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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의림 Aug 10. 2023

우리의 결혼은 평등할 수 있을까 (2)

결혼할 결심, 그리고 혼인계약서 작성

Y는 교제한지 6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 나에게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Y가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내가 건강한 연애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었다. 또한, 여전히 결혼은 가족과 가족간의 결합이고 부부 중 남성의 불성실함과 일탈은 조금 더 관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결혼 후 Y와 평등한 관계를 맺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매우 컸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이 불행했고, 이전의 짧은 연애에서도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느끼거나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던 데다가 '너는 (여자가 돼서) 너무 세다'라는 말을 적지 않게 들었었기 때문이다.


Y의 '결혼' 언급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어느 날, 나는 Y에게 앞으로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이 아직은 나에게 먼 얘기이고 두려운 일이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Y는 '네가 먼저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 후 Y는 정말로 내가 먼저 결혼 얘기를 던지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결혼'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내가 존경하는 Y의 면모 중 하나는 인내심과 상대방의 의사표현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장난으로라도 먼저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고 이 약속을 지켜줬던 건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고맙다.).


연애기간 동안 우리는 물리적으로 매우 밀도 높은 연애를 했었다. 당시 Y는 정시퇴근이 가능한 직장에 다니며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는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나들이를 가는 때 말고도 평일이든 주말이든 자주 만나서 주로 공부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Y와 1년 3~4개월 정도를 만나며 애정을 주고 받고 갈등상황에 놓였다가 함께 해법을 찾기도 하면서 나는 내가 안정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Y와 있는 시간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사람과 함께라면 건강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Y는 날 성애의 대상으로서 사랑해주면서도 늘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하고 존중해주었다. 그는 여느 남성들은 '쎄다'고  지적하던 나의 일부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었고, 내가 어떤 문제제기를 해도 피하지 않고 늘 상의하고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난 점점 스며들며 법적으로 영원을 약속하는 관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날 밤, Y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데, '이 사람과 함께 이와 같은 산책을 수 십, 수 백 번이고 해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결혼 얘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한 때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Y에게 먼저 '결혼'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늙어서까지 이렇게 같이 산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든지, "우리가 애기를 낳으면 진짜 귀여울 것 같다."라는 얘기 등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결혼을 하면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나갈지 대화를 하곤 했다.

명절은 어떻게 보낼지, 각자의 소득은 어떻게 관리할지, 자녀는 몇 명 정도 낳을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양육하고 싶은지 등에 관하여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자녀의 성(姓)'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사실 내가 '결혼 얘기 함구령'을 내리기 전, Y는 나에게 먼저 "아이를 둘 낳는다면 한 명은 네 성으로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난 그때 매우 놀랐었는데, '남녀평등' 이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가족과 대화 중 "내가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걔는 내 성을 따랐으면 좋겠다. 남편 성을 따라야만 하는 건 불공평하다."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를 한 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아이를 둘 낳으면 첫째는 아빠 성을, 둘째는 엄마 성을 물려주자'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혼인신고일이었던 2018. 10. 5.에 맞춰 혼인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약 1년여간 논의한 내용들을 모조리 이 혼인계약서에 담았다.


혼인계약서는 총 6개의 장, 47개의 조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Y가 초안을 작성했고, 나와 Y가 함께 검토, 수정하였다.


제1장은 총칙으로, 이 계약 전반의 이행 의무와 이행 방식 등에 대하여 규정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조항이 있다.


[제3조] Y와 원의림은 혼인관계가 지속되는 한 이 계약에 의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며, 혼인관계는 어느 일방의 사망(뇌사를 기준으로 한다.)이나 변심(사회상규 상 용인될 수 없는 어느 일방의 중대·명백한 과오에 의해 이 계약의 유지에 심대한 악영향을 주는 행위에 따른 심경의 변화를 의미한다.)이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제5조] Y와 원의림은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의 경우 각자의 판단으로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쌍방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와 결정의 경우, 우선적으로 서로 협의해야 한다.


그 이하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제2장 재산

제3장 가사분담과 육아

제4장 가족계획

제5장 쟁의행위

제6장 계약의 개정과 효력의 지속, 위반 시 처리와 종료

([제39조] 서로의 관계에 대한 본 계약의 효력은 어느 일방의 사망이나 변심이 없는 한, 영원하다.)


이 중 제4장 가족계획에 자녀의 성과 관련된 조항을 담았는데, 그와 관련된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2조] 자녀는 성별이 무관하게 2명을 낳을 것을 목표한다. 혼인신고 시 자녀의 성과 본은 모의 성·본을 따르기로 하며, 다만 민법 또는 가족관계등록법의 개정에 따라 첫째 자녀의 성·본은 부의 것을 따르기로 한다.

[제23조] 전 조의 단서에 있는 법 개정이 되지 않을 경우, Y와 원의림은 민법 제781조 제6항에 의거한 자의 성·본에 대한 법원의 허가를 받으려 시도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원의림은 가족관계등록법 또는 민법 등 관계법령의 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력의 수단은 사회운동, 헌법소원, 입법청원 등 기타 사회적 효과성이 다분한 것으로 해야 한다.)

[제24조] 자녀의 이름은 원유* 또는 유원* 등으로 양쪽의 성이 모두 드러날 수 있도록 이름을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쌍방 협의 하에 결정한다.


그렇다. 애초에는 자녀를 둘 낳을 경우, 첫째에게 아빠 성을, 둘째에게 엄마 성을 붙이기로 하였으나, 혼인계약서상 내용에는 위와 같은 변동이 있었다.


이에 관한 설명은 다음 글에 -




막간 법률 상식!


과연 위와 같은 혼인계약서에 법적 효력이 있을까?


민법 제829조(부부재산의 약정과 그 변경) ①부부가 혼인성립전에 그 재산에 관하여 따로 약정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재산관계는 본관중 다음 각조에 정하는 바에 의한다.

②부부가 혼인성립전에 그 재산에 관하여 약정한 때에는 혼인중 이를 변경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변경할 수 있다.

③전항의 약정에 의하여 부부의 일방이 다른 일방의 재산을 관리하는 경우에 부적당한 관리로 인하여 그 재산을 위태하게 한 때에는 다른 일방은 자기가 관리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고 그 재산이 부부의 공유인 때에는 그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④부부가 그 재산에 관하여 따로 약정을 한 때에는 혼인성립까지에 그 등기를 하지 아니하면 이로써 부부의 승계인 또는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⑤제2항, 제3항의 규정이나 약정에 의하여 관리자를 변경하거나 공유재산을 분할하였을 때에는 그 등기를 하지 아니하면 이로써 부부의 승계인 또는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위와 같이 민법 제829조는 '부부가 혼인성립 전 재산에 관하여 한 약정'의 효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민법은 그 외 사항에 대한 약정에 관하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나와 Y가 한 혼인계약서 내용 중 재산에 관한 내용에 대해선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나, 그 외 사항의 경우 법률적 효력이 부여되지 않는 상호호혜적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이혼 등 법적 분쟁을 하게 될 경우, 혼인계약서상 약속 파기를 법률상 이혼 사유의 근거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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