 나를 재촉해 걷다 뛰다 하게 만든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다. 길을 걷다 보면 간혹 주인을 잃은 장갑이나 모자가 보인다. 그런데 그런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애틋한 마음이 가득 담긴 채 탄천 길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에 밟혀 더럽혀지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물건을 마주할 때마다 그 손길을 떠올리며 잠시 숙연해진다.
누군가의 마음이 길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리고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지만, 그 발걸음이 어디서든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이른 새벽길을 나 혼자 외로이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흔적을 남기고 먼저 떠나고, 나는 그 흔적을 따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