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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May 13. 2021

떡볶이 앞에서 용기를 낸 이유

나의 소심한 제로웨이스트 도전기

조용한 오전 시간, 첫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린다.


‘음, 온라인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구나. 아주 좋아!'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막내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오기로 한 날이라 첫째와 오순도순 점심을 해결하면 된다.


며칠 전부터 매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떡볶이라면 우리 모녀가 없어서 못 먹는 음식 중 하나. 그러나 내게는 황금비율로 만든 떡볶이 양념 소스가 없다. 아직 개발 중이다.


요즘은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밀키트 덕분에 언제든 마트에 들러 사 오면 그만이다. 간편함으로 따지자면 밀키트가 최고지만, 분식집 떡볶이 맛에 비하면 몇 프로 부족한 느낌이다. 긴 시간 널찍한 사각 철판 속에서 빨간 양념이 골고루 밴 기다란 떡 그리고 적당히 쫄깃한 식감. 집에서는 분식집 떡볶이 비주얼과 맛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만약 그런 맛을 낼 수 있는 밀키트가 있다면 모든 분식집이 위기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집 근처 분식집에 가려고 준비했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얼마 전 분식집에 포장하러 갔을 때 사장님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와 어묵을 일회용 비닐에 무심하게 넣고, 그대로 스티로폼 재질로 된 용기 안에 담아 검은색 봉투에 한 번 더 넣어주셨다.


나는 포장해온 음식을 그대로 집에 가져와 먹기 좋게 접시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비닐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을 꺼내다 너무 뜨거워서 손가락을 델뻔한 적이 있었다. 음식을 꺼내려고 꽁꽁 묶인 비닐 꼭지를 가위로 자르다 실패해 비닐은 접시에서 음식과 함께 어울려 둥둥 떠다녔다. 왠지 환경호르몬이 음식 안에 녹아있다고 생각하니 찜찜했다. 젓가락으로 비닐을 냉큼 집어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애초에 포장 용기를 따로 챙겼더라면 일이 훨씬 더 수월해졌을 텐데 말이다.


이번에는 두툼한 내열 용기 두 개를 챙겨 에코백에 넣었다. 걷다가 보니 가방 안에 든 용기가 서로 부딪치며 퉁명한 소리를 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분식집 안에는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방 안에 있는 밀폐 용기를 꺼낼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용기가 선뜻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소중한 음식을 일회용 비닐 안에 넣자니 더더욱 싫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사장님께 말했다.


"저... 떡볶이랑 어묵은 여기에 담아주실 수 있으세요?"


무뚝뚝한 사장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워낙 바쁜 시간이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유별하고 까탈스럽게 굴어서 사장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가 싶었다.


"잠시만요. 이쪽 손님 먼저 포장해드리고요."


옆에 서 있던 아줌마 한 분이 나를 계속 쳐다보는 거 같았지만 나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몇 인분 담으면 돼요?"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떡볶이 2인분에 어묵 4개 따로따로 담아 주세요."


사장님은 내가 내민 묵직한 용기를 가져다 떡볶이와 어묵을 담아 주셨다. 용기 표면에 살짝 흐른 빨간 양념을 닦아주시기도 했다.


"떡볶이랑 국물 조금 더 넣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던 사장님은 용기를 내민 내 손이 민망하지 않게 후한 인심을 표현하신 것이었다. 나는 고개 숙여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뚜껑을 꼭꼭 닫아 집으로 돌아왔다. 어깨에 매달린 에코백이 무겁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집에 와서 접시를 따로 꺼낼 필요도,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넣을 필요도 없었다. 떡볶이 앞에서 용기를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내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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